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11월 7~12일

[가정예배] 11월 7~12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10월 31일(월) 17:37

월 - 집을 세우는 여자
본문: 잠언14:1
찬송가:
 
여자는 근본이 약하다. 남자들처럼 힘이 세지도 못하고 순발력도 떨어진다. 마음까지 약하다. 영어 속담에도 있지 않은가?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

고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리스토 텔레스도 여자는 약해서 어디에도 쓸모없고 가치없는 존재라 생각했다.

서구에서는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여성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 세상에 들어온 죄가 여자를 통해 들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소리까지 서슴없이 했다.

솔로몬마저도 여성들이 들으면 자존심이 상할 말을 했다. "내 마음에 계속 찾아 보았으나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천사람 가운데 사람다운 여자는 한 사람도 찾지 못 하였느니라."(전도서7:28)

그러나 보라. 솔로몬 왕은 아이러니 하게도 오늘 잠언 14장 1절 말씀을 통해 '집을 세우는 자'가 누구라 하였는가? 연약하고 쓸모없다던 그 여자들이 집을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나라와 민족을 세운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집을 허무는 것도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 했다. 육체적으로는 남자가 여자에 비해 한없이 강하지만 사실은 그 남자를 다스리는 것은 여자이다. 철학자 소크라데스의 말이다. "천하는 남자가 호령하나 남자를 다스리는 것은 여자다."

재산을 늘려가고 집을 넓혀가는 것도 여자들이다. "남자의 수중의 돈은 날개가 달려 있으나 여자의 수중의 돈에는 금붙이가 달려있다"는 말들은 그것을 반증하는 속담들이다 그렇다면 강한 남자들도 하기 힘든 집을 세우고 가정을 일으키는 여인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솔로몬 왕은 그 비밀을 '여인의 지혜'라고 말한다.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집을 세우되…"(잠14:1)

유대인들은 지혜(호크모트)란 말을 '슬기로움, 예지력'이라는 의미와 함께 이 슬기, 예지력은 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고 신의 속성에서 나오는 영적 능력이라고 믿었고 가르쳐 왔다. 그러므로 솔로몬 왕도 그 지혜의 출처를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지혜)의 근본이라."(잠1:7) 그렇다.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여인에게서 나오는  지혜가 남자를 바로 세워 주고 집을 세우고, 가정을 든든히 세워가는 가는 것이다.

신앙 면에 있어서 남자들은 여성도들을 따라잡지 못한다. 여자들의 끈기와 인내의 신앙은  존경할 만하다. 거기에 여성도의 힘이 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말한다. "고운것도 거짓 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요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라."(잠31:30-31) 집을 세우는 길은 오직 한 길 뿐이다. 아내인 내가, 어머니인 내가, 여자인 내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며 그 안에서 나오는 지혜로 가족을 위해 기도하며 헌신할 때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한국 교회의 모든 여성도들이 주님을 향한 그 뜨거운 사랑과 성김을 통해  탁월한 지혜를 얻고, 그 영적 지혜를 가지고 자녀를 세우고 남편을 세우고  나라를 세워가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원일목사 / 선한교회


화 - 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본문: 마가복음 2: 13-17
찬송가 314(구511)
 
현대의학이 놀라울 정도로 진전되어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사람의 장기를 시술하는 세상이 다가왔다. 이름 모를 질병이 현대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전염병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질병만큼이나 정신적 폐해도 심각하여 사회적 질병이 사람의 미래를 전망하기 어려운 때가 되었다. 대개 질병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세 가지로 드러나는데 자신이 지닌 질병이 무엇인지 알고 병원을 찾거나, 아픈 것은 알고 있는데 찾아갈 형편이 못되거나, 자신이 지금 병을 지니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다. 자신의 질병을 모른다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기에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어 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세상 안에서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지 예수님을 통해 깨닫게 된 세리 레위(마태)의 이야기는 또 다른 어리석음에서 탈피하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세리라함은 죄인과 창녀와 함께 천대받는 신분이어서 항상 고뇌에 찬 삶을 살았던 레위에게 있어 예수님은 그의 삶에 큰 희망이었다. 예수님에 대해 오래전부터 트집을 잡으려던 바리새 사람들과 서기관들에게는 세리를 친구삼아 식탁에 앉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에서 두 가지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다. 비록 죄인이지만 자신이 병들어 있음을 아는 레위와, 자신이 지금 무슨 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르는 바리새 사람이다.

