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예배 ] 2024년 9월 27일 드리는 가정예배
박동국 목사
2024년 09월 27일(금)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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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출애굽기 26장 30절
▶찬송 : 429장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은혜를 보여주신다. 구름기둥이 은혜다. 불기둥이 은혜다. 말씀이 은혜다. 그리고 성막도 은혜다. 구름기둥이 없었다고 생각해 보라. 불기둥이 없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성막이 없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끔찍했을까?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우리를 위한 안전장치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소, 즉 성막을 만들면 그들과 함께 살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온 세상 어디든 계신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성막에 머무시면서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단, 성막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만나는 특별한 장소이므로 하나님께서 성막을 짓는 방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세하게 알려 주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알려주신 대로 성막을 지어야 했다. 성막의 봉헌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광야에 도착한 그 이듬해 1월 1일이었다(출 40:2). 이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보여 주셨다(출 40:34). 그리고 성막에 임재하심으로서 그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셨다. 이스라엘 백성들 주변에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안전장치, 은혜의 장치들을 만들어 놓았는가? 구름기둥, 불기둥, 말씀 이렇게는 직접 만드셨고, 성막은 설계를 하셨다.
그런데 정지하지 않고 광야에서 성막을 만들어야 했다. 성막을 만들 때는 구름기둥도 움직이지 않는다. 왜 하나님은 성막을 만들라고 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이해하기 전까지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이제부터는 성막보다 앞서 갈 수 없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그리고 성막의 말씀을 통해서 광야를 통과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한 안전장치이다. 때로는 밤에도 불기둥이 이동했을 것이다. 때로는 계속 가고 싶지만 구름기둥이 멈추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때로는 성막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한 없이 기다려야만 했을 것이다. 사실은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지루한 은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이는 은혜'와 '들리는 은혜'를 주셨다. 출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는가? 멈추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는가? 말씀하시는 은혜가 들리는가? 그리고 안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안전장치가 보이는가? 내 곁에 있는 구름기둥과 불기둥, 그리고 말씀과 성막이 나를 안전하게 하는가? 아니면 불편하게 하는가? 이런 것들로 감사하는가? 아니면 불평하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다시 놀라운 은혜를 주셨다. 바로 십자가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 되어 버렸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구원을 얻는 이들에게는, 감사하는 이들에게는, 믿는 이들에게는 그리고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된다.
지금까지 나는 감사가 많은 사람인지 아니면 불평이 많은 사람인지 생각해 보자. 매일 만나를 먹으면서도 광야에서 다른 것을 찾으며 불평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틀림없이 광야에서 충분한 식수를 공급해 주셨건만, 목마르다고 매일 불평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선물로 주셨건만 우리를 죽이려 한다고 혹평을 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지만, 정작 '해야 할 감사와 찬양'이 너무 인색한 것은 아닌가? 왜 이럴까? 어쩌다 이런 메마른 영성, 거친 영혼이 되었는가? 은혜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햇살에 나를 지키는 은혜의 안전장치인 구름기둥에 집중하고 있는지, 추운 공기와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나는 지켜주는 은혜의 안전장치인 불기둥 안에 있는지, 성막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면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또 다른 은혜의 장치인 십자가를 기뻐하고 있는지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나의 믿음을 확인해 보자.
오늘의 기도
내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나의 삶에서 나를 항상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가장 좋은 길로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박동국 목사/서귀포교회
▶찬송 : 429장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은혜를 보여주신다. 구름기둥이 은혜다. 불기둥이 은혜다. 말씀이 은혜다. 그리고 성막도 은혜다. 구름기둥이 없었다고 생각해 보라. 불기둥이 없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성막이 없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끔찍했을까?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우리를 위한 안전장치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소, 즉 성막을 만들면 그들과 함께 살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온 세상 어디든 계신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성막에 머무시면서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단, 성막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만나는 특별한 장소이므로 하나님께서 성막을 짓는 방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세하게 알려 주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알려주신 대로 성막을 지어야 했다. 성막의 봉헌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광야에 도착한 그 이듬해 1월 1일이었다(출 40:2). 이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보여 주셨다(출 40:34). 그리고 성막에 임재하심으로서 그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셨다. 이스라엘 백성들 주변에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안전장치, 은혜의 장치들을 만들어 놓았는가? 구름기둥, 불기둥, 말씀 이렇게는 직접 만드셨고, 성막은 설계를 하셨다.
그런데 정지하지 않고 광야에서 성막을 만들어야 했다. 성막을 만들 때는 구름기둥도 움직이지 않는다. 왜 하나님은 성막을 만들라고 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이해하기 전까지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이제부터는 성막보다 앞서 갈 수 없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그리고 성막의 말씀을 통해서 광야를 통과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한 안전장치이다. 때로는 밤에도 불기둥이 이동했을 것이다. 때로는 계속 가고 싶지만 구름기둥이 멈추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때로는 성막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한 없이 기다려야만 했을 것이다. 사실은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지루한 은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이는 은혜'와 '들리는 은혜'를 주셨다. 출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는가? 멈추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는가? 말씀하시는 은혜가 들리는가? 그리고 안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안전장치가 보이는가? 내 곁에 있는 구름기둥과 불기둥, 그리고 말씀과 성막이 나를 안전하게 하는가? 아니면 불편하게 하는가? 이런 것들로 감사하는가? 아니면 불평하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다시 놀라운 은혜를 주셨다. 바로 십자가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 되어 버렸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구원을 얻는 이들에게는, 감사하는 이들에게는, 믿는 이들에게는 그리고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된다.
지금까지 나는 감사가 많은 사람인지 아니면 불평이 많은 사람인지 생각해 보자. 매일 만나를 먹으면서도 광야에서 다른 것을 찾으며 불평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틀림없이 광야에서 충분한 식수를 공급해 주셨건만, 목마르다고 매일 불평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선물로 주셨건만 우리를 죽이려 한다고 혹평을 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지만, 정작 '해야 할 감사와 찬양'이 너무 인색한 것은 아닌가? 왜 이럴까? 어쩌다 이런 메마른 영성, 거친 영혼이 되었는가? 은혜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햇살에 나를 지키는 은혜의 안전장치인 구름기둥에 집중하고 있는지, 추운 공기와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나는 지켜주는 은혜의 안전장치인 불기둥 안에 있는지, 성막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면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또 다른 은혜의 장치인 십자가를 기뻐하고 있는지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나의 믿음을 확인해 보자.
오늘의 기도
내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나의 삶에서 나를 항상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가장 좋은 길로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박동국 목사/서귀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