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10월 24~29일

[가정예배] 10월 24~29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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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9일(수) 16:12

월-인내하여 복된 사람
본문  약 5:7-11 
찬송가  212장(구 347장)

지난 여름 심한 폭우로 오곡백과의 작황을 염려했는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좋은 가을 일기를 주셔서 풍성한 가을을 기대할 수 있게 돼 참 다행이다. 인내에 해당하는 희랍어 의미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많은 손해를 입혔지만 그래도 참고 견디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고난과 박해를 당하고도 참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끝까지 참으라고 하시며 농부, 선지자, 욥의 인내로 점점 더 차원 높은 인내의 모델을 보이시며 교훈하신다. 
 
첫째, 농부처럼 인내하라. 하나님께서 계절과 자연환경의 순환속에서 소담스런 열매를 가꿔내는 농부의 인내를 배우라 말씀 하신다. 모든 농작물의 열매가 하룻밤 사이에 쉽게 맺혀지는 것은 아니다. 식물이 우리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농부는 모진 비바람과 뜨거운 햇볕을 참으며 일하면서 싹이 나고 꽃을 피워 결실하여 수확할 때까지 기다린다. 세상의 물질을 거두기 위해서도 이처럼 인내하는데, 하늘나라를 얻겠다고 하는 성도들이 농부만큼의 참을성도 없어서 되겠냐는 것이다. 농부가 괜히 참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결실을 거둘 때가 있기 때문에 인내하는 것이다. 성도들의 참음도 막연히 참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기다리는 인내이다. 
 
둘째, 선지자처럼 인내하라. 선지자는 대언자로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다. 선지자를 통해 말씀을 전하까지 하나님께서는 대언자를 물색하고 부르셔서 전할 말씀을 위임해주신 분명한 소명체험 과정, 선지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라고 명령하시고 보내셨다고 말하는 파송과정, 그리고 말씀을 전달하는 과정이 있다. 죄를 책망하고 심판을 선언하고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주시는 희망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음은 물론이고 모진 고통과 매맞음과 감옥과 때로는 목베임까지도 감수한다.
 
셋째로, 욥의 인내를 배우라고 하신다. 욥은 본래 동방의 가장 큰 부자였다. 그런데 그 많은 재물과 열 명의 자녀를 잃고, 자신의 온 몸은 심한 종기로 고통받고 사랑하는 아내마저도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하는 참담한 상황을 맞는다. 욥은 그 시련 속에서도 입술로 범죄치 아니했고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거나 원망치 아니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실 분이라며 영광 돌렸다. 그래서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34:19)"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욥의 모든 곤경을 돌이켜 주시고 처음보다 갑절의 복을 주셔서 복된 인내자가 되었다. 
 
자신의 물질적 풍요를 위해 길이 참는 농부의 인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충성하는 선지자의 인내,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욥의 귀한 인내를 본받는 복된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죄인들을 위해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부족한 인내심으로 좌절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살아온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어떤 시련과 불행 앞에서도 천국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기쁨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남석 교목
전주기전여고


 

화-찬양, 그 영원한 노래를 부르는 자
본문  골 3:15-17 
찬송가  456장(구 509장)

아름다운 가정과 교회를 원하는 성도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 앉고 서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너무도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찬양은 천국에 가서도 부르는 영원한 노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원한 노래를 부르는 자로서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 함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영원한 노래를 부르려는 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첫째,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케 하라.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하는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평강의 통치에 자신을 굴복시키는 자로 살아야 한다. 본문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했다. 하나님과 평강을 유지하고 그가 너희를 받으시고 사랑한다는 위로를 인식하라는 말씀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너희 마음을 통치하게 하며 또한 너희 가운데 그를 심판자로 모셔 들여서 모든 갈등을 해결하게 하라는 것이다. 또한 성도는 하나님의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다. 하나님과의 평화는 우리에게는 특권이며 형제와 평화함은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가 한 몸으로 연합될 때 가정의 지체들이 서로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회안에서나 가정에서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또한, 그리스도인이 있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모든 일들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그 자리와 그 마음에 하나님의 평강이 주장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찬양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게 삶과 마음에 거하게 하라. 복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말씀이 우리에게 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우리 인생을 세우는 집 주인으로서의 말씀으로부터 훈육과 지시를 받아야 하며 때를 따라 은혜와 위안과 힘과 식량의 우리 몫을 공급받아야 한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들 안에 모시기는 하나 그것은 그들 안에 다만 빈약하게 거할 뿐일 때가 많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자주 넘어지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고통스러움에 몸부림을 치는 이유가 있다. 말씀의 샘물이 깊지 못하여 풍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며 삶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할 때 우리가 그것의 풍성함을 우리 안에 가질 때 그리고 성경과 그리스도의 은혜로 충만하게 될 때, 그때 영혼이 부요하게 되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도 앞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서 앉고 설 사람이다. 찬양은 하나님께 영원히 드릴 노래이며,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노래이다. 이 영원한 찬양, 영원한 노래를 저와 여러분의 가정에서 늘 부르다가 주님 곁에 찬송하면서 나아가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같이 부족한 자를 찬양하는 자리에 서게 하시고 그 찬양을 받아주심도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혼자 부르는 찬양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그리고 모든 교회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면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만기 목사
늘푸른교회

수-은혜에 참여한 자
본문  빌 1:7-8  
찬송가  333장(구 381장)

사도 바울의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사랑은 애틋했다. 오늘 본문에도 그 사랑의 고백이 더욱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다.
 