예수님은 "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시면서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참되신 모습을 보여주셨다. 의사에게 있어 환자의 명예나 지위 그리고 재산 따위가 보일 수 없으며, 단지 환자의 병 자체만 보일 뿐이어서 예수님은 흔쾌히 레위의 손을 잡고 그의 초청에 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아픔이나 질병이 나의 죄와 관련이 있는가를 살피시고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하시며 치료해 주셨고, 우리들의 아픔이나 질병이 하나님의 뜻과 관련이 있는가를 살피시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 함이라"고 하시며 치료해 주시되, 항상 측은히 여기심으로 인간의 신음소리에 응답하시는 자비의 주님이 되셨다.

견디기 어려운 아픔이나 질병은 가끔 우리들 인생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져준다. 건강할 때와 그렇지 아니할 때 우리들의 사고방식은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다만 우리 스스로 던진 질문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진실할 수 있는가에 따라 치료는 빠를 수 있다.

치료자가 되시는 하나님만이 그 원인을 알고 계심으로 우리의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여야 하는데 겸손한 순종만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그곳에 계심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름지기 그분에게 맡김으로 시작하여 그분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이며, 우리의 응답이다.
 
오늘의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손길이 오늘도 내 삶을 살피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친구 되신 주님의 뜻을 나와 온가족에게 알게 하셨사오니 건강한 하루를 살게 하시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수택목사 / 새나루교회



수 - 감사하는 가정
본문 : 살전 5:16~18,  
찬송가 : 429장(구 489)
 
11월은 감사의 달이다. 감사하는 가정은 참으로 능력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이다. 감사가 풍성한 가정이 되시길 바란다.

첫째, 감사하는 가정은 마귀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가운데 있음을 기억하자.

노르웨이의 전설에 사탄이 지구에 내려와 불평, 시기, 미움 등 각종 악한 씨들을 마구 뿌려 많은 열매를 거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직 한 마을에서만은 열매 거두는 데 실패하였다. 그곳의 이름은 '감사'였다. 그 마을은 어떤 슬픈 상황과 절망적인 처지에서도 늘 감사하며 사는 마을이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에는 사탄이 씨앗을 뿌릴 수 없다"라는 말이 나왔다.

둘째, 감사하는 가정은 거룩한 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고 기뻐해야 한다.

미국의 데이비드 소퍼 목사는 “감옥과 수도원의 근본적인 차이는 불평하며 사느냐, 아니면 감사하며 사느냐는 차이일 뿐이다. 수감된 죄수가 수도자와 같은 감사의 마음을 가질 때 감옥은 수도원으로 승화될 것이고, 반면에 수도자가 불평의 마음을 가질 때 수도원은 감옥으로 전락할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 식구들이 오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면 진실로 성도다운 거룩한 가족들임을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감사하는 가족이 될 수 있을까?

