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길에서 여성을 만나다 <1>종교개혁 이전의 여성: 독신과 결혼의 갈림길

개혁의 길에서 여성을 만나다 <1>종교개혁 이전의 여성: 독신과 결혼의 갈림길

[ 여전도회 ] 여성의 삶, 독신이 우월?

이은혜 교수
2017년 03월 08일(수) 12:09

이은혜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얼마 전 '종교개혁과 여성'을 주제로 특강할 기회가 있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많은 여성들이 당시의 가부장적 가치규범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에 기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근 수업을 준비하다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교회사개론 강의 때 주교재로 사용하는 한 저명한 학자의 저서인 '세계교회사'라는 책이 있다. 매년 이 책을 사용했으니 적어도 10번 이상은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종교개혁시대 부분을 읽는데 그곳에서 여성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물론 책에는 여성의 이름도 역할에 관한 언급도 없었지만 말이다. 이 지면에서 매월 한 차례, 총 9회의 원고를 통해 당시의 여성들을 만나다 보면 종교개혁을 이해하는 인식의 폭이 크게 확장될 것이라 기대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여성들은 독신으로 수덕생활을 하는 수녀들이 아니었고 한 가정의 아내이며 어머니들이었다. 이 변화야 말로 종교개혁이 가져 온 가장 급진적인 개혁사상 중 하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루터의 핵심적인 개혁사상 중 하나가 독신주의적인 수도원 생활을 거부하고 결혼을 종교적인 소명과 동일한 수준에서 중시한 것이다. 독신과 결혼으로 함축되는 이 서로 다른 두 범주는 종교개혁을 전후해 크게 달라진 사회의 변화를 대변한다.

종교개혁 이전 교회는 결혼보다 독신으로 사는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어떠한 사유가 이러한 삶의 양식을 만들어 냈을까? 여성 초대교회 사학자 엘리자베스 클락(Elizabeth A. Clark)은 '초대교회 안에서의 여성'이란 제목으로 초대 교부들의 저작들을 편집했는데 그녀가 각 장 별에 붙인 소제목들이 흥미롭다. 1장은 '잃어버린 낙원: 창조, 타락, 결혼' 그리고 3장은 '되찾은 낙원: 금욕주의, 이론과 실천'이다. 이 제목들은 교부들이 창조, 타락, 결혼을 통해 낙원 밖의 삶을 설명하고, 낙원으로 복귀하는 길로 금욕주의의 실천을 제시했음을 알게 한다.

일반적으로 교부들은 결혼이란 제도가 인간이 죄를 범한 후 낙원 밖에서 이뤄진 제도이며, 죄를 범하기 전 인간은 낙원 안에서 독신이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타락이 없었으면 결혼이라는 제도는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교부들이 결혼을 이렇게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 살 때 독신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부들은 원죄의 결과 크게 죽음과 정욕이 세상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성관계와 출산은 정욕의 결과로 이해했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 낙원에 살 때 그곳에서는 성관계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수도사인 히에로니무스는 죄를 짓기 전에 낙원에서 아담과 하와는 처녀 총각이었고 죄를 지은 후 낙원 밖으로 쫓겨난 후 결혼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결혼이라는 굴레 안에서 창조주의 형상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결혼은 지구를 가득 채우고, 독신주의는 낙원을 가득 채운다." 크리소스토모스는 아담이 자신을 위하여 돕는 자를 요구하게 됐을 때 한 사람이 채워졌지만 결혼이 필수적으로 보여지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낙원에서의 삶의 방식은 하나님과 함께 즐기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경시했고 흙과 재가 됐다고 한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고 복된 삶의 방식이 뒤 따르는 독신의 아름다움까지 깨뜨렸다고 주장한다. 크리소스토모스는 이례적인 견해도 발전시켰는데 '생육하고 번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하나님은 성적 번식 없이 인류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고대 교부들은 일반적으로 독신의 삶이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짓고, 또 지속적으로 자녀를 생산하면서 잃어버린 순결, 즉 낙원의 순결을 되찾을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독신과 결혼에 대한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여자에게 원죄의 책임을 부여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이레나이우스는 하와의 불순종이 자신과 전 인류를 죽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테루툴리아누스는 심지어 여성을 '악마의 통로'라고 부르기도 했다. 암브로시우스는 여자가 그의 남편을 그녀와 함께 죄에 빠지게 했다고 주장하면서 죄의 책임을 여자에게 돌렸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원죄에 대해서는 하와의 특별한 책임을 강조하는데, 이런 사상은 고스란히 중세에 독신주의를 숭상하고 여성을 혐오하며, 성차별적인 견해와 실천을 유발시켰다. 중세 역사에서 치명적 오류로 남아있는 일명 '마녀 사냥'은 바로 극단적인 여성 혐오증이 저지른 범죄이기도 하다. 중세에 회자되던 히에로니무스의 격언 '만약 매사가 너무 잘 돌아가고 있다고 여겨진다면, 아내를 취하라'는 독신주의라는 이상과 여성 혐오 간의 연계성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종교개혁은 모든 크리스찬들에게 결혼을 정상적인 삶으로 강조하게 된 것이다. 독신주의를 결혼보다 우월한 것으로 보는 견해와 사제들의 독신주의를 거부했다. 종교개혁자들을 이렇게 이끈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은 여성들에게 어떤 반응을 얻었을까? 또한 결혼이 여성들의 삶에 부여한 실제적인 유익과 손실은 무엇이었나?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다음 회에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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