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시간도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 인문학산책 ] 41

김선욱 교수
2021년 12월 29일(수) 08:04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다가 가끔 장난스럽게 수업을 진행할 때가 있다. 자원하는 학생 한 명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 후 대화를 시작하는데, 짓궂은 방식으로 질문할 테니 당황하지 말라고 그 학생에게 미리 당부해 둔다. 대화는 이렇게 진행된다.

"학생, 우리는 시간에 대해 현재, 과거, 미래를 나누어 말하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학생이 생각하기에 과거는 존재하는 걸까요?"

"물론이죠. 과거는 존재하지요."

"정말이요? 학생에게는 과거가 존재한다고요? 그럼 학생은 과거가 있는 청년이군요."

과거가 있는 청년이라는 말에 학생은 당황해하고, 교실에는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나는 계속 이렇게 대화를 이어간다.

"학생, 우리가 무엇이 존재한다고 말할 때 현재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하지만, 아직 있지 않은 것이나 이미 없어진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요? 과거란 현재 있지 않고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과거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좋아요. 그렇다면 미래는 존재하는 걸까요?"

이 두 번째 질문에 학생은 다시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곧바로 대답한다.

"미래는 아직 있지 않은 것이니, 미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학생은 미래가 없는 청년이군요."

이 말에 학생은 또다시 당황하게 되고, 교실에는 조금 전보다 더 큰 웃음이 터진다. 나는 놀려서 미안하고 또 고맙다고 말한 뒤 그 학생을 자리에 앉게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우리는 무엇이 있다고 말할 때, 오직 현재에 존재하는 것에만 한정하여 말합니다. 과거는 있었던 것이지 현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는 우리의 기억 속에, 기억의 형태로 현존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미래는 앞으로 있을 것이며, 우리는 기대를 갖고 무엇을 예상할 때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래는 우리의 기대의 형태로 현존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시간의 특성을 간직한 모습으로 현재 존재합니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는 각각 기억과 기대의 행태로 존재합니다. 기억과 기대 자체는 시간이 아닙니다. 기억의 형태로 존재하는 시간은 더는 시간의 특성을 지니지 않은 채 하나의 전체로 나와 관계를 맺습니다. 기억이 시간의 특성을 갖는다면 가까운 과거를 먼저 기억해야만 먼 과거가 생각나야 할 것입니다. 기대는 미래를 현재에 예상하게 하지만, 예상한 바로 뒤에 그 기대는 기억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기대 또한 시간의 특성을 갖지 않습니다. 결국, 시간의 특성을 갖는 것은 오직 현재뿐입니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나오는 시간론을 설명하는 나의 방법이다. '선물'이라는 책의 저자인 스펜서 존슨은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열쇠가 우리에게 선물(present)로 주어져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금(present)이라는 순간이다'라는 말장난 같은 생각을 감동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을 응용한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일이나 그에 대한 기억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그 기억에 대한 태도는 지금 바꿀 수는 있다. 미래에 대해서도 우리는 지금부터 다른 기대를 갖고 대할 수 있다. 모든 변화의 열쇠는 현재에 있다. 우리가 현재를 통해 삶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과거 어느 순간에 시간으로서 시작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삶은 시간이다. 우리는 탄생을 통해 시작된 시간이며, 우리는 현재의 시간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우리는 과거의 영향을 받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절대적 지배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태도를 통해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새로운 미래를 만날 가능성을 현재에서 열어낼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삶이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김선욱 교수 / 숭실대 학사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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