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시는 예수님

용서하시는 예수님

[ 가정예배 ] 2019년 10월 24일 드리는 가정예배

김영윤 목사
2019년 10월 24일(목) 00:10
김영윤 목사
▶본문 : 요한복음 8장 1~11절

▶찬송 : 274장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옳고 그름의 문제를 명확하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율법을 어기고 간음한 현장에서 잡아온 여인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옭아매려고 시험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서 긍휼과 사랑을 빼고 정의와 공의만 앞세워 옳고 그름만 따질 때는 하나님 말씀이 살인 무기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예수님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차이를 통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고민해보자.

첫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는 긍휼과 사랑이 없었다.

요즘 이슈가 되는 우리 교단의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은 공교롭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아는 분들이다. 잘못되었기에 한국교회의 장래를 위해서는 이를 바로잡아야 된다는 것이다. 정의가 강물같이 공의가 하수같이 흘러야 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외치는 가운데 혹시 정의만 있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없다면 우리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 앞에서 정의와 율법의 잣대로 돌을 든 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보여주셨다. 우리도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의 바탕 위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회복하여 서로 용서하므로 따뜻하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둘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양심이란 것이 있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절)"고 하셨다. 그 때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갔다(9절)"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을 죽였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조차 양심이란 것이 있는데 오늘 우리는 양심이 있는지 자문해 보고 싶다. 우리는 양심의 가책을 잃어버리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게 설교도 하고 정의도 부르짖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본다.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상처를 입고 누더기가 되어도 내가 주장하는 정의와 공의만 세워지기를 원하는데 이것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우리는 신앙적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 이 신앙적 양심은 살리는 양심이어야 하고, 교회를 세우는 양심이 되어야 된다.

셋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안에서 용서와 배려가 있었다.

법의 기능은 심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법 정신 안에 사랑이 없으면 그 법은 죽이는 법이 된다. 예수님도 율법을 아시기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11절)"고 말씀하시며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11절)"고 강조하셨다. 이것은 용서의 조건인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과 원칙을 아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도 아시지만 법과 원칙과 공의 이전에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예수님은 용서하신다. 오늘 우리는 법과 원칙과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란 이름으로 너무 많은 사람과 교회를 정죄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알지만 예수님처럼 사랑과 용서와 배려로 생명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한다.



오늘의기도

주님! 돌아보니 제가 죄인이었습니다. 용서해주시옵소서. 그리고 주님의 사랑과 용서로 세상을 살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김영윤 목사/현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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