한글이 해외로 수출되고 있음을 아는가?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과 볼리비아의 아이마리족은 고유 언어를 표기할 문자로 한글을 수입하여 쓰고 있다. 19세기 중국에서도 한글을 수입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청나라 위안스카이는 중국의 높은 문맹률이 어려운 한자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의 문자를 중국의 소리글자로 도입하려 했었다.  이처럼 한글은 창의적이고 과학적으로 우수하고 편리한 글자이다. 그런데도 무분별한 외래어나 조악한 합성어 사용 등으로 버림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하나님의 은혜만큼 소중하고 보배로운 선물이 어디에 또 있을까? 오늘 가족이 모여 기도로 하나님께 받은 은혜들을 한 가지 한 가지 세어 보자. 그리고 서로 그것들을 발표하여 은혜를 나누어 보자. 그리고 또 다시 은혜 중의 은혜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해 보도록 하자. 참 생명인 영생의 가족, 영원한 하나님의 가정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젖어들어 잃어버렸던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흘러나올 것이다. 사탄을 이기고 거룩한 성도의 능력 있는 가정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감사의 달을 맞게 해 주신 자비로우신 하나님, 우리 가정이 진실로 주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바치기를 원합니다. 주신 선물들과 은혜의 주님을 깊이 헤아리며 발견할 수 있는 기도를 다함께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세상적이고 마귀적인 것을 물리치며 거룩한 가정으로 삼아주신 것을 깊이 알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용희목사 / 이태원제일교회



목 - 부지런히 가르치라
본문 : 신명기 6 : 1∼9
찬송가 : 204장 (구 379)
 
그리스도인에게 나날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이 그 마음에 새겨져 있고, 말씀의 인도함을 받는 그리스도인은 복을 받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게 해주며, 외롭고 혼란스럽고 연약할 때 빛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 즉 전 인격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불신자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지가 무엇일까? 그것은 첫째,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요,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우상(혹은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께만 예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때, 즉 우리가 하나님께만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언약을 이루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성취가 유예될 뿐만 아니라 우리는 복을 받지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이처럼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지만, 성경이 특별히 강조하는 또 다른 명령이 있다. 그것은 그 말씀을 우리의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이다. 그것도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다. 어느 정도인가?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힘써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녀들을 교회학교에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성경을 읽어주고, 자녀와 손주들이 성경에 대해 관심을 갖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질문을 해야 한다.

자녀들과 손주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판에 그림으로 받아들인다. 언어로 받아들인 것은 쉽게 잊혀지지만, 그림으로 받아들인 것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어주는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3세부터 적어도 12세까지는 읽어주어야 한다.

교회의 첫째 사명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요, 둘째는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며, 셋째는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자녀에게 성경을 힘써 가르치는 교회는 영원토록 번성할 것이요, 그렇지 못한 교회는 삼사대 만에 쇠퇴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온 가족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자녀들이 성경을 듣고 익혀, 먼 후손에까지 신앙이 전수되게 하옵시고, 오늘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비전과 뜻을 이루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대근목사 / 동산교회



금 - 감사의 세 가지 자세
본문: 사무엘하 6:20~23
찬송: 304장(구404장)
 
본문은 다윗 왕이 법궤가 성 안으로 들어오는 감격스러운 장면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장면이다. 다윗의 구체적인 감사드리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의 감사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첫째, 택하여 주심을 감사했다. 다윗이 먼저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여 왕으로 세워 주심을 감사한다. '주권자로 삼음'의 원문의 의미는 '통치자로 명백하게 선언'이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음이 명백하다는 선언이다. 다윗은 자신에게 이루어진 모든 상황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여겨 그의 삶 속에서 감사가 끊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감사할 수 있는 인물을 사용하신다. 외로이 양떼를 지킬 때에도 주옥같은 시편 23편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 드렸다. 오늘날 성도들이 회복해야 할 것은 바로 감사 신앙이다. '주권자'라는 단어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즉 제2대 왕이 되어 40년간을 통치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윗에게 한정된 축복만이 아니라 우리들이 천국에 들어가서 누리게 될 왕권을 예표한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 왕권을 누리게 될 그 날을 소망하며 감사하라.