7절을 보면 사도바울의 사랑 고백은 인사치레로 하는 것이 아니고, 빌립보교인들의 친절한 사랑을 생각할 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마음 속에 그들의 사랑을 다 새겨놓았다고 말한다.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은 사도 바울의 심금을 울린 사랑이었다. 무엇이 사도 바울의 마음을 감동시켰을까? 빌립보 교인들은 사도 바울의 매임의 고난에 동참했고, 복음 전파하는 일에 몸으로 마음으로 물질로 동참했다. 그 모습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은혜에 참여했다"고 표현한다. '은혜에 참여한다'는 말은 무엇일까? 3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마음을 함께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었을 때 빌립보 교인들이 마음으로 함께 했다. 바울과 같은 선교사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후방에서 기도하고 후원하는 사람들이다.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되려면 믿음의 형제들끼리 친밀한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이 땅의 모든 관계는 일시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관계는 천국에서도 영원히 계속된다. 사실 모든 신앙의 축복이 교회에서 나온다. 그 사실을 알고 힘써 교회의 예배와 사역에 동참하여 형제관계에서 승리자가 될 때 우리의 신앙도 능력있는 신앙이 될 것이다.
 
둘째, 십자가를 함께 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가 나의 매임에 함께 했다"고 한다. '나의 매임'이란 사도 바울이 지고 있는 '고난의 십자가'를 말한다. 이 세상에 가장 큰 은혜가 무엇일까? 지옥의 자식을 천국의 자식으로 만들어 준 주님의 십자가이다. 그 십자가를 2천 년 전에 주님께서 진 십자가로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친히 져야 하는 십자가로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은혜에 참여한 자이다.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하는 것의 증표는 십자가의 길을 받아들이고 십자가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셋째, 복음을 함께 전하는 것이다. 빌립보 교인들은 복음 전파에 힘써 동참하면서 어떤 시련이 있어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복음 전파의 명령을 남기셨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사는 삶이 가장 건강하고 복된 성도의 삶이다.
 
결론적으로 '은혜에 참여했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실 때 그 축복을 사명으로 발전시키는 사람이 진짜 은혜 받은 사람이다. 그 사명 때문에 때로 큰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 때문에 능욕 받고 고난 받는 것을 기뻐하면서 "이제야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구나!"라고 고백할 수 있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품길 원합니다. 그래서 학문도, 기술도, 권력도, 물질도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곳에 사용되게 하시고 우리의 최종 목적은 지상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영기 목사
이경주안교회


 

목-성실한 믿음
본문  약 2:17-18 
찬송가  417장(구 476장)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국어 사전적 의미는 '어떠한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이라고 한다. 성경에서의 믿음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바꾸는 태도를 말한다.
 
믿음을 지닌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진리를 확실하고 신뢰할 만한 것으로 여기고 전폭적인 신뢰와 깊은 사랑, 그리고 성실한 순종함, 헌신적인 동행으로 하나님께 반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야고보는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야고보는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결실과 수확의 계절 가을이다. 입시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교회에도 이러한 입시바람이 어김없이 들어와 있다. 해마다 입시철만 되면 특별새벽기도회, 특별기도회, 입시 기도회 등등으로 수많은 교인들이 기도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입시생들의 입시철뿐만 아닌 것 같다. 군인들도 군 진급시기를 앞두고 한 달 동안 부쩍 새벽기도 교인들이 몇 배로 늘어난다. 회사승진시기에 맞춰 수많은 기도 교인들이 늘어나는 현상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적인 믿음의 자세가 아니다. 오히려 샤머니즘적인 현상에서 나타난 잘못된 현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입시가 끝나고 진급이 끝나고 승진이 끝나면 부쩍 늘어났던 교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현상을 생각해서이다.
 
내가 필요해서 왔다가 필요한 것만 요구하고, 필요가 충족되면 가버리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옛날 동구 밖 서낭당 나무아래 촛불하나 켜놓고, 뒤뜰 장독대에 정안수 올려놓고 빌어 대던 일이랑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주님은 입시 때만 진급 때만 승진 때만 필요한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우리와 인격적인 만남을 원하시고, 진실한 교제를 원하시지만, 우리는 늘 그러한 잘못된 생각으로 주님을 속상하게 하고만 있는 것이다.
 
