내게 건네진 말을 잘 챙겨야 한다

내게 건네진 말을 잘 챙겨야 한다

[ 인문학산책 ] 42

김선욱 교수
2022년 01월 05일(수) 10:36
아돌프 아이히만은 능력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되던 때 그는 군인과 전쟁 무기 운송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수백만의 사람을 성공적으로 이동시키는 과업을 완수했다. 그는 전쟁을 수행하고 있던 조국을 위해 관료로서 최선의 역할을 다한 애국자였다. 문제는 그가 최선을 다해서 했던 일이 유대인을 죽음에 빠트리는 일이었다는 점이다. 그가 성공적으로 이동시킨 유대인의 학살, 즉 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가 능력자 아이히만이었다.

히틀러가 패망할 즈음에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로 도망가서 숨어지내다가 1960년에 이스라엘로 잡혀 와 재판을 받았다. 유대인들에게는 동족을 살해하고 인류에 죄를 범한 그가 악마의 화신이었다. 하지만 재판정에서 선 아이히만의 모습은 제 할 일을 열심히 수행한 관료의 모습일 뿐이었다. 법정에서 그의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한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은 평범 악에 빠져 있다고 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빠졌던 악의 평범성의 징후를 그의 언어습관에서 발견했다. 그는 상투어를 남발했다. 판사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다른 말로 설명해 달라고 했을 때, 자기의 언어는 관청용어이며 다른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했다. 수십 년간 관직에 있으면서 대민선전용어, 관청의 상투어가 그 자신의 언어가 되어버렸다. 그는 관리로서 하던 일의 의미를 생각하기를 멈추고 관청 언어에 함축된 생각으로 자신의 생각을 대신한 것이다.

말은 화자와 청자, 그리고 말하는 대상의 삼각관계 속에서 작동한다. 말은 사물을 가리키고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며, 말없이 표현과 사유는 불가능하다. 아이히만의 언어가 나치의 관청용어로 대체된 것은 나치의 생각으로 자기의 생각을 대체한 것과 같다. 결국,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며 자기 관점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나치 정부가 해석하고 주장한 것을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기에게 전달되는 새로운 말을 통해 생각을 개선할 여지가 없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독단에 빠진 상태이다.

우리가 독단에 사로잡힐 때 우리의 언어는 유연성을 잃는다. 종교적 교리나 정치적 이데올로기 혹은 정치적 편향성에 사로잡혀 독단에 빠진 자는 자신의 생각과 충돌하는 말에 문을 닫는다. 타인의 반복되는 질문에 같은 말을 똑같이 반복하며 목소리의 톤만 높인다면 그는 독단에 빠져 있다. 언어의 경직성은 사유의 경직성의 징후다.

말에는 힘이 있다. 내 앞에 펼쳐진 세계를 인지하는 것은 감각이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은 말이 하는 일이다. 말은 현실의 변화를 인식하고 받아들여 그에 따라 나의 행동이 달라지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이런 말의 힘을 막아버리고 내게 작용하지 못하도록 나의 언어가 굳어져 있는 것, 이것이 말하기의 무능성이다. 내가 하는 질문에 대해 상투적인 대답이 돌아와서, 같은 내용을 다른 말로 다시 물었는데도 똑같은 상투어로 답이 돌아올 때 우리는 그가 생각 없이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만일 내 자신이 그런 식으로 대답하고 있음을 느꼈다면 나도 생각 없이 말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대화 상대자도 내가 생각 없이 말하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

말하기의 무능은 곧 생각의 무능이다. 말하기와 생각의 불능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아렌트가 규정한 악의 평범성은 말하기의 무능, 생각하기의 무능,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기의 무능을 말한다. 아이히만은 악마의 화신이나 악의 사도로서 유대인 학살의 중심에 섰던 것이 아니다. 그저 생각 없이 자신의 일에 충실했기 때문에 그리된 것이다. 아이히만의 악은 이처럼 평범한 것이었지만 그 결과로 세상에 나온 것은 절대 악이었다.

생각 없이 성실한 사람은 성실한 악행자가 된다. 말하는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듯이 생각의 능력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성실하게 자기 일을 하며 삶을 버티고 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내게 들려오는 절규와 경고의 말이 외면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내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할 때 선지자의 말은 귀에 들리지 않는다. 우리에게 건네지는 말을 우리는 잘 챙겨야 한다.

김선욱 교수 / 숭실대 학사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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