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란 자기 중심성 벗어나기다

소통이란 자기 중심성 벗어나기다

[ 인문학산책 ] 35

김선욱 교수
2021년 11월 17일(수) 09:24
과거 모 대통령이 청와대에 소통비서관 제도를 신설했는데, 그 주요 업무는 대통령의 생각을 어떻게 국민에게 잘 전달하느냐에 있었다. 그 대통령에게 소통은 국민에게 자기 생각을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통은 원래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소통은 쌍방의 의사가 실제로 교환되고, 그들 사이에 다름이 확인되는 가운데, 실제로 대화가 오고 감으로써 이루어진다. 그 결과로 이루어지는 소통은 서로에게 변화를 가져온다.

사람들은 관점, 가치관, 취향 등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 소통은 서로 다른 부분이나 입장을 설명하는 데서 시작한다. 과학적으로 따져서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문제라면 우리는 논리적이고 사실적으로 말하여 답을 찾음으로써 해결할 것이다. 효율성의 문제라면 우리는 더 나은 대안을 계산해서 입증함으로써 해결할 것이다. 그런데 가치관이나 성향이 달라서 발생하는 문제는 그런 식으로 해결이 되지는 않는다. 다름을 기초로 한 문제에 대해서는 실제로 말을 나누는 가운데 설명하고 설득함으로써 합의와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을 설명할 때 그 말 속에는 말하는 이의 개성과 인격이 모두 드러나게 된다. 내가 표명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비판을 받을 때, 그 내용에 지적받을만한 내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한 사람은 무척 기분 나쁘게 된다. 말의 내용과 상관없이 말하는 사람 자신의 자아가 그 말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이 비판받으면 자기가 비판받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말에는 말의 내용만이 아니라 말하는 이의 자아도 포함되어 있기에 소통에 임할 때는 타인에 대한 각별한 고려가 필요하다.

한나 아렌트.
말은 내용을 전달하는 기능 외에도 말하는 사람 자신이 표현되는 기능이 있음을 지적한 이가 현대 최고의 정치사상가인 한나 아렌트이다. 아렌트는 정치적 의사 표현도 이 둘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보수주의자의 말이건 진보주의자의 말이건 거기에는 전달되는 내용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경험과 가치가 녹아 있다. 그래서 오직 말의 내용만 가지고 다툼을 시작하면 평화로운 공존 자체가 어려워지게 된다. 정치적으로 관점의 차이가 크다면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대화가 먼저 진행되어야만 한다.

소통의 장에서 우리는 화자이면서 동시에 청자가 된다. 내가 나의 입장을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그만큼 우리가 남을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태도도 당연히 필요하다. 우리는 항상 '나'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너'로서도 존재한다. 소통하는 대화에서는 '나'와 '너'라는 대명사가 다 나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고 상대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직관적으로 안다. 그런데 남을 나와 동등하게 인정하고 평등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왜 이리 어려울까? 현대 철학은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자아를 '의식' 중심으로 이해하는 관점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라는 관점으로 바꾸어 보기 시작했다. 이런 전환을 가리켜 '언어적 전회'라고 부른다. 언어적 전회를 철학적으로 정식화한 이가 위르겐 하버마스라는 사회사상가이다.

의식을 가진 존재로 인간을 볼 때, 나는 항상 나일 뿐이고, 타인은 항상 내 앞에서 나를 대하고 있는 존재로만 생각된다. 나는 의식의 주체인 반면 타인은 나의 의식의 대상으로만 설정되기 때문이다. 이 구도에서는 나와 타자의 관계가 근원적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말을 사용하고 대화에 참여하는 존재로 인간을 볼 때 우리는 나와 너가 서로 소통적인 관계로 존재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대화 참여자는 타인의 관점과 의견을 고려함으로써 자신의 관점에만 머물지 않게 된다. 대화하는 자세로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경청하면 우리는 한편에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관점을 얻을 수 있다. 이때 우리는 불편부당성을 얻는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불편부당성을 얻으려면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벗어나는 마음의 확장이 필요하다. 마음을 확장하면 생각이 확장된다. 이런 확장은 상상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반성과 상상력을 통해 우리 자신만의 주관적이고 사적인 관점 혹은 아집을 넘을 수 있다. 소통은 이렇게 자기 중심성을 벗어남으로써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김선욱 교수 / 숭실대학교 학사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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