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타자와 교회의 과제

우리 안의 타자와 교회의 과제

[ 말씀&MOVIE ] 무산(戊山)일기 감독: 박정범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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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01일(수) 14:54

이창동감독에게 사사했던 박정범감독의 '무산일기'는 자신의 단편영화 '125 전승철'을 장편으로 만든 것인데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못할 정도로 연출력과 영화적 서사능력이 압도적이다. 각종 영화제 수상 이력이 영화의 질을 충분히 입증해주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함경북도 무산(茂山) 출신 탈북자 전승철이다.

감독의 관심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탈북하여 남한에 이르게 된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서 무산(無産)계급으로 살아가는 실상과 왜 그렇게 전락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려는 데에 있었다.

예컨대, 누구라도 탈북자임을 식별할 수 있는 주민등록번호 '125'를 딱지처럼 달고 다니고, 탈북자라는 이유만으로 동네 깡패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현실에서도 친구를 우발적으로 죽이고 도망 나온 그에게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기에, 남한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무런 저항조차 할 수 없는 무력한 태도,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인 남한에 쉽게 동화되지 못해 탈북자들끼리 소통하면서 혹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살 수 밖에 없는 모습들은 그들로 하여금 무산계급으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구조적인 요인들이다.

영화 속에서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주목을 끄는 장면은 승철의 눈에 비친 교회의 모습이다. 승철에게 교회는 단순히 예배의 장소만이 아닌 또 다른 의미를 갖는 공간이다. 사실 교회에는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오거나, 그를 공동체 안으로 이끌어 들이려는 사람이 없다. 그는 교회 안에서 철저한 타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철은 결코 불편해하지 않는다.

이미 남한 사회에서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그러한데 '교회'라고 해서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교회는 그에게 맘에 드는 여자 숙영을 볼 수 있는 곳이며, 또한 아무런 걱정 없이 점심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해서 억눌려진 자신의 욕망을 최소한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교회에 대한 승철의 이러한 시선은 같은 탈북자 출신의 소개로 교회의 소그룹 모임에 참석해서 바뀌게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탈북하게 되었는지를 고백하는 일로 인해 그에게 있어서 교회는 더 이상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곳이 아니며 또한 그의 시선도 이제는 숙영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게 된다. 교회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곳이고, 동시에 받아들임을 경험하는 곳이었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교회에서 탈북자들은 늘 긍휼의 대상이었다. 주는 것에 대해 만족할 것이고 또한 그런 방식의 삶이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탈북자의 심경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행위이며, 종교의 일방적인 폭력과 같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긍휼이 아니라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인 장치이며, 또한 그들이 타자가 아니라 우리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심리적으로 배려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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