둘째, 여호와 앞에 뛰놀며 감사했다.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함은 다윗의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의 감사를 표현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뛰놀다'라는 단어는 '카리스'로 '기쁨', '즐거움'을 뜻할 뿐 아니라 '감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다윗은 터질듯한 기쁨으로 감사로 표현하고 있다. 믿음 위에 굳게 선 사람이 참된 감사를 드릴 수 있다.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성도가 있다면 먼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회복이 필요하다. "진실로 의인들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들이 주의 앞에서 살리이다(시 140:13)"하심 같이 의인이 주의 이름에 감사한다고 했다. 의인은 바로 믿음 위에 선 자다. 예수님을 통해 의인으로 거듭난 여러분들 모두가 넘치는 기쁨 속에서 감사의 자세로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셋째, 낮아져서 감사했다.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겸손의 감사이다. 그의 부인 미갈은 법궤를 보고 춤을 추며 기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업신여겼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다윗의 행동이 정상적이 아니다. 그러나 다윗은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그렇게 하겠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오직 그 분의 영광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다윗의 겸손함이 40년 통치의 원동력이 되었고 이스라엘의 최고의 왕이 되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감사 신앙을 모르고 남편 다윗을 책망하던 미갈은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하는 저주를 받았다. 다윗처럼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높여 주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세상에 살아가는 저희들을 언제나 변함없이 함께하여 주시며 복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감사를 잊고 사는데 익숙한 자들입니다. 감사 신앙을 회복하여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광재목사 / 남신교회




토 -  영적 침체를 예방하라!
본문 : 창세기 12장 10 ~ 20절
찬송가 : 287장(통205장)
 
아브라함은 밧닷아람에서 이주하여 가나안땅 세겜, 베델, 아이 도성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 기근으로 인하여 먹고 살기가 어렵게 되자 점점 남쪽지방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가서는 안될 애굽 땅으로 내려가게 된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정착하여 가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영적 침체를 맞아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기근을 피하려다 부인을 빼앗기는 아픔을 겪게 된다. 아브라함의 아픔을 살펴보자.

첫째, 의식주 문제의 아픔이다.

재화가 궁핍하면 삶의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노동을 해서 재화를 벌어야 한다고 청교도들은 말하고 있다. 청교도들은 재물에 대해 "돈과 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말했다. 직업을 통해서 이익이 나지만 이익을 가져다주는 분은 하나님이다. 그러면 가난은 하나님의 저주인가? "가난은 목적을 가려내는 시련이다." 청교도들은 가난을 하나님의 영적 복이나 훈계의 방편으로 보았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가서 삶의 고통을 겪은 것도, 하나님이 기근을 내리셔서 삶의 고통을 주시는 것도 아브라함에게 영적인 축복과 훈계를 하시기 위함이었다. 오늘날 우리를 향한 궁핍과 고통도 그렇게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

둘째, 영적침체이다.

영적침체는 하나님을 향한 죄악이다. 아브라함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다니다 기근을 해결하려고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애굽왕 바로에게 속이고 속으며 신체적, 정신적, 물질적 침체를 겪게 된다. 청교도들은 영적침체를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영적침체는 하나님의 임재 의식의 결핍에서 일어나게 된다. 성도의 마음과 생각 느낌과 사고, 기대와 바람, 사건과 경험에서 하나님의 부재를 느낄 때 침체가 온다고 강조했다.

영적인 침체기간에는 믿음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자기 안에 일어나는 분노의 감정이나 낙심의 감정에 자기 자신을 던져 버리며 포기한다. 그래서 자신이 겪는 소외, 단절, 고독, 외로움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살 때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바로의 영향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 청교도들은 영적침체를 '영혼의 깊은 밤', '영혼의 겨울철'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영적침체를 방치, 침륜, 불황, 공항 이라고 한다. 성도는 영적침체에 빠져있는 동안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낙심하게 하고 상처를 주며 실족시킨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아가야 한다.

의식주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될 때 영적인 침체에 빠지지 말고 어려움을 통해서 영적 성장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삶의 여유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라도 신앙의 영적 침체로 내려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치유의 능력으로 우리를 살려 주시고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기식목사 / 아산동산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