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나무가 대머리가 되었어요.

목사님, 나무가 대머리가 되었어요.

[ 목양칼럼 ]

백종욱 목사
2019년 11월 22일(금) 00:00
필자가 처음 교회에 부임했을 때, 교회에서 사택을 제공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남양주시에서 양주시까지 새벽마다 출퇴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겨울 추운 새벽에는 새벽기도회가 끝난 후 한동안 난방도 되지 않는 목양실 안에 텐트를 치고 지내곤 했다. 도시가스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 아닌 시골교회'에서 그렇게 두 번의 겨울이 지난 후에야 드디어 교회 앞에 집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 때의 감격과 감사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제야 비로소 지역 주민이 되어서 마을교회 목사로 섬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날마다 동네를 다니면서 지역 주민들과 대화하며 일상적인 삶을 함께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교회에 대해서 배타적이었던 지역 주민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면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을 천천히 바꾸어 나가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동네에서 이발을 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잠시 의정부에 나가서 머리를 자르고 교회로 돌아왔는데 교회 입구에 수십 년을 자란 단풍나무 두 그루가 짧게 커트한 내 머리보다 더 짧게 잘린 채 거의 대머리 수준으로 앙상하게 가지치기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너무 당황해서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이웃에 물어 보았더니 교회 나무가 너무 커서 그늘이 진다는 이유로 교회 옆 텃밭 주인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가지를 모조리 잘라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이웃 텃밭 주인에게 찾아가 담을 넘어가는 나뭇가지만 조금 잘라 내면 되실 텐데 왜 가지를 모조리 잘라 버리셨냐고 정중하게 항의했다. 그랬더니 그 분이 하는 이야기가 처음에는 넘어 온 가지만 잘랐는데 한 쪽 가지만 잘린 나무 모양이 너무 이상해서 균형을 잡기 위해 반대편도 자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참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화를 꾹 참고 이번 일은 그냥 지나가지만 다음부터는 교회 안에 들어오셔서 나무를 자르시려면 꼭 미리 허락을 받고 하셨으면 좋겠다는 말로 좋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오히려 교회 행사를 하고 남은 선물들을 그 분과 다른 이웃들에게 함께 나누어 드렸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주일날이 되자 교회로 예배하러 오시는 성도들마다 도대체 왜 나무가 저렇게 멋대가리 없는 대머리가 되었냐고 성토를 하시면서, 그 가운데 분노한 성도들 중 몇몇 분이 곧장 옆집으로 달려가 싸우려고 하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화가 난 성도들을 만류하면서 이미 잘린 나무는 다시 붙일 수 없으니 전도를 위해서라도 화를 참았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그 분들도 나쁜 뜻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무 모양을 잡으려고 하다 보니 가지를 많이 자르게 된 것이라고 흥분한 성도들을 잘 설득했다.

그리고는 며칠 후 이번에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또 다른 이웃 텃밭 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의 텃밭에 있는 다 자란 유실수를 정리하는데 마음에 감동이 와서 그 중에 두 그루를 교회에 헌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할렐루야! 온 성도들이 나무 때문에 억울해 하고 속상해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악을 선으로 대할 때 더 좋은 나무 두 그루로 채워주신 것이다. 이 일을 통해 한 마을의 목회자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톡톡히 배우게 되었다. 남들이 다 비난한다 하더라도 끝까지 참고 기다려 주며 조금 손해 보는 삶이야 말로 대화와 전도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백종욱 목사/송추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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