기도란 주님과의 조용한 대화이며 교제이며 그분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직접적인 소통의 통로이다. 언제나 처음처럼 성실한 자세로 주님과의 대화에 임한다면 '특별'이란 단어를 붙여가며 임하지 않아도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정확하고 진지하게 들어 주신다. 기도하지 말란 것이 아니다. 진실된 믿음으로 진실된 교제를 통한 진실된 대화의 소통의 통로를 열고 그 통로를 늘 한결같이 열어놓고 기도에 힘쓰자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대화를 귀하게 귀하게 여길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늘 우린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진정한 소통의 통로를 늘 열어놓을 수 있는 성실함과 그 믿음으로, 우리의 유익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할 수 있는 우리 되게 하여주옵소서. 무엇보다도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믿음이 이 가을만큼 더욱 성숙해지고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김진동 목사
양포교회

금-시온아 기운을 내라
본문  습 3:14-20 
찬송가  426장(구 215장)

오늘 본문 16절 말씀에 보면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말한다. 여기서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공동번역 성경에는 '기운을 내라'로 번역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힘을 내라, 용기를 내라'는 뜻이다. 어떤 처지나 환경, 경우라도 낙심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어둡고 힘들수록 더 기운을 내고 용기를 갖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들고 희망을 붙들고 사는 삶이 바로 믿음의 삶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운을 내고 힘을 낼 수 있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았기 때문이다. 용서받은 사람에게는 힘이 있다. 우리는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고, 죄 때문에 심판받을 수밖에 없고,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자들이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내가 담당해야 할 죄의 댓가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신 담당시켜 주신 것이다. 누구든지 회개하면 다 용서해 주시겠다고 하셨다.(사 1:18)
 
둘째, 우리가 힘을 낼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만 있으면 우리는 의기소침할 수가 없다. 두려움이 없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렇다. 창조주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과 더불어 살 때 우리는 담대해지고 힘이 있다.
 
셋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힘을 내야 한다. 17절 후반절에 보면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고 했다. 얼마나 감격스런 말씀인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기쁨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사랑하신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면, 어떤 절망적인 상황도 얼마든지 역전이 되는 줄로 믿는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절망적인 상황도 얼마든지 역전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으로 인해 힘을 내고, 기운을 내고, 하나님과 함께 승리하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참으로 어렵고 힘든 시대입니다. 믿는 성도들도 낙심하고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붙들고 승리하는 백성들 되게 하옵소서. 용서받는 자들로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줄 믿고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힘을 내고 기운을 내고 승리하는 주의 백성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만 목사
이문동교회


토-부활의 현재성
본문  요 21:1-19  
찬송가  456장(구 509장)

요즘 이웃과 어울리지 못하고혼자만의 세계에 몰입하는 병적인 아웃사이더가 늘어나고 있다. 범사회적 노력이 시급한 실정이다. 특히 교회가 외톨이들을 배려하고 사회의 단절과 배타성극복에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교회에서마저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 그들은 갈 곳이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프리 원프리를 떠올린다. 그녀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살아 있다. 우리가 그 속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다"는 놀라운 고백을 한다. 오프라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 입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오늘날 수없이 일어나는 벽을 넘어갈 수 있는 담쟁이 한 잎이 당신에게 있는가? 이 시대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다가온다. 두려움이 깊어질수록 교인들의 가슴에 예수님의 부활 신앙이 흐려져 감을 느낀다. 부활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물질문명의 풍요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것을 탈출하는 것이 힘에 겨워 신앙이 지쳐간다. 풍요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부활의 필요성에 대한 절실함이 더욱 결여되어 있다.
 
디베랴 호수에서 그물질하던 제자들이 물고기 잡이에 정신을 집중하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잊고 있었던 모습이 오늘 교인들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잠시 후에 실현될 부활의 환희가 얼마나 황홀하고 감격적인 것인지, 그것은 어떤 것으로도 비교될 수 없는 영원적인 가치가 되는 것인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부활 신앙은 자꾸만 사람들 뒤로 물러나게 됨을 본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 황홀한 영체로 우리의 삶의 현장에 다시 나타나셔서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사랑하느냐 물으신다. 그리고 첫 사랑을 회복하시고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다.

부활의 과거적인 사건을 믿는가? 2천년 전에 사건을 지금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이라 한다. 부활의 영원성을 믿는가? 여러분에게 그 소망이 자리잡고 있는가? 그리고 부활의 현재를 나타내고 있는가?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 주님은 사랑의 고백을 듣고 싶어 하신다. 사랑은 현재성을 가진다. 부활, 사랑, 사명 모두는 현재성이 결여되면 큰 능력이 없다. 그 사랑을 확신하시며 양을 부탁하신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부활의 신앙이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 사랑으로 증거되어 지기를 원하신다. 절망의 시대에 죽어도 사는 부활의 신앙이 가슴 속에서 계속 피어올라 생명력 있는 사명자가 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지쳐가는 우리의 삶에서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살지 못함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새 소망을 가지고 부활의 주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은철 목사
강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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