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본래적 목적은 소통이다(하)

언어의 본래적 목적은 소통이다(하)

[ 인문학산책 ] 40

김선욱 교수
2021년 12월 22일(수) 11:18
위르겐 하버마스.
우리는 어떻게 말을 통해 서로의 사회적 행위를 조정하는가?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고 상대의 협력을 요청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의도를 감추고 원하는 목적을 도모하기도 한다. 전자는 소통적 행위라 하고 후자는 전략적 행위라고 한다.

사회생활의 많은 부분은 전략적 행위로 채워진다. 거래행위에서는 내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상대를 말로 설득하려 한다. 내게 유리한 것을 말하고 불리한 것은 숨긴다. "이것은 손해 보면서 하는 거래"라고 말해도, 진짜로 손해보며 거래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대화에 참여한 쌍방 모두가 그 말의 본뜻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대화한다. 전략적 행위란 일정한 틀 안에서 말을 '사용'하여 서로의 목적을 이루어가는 사회적 조정의 과정이다.

소통적 행위에서는 다른 뜻을 가지지 않고 말을 하며 말의 의미를 따라 의사를 나눈다. A라고 하면 A이고 B라고 하면 B인 것이지, A를 말하면서 B를 의도하지는 않는다. 이런 대화에서는 오가는 말이 서로 섞이고, 말뜻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계가 형성된다. 내가 사용한 단어와 표현이 상대의 말에서 사용되고, 또 상대의 언어가 내 생각에 반추되어 나의 말속에서도 나타난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상대의 말뜻을 곱씹는 게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말뜻을 헤아린다. 이때 언어는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역할을 한다.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킬 때 현장에서 지시한 대로만 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기의 역할을 하도록 허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화 안에서 말이 움직인다.

소통적 행위와 전략적 행위가 형성하는 인간관계는 아주 다르다. 소통적 행위는 대화자 사이에 신뢰적 관계를 형성한다. 전략적 행위는 그 행위가 끝나면 관계는 종료된다. 이 둘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소통이 제대로 형성되는 사회에서는 거래 행위도 근저에 깔린 상대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진행된다. 하지만 소통적 관계 형성이 어려운 사회는 거짓과 기만이 난무한 사회이며, 이런 사회에서는 거래 행위도 어렵다. 전략적 언어사용과 거짓말은 아예 구분되지 않는다. 전체주의 국가는 시민들 사이의 소통을 철저히 차단한다. 개인들을 분리하여 전체주의 정부가 바라는 대로 생각하고 움직이게 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소통적 행위에는 표현되지 않은 다른 의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전략적 행위에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숨은 의도가 존재한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효과를 노리는 행위이다. 성공적 대화의 네 가지 요건인 명료한 언어, 사실 부합성, 적절성, 의도 가운데 전략적 행위는 의도에 문제가 있다. 그뿐 아니라 명료한 언어의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전략적 행위에서는 상대가 말하는 것만을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상대가 A라고 말해도, 그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리더가 A라고 말할 때 동역자들이 A의 의미가 B인지 C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면, 그 리더는 소통적 리더가 아니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의 매력적인 점은, 소통적 행위는 언어의 본래적 특성을 그대로 활용하지만 전략적 행위는 언어의 본래적 특성을 왜곡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리고 전략적 행위는 소통적 행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언어철학을 통해 밝힌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이렇다. 전략적 행위는 소통적 행위의 파생물이다. 언어의 전략적 사용은 언어의 소통적 사용에 기생한다. 소통적 언어사용은 전략적 언어사용에 우선한다. 언어의 본래적 목적은 상호이해에 도달하기, 즉 소통이다.

전략적 행위에는 숨기는 것이 있다는 점에서 거짓말과 종이 한 장 차이다. 사회적 관계에서 용인되는 전략적 행위를 통상의 개인적 관계에서 사용하면 부정적 영향을 일으키게 된다. 전략적으로만 사람을 대하면 친구가 없어진다.

소통적 행위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관계를 살려주는 힘 말이다. 그리스도인이 사회적 활동을 할 때 그의 언행은 살리는 힘으로 작용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애초부터 말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김선욱 교수 / 숭실대 학사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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