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특집 - 교회 내 성윤리 문제

3월 특집 - 교회 내 성윤리 문제

[ 연재 ] 한번의 실수가 목회 발목 잡기도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11년 05월 26일(목) 15:25

 한국교회가 정말 살얼음판을 걷고 있음이 분명하다. 여기 저기에서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이미 통계상 한국교회 교세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교회는 갈지 자(之)를 걷고 있다는 비난 여론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비난여론 내용에는 목회자의 성윤리 문제가 포함되어 있으나 한국교회는 더이상 할 말을 잃어 버렸다. 목회자하면 그래도 존경받을만한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일부이기는 하겠지만 이미 목회자들의 성윤리 문제는 도를 넘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본보는 이같은 목회자 성윤리 문제를 '교회내 성윤리 문제'라는 제목으로 3월특집을 기획했다. 현황과 함께 이같은 일들이 지속되는 원인들과 앞으로의 과제들을 찾아 보고자 한다.

 1. 목회자의 성윤리

 한국교회 교인 70% 이상이 여성이다. 반면에 목회자의 90%이상은 남성이다. 본교단을 비롯해 여성 목사를 허락하고 있는 몇몇 교단을 제외하면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회자 1백%가 남성이다.
 본교단도 여성 담임목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남성 목사가 여성 성도를 지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구조는 목회자들이 쉽게 이성문제에 빠져 들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 교계 인사들의 설명이다.
 목사는 윤리적으로 가장 깨끗해야 하는 직종임에 분명하다. 성직자는 모두의 존경을 받아야 하는 것이 사회적인 통념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최근 언론을 통해 집중 폭탄을 맞고 있다. 융단폭격을 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그 중심에는 목회자의 윤리 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다른 직업군과 비교할 때 목회자의 성윤리는 깨끗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의 성윤리 문제가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성직자에 대한 기대치가 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편 목회자 성윤리문제에 대해 교회 내적으로 더욱더 비난의 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 언론에 오르내린 목회자 성윤리 사건이 확대되면서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식으로 받아 들이며, "교회내 성윤리 문제는 만연하고 있으며, 이 중심에는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교회는 목회자(담임목사) 대 교인들로 구조가 이루어져 있다. 교인들은 목회자를 존경의 대상임과 동시에 사모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이러한 도가 넘치게 되면 결국 목회자를 성직자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대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교회 내에서 목회자의 절대적인 권력(?)이 교인들을 자신의 소유물과 같이 생각하면서 교회 여성들을 유혹할 수 있다.
 최근에 발생한 사례에서도 이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담임목사가 교회 여성 교인을 담임목사실로 불러 안마를 하도록 시킨 사건이다. 이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결국 꼬리가 잡히게 되고 교회 내에서 문제가 되면서 메스컴까지 타게 됐다. 성도들은 담임목사의 말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도록 가르치고 배워왔기에 별다른 의심 없이 담임목사의 요청에 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문제를 만들게 됐다는 것이다.
 또한 목회자가 교인들과 쉽게 접촉이 가능하게 되면서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작은 교회에 출석하며 혼자 살고 있는 한 여 집사의 사례가 있다. 혼자서 살고 있던 이 집사는 가정에서 재봉 일을 하면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담임목사의 심방을 받게 됐다. 처음에는 교인들과 함께 심방을 왔지만 몇번 거듭되더니 담임목사 혼자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안수기도를 한다는 이유로 몸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목사는 따듯한 방 바닥에 손을 대고 있다가 "불 받으라"며 몸에 손을 댓던 것.
 여성도와 함께 심방길에 나서는 경우도 성적 타락의 길로 들어서는 원인이 되고 있다. P교회에서 시무하는 L목사는 여 성도와 함께 심방을 명목으로 동행했다가 교인들의 눈에 띄어서 홍역을 치루기도 했다.
 이 목사의 경우 여성 성도와 지방에 심방을 자주 다녔고, 이같은 내용이 교인들에게 알려지면서 결국 교회를 사임하게 되었다. 담임목사와는 성격의 차이는 있지만 부교역자도 성적인 유혹에 빠져들 수 있다. 교구를 담당하고 직접 심방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젊은 부교역자들은 교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스스로 자신을 지키지 못할 경우 평생에 지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길 수도 있음을 관계자들은 충고한다. 더군다나 사회가 점점 성적으로 문란해지면서 여성 교인들에 의한 유혹의 손길이 부교역자들에게 향하고 있는 것이다. 중형 교회에서 부목사로 시무한 바 있는 K목사는 심방을 하자는 명분으로 교인들이 수시로 불러 내는 고통을 경험했다며, 권사를 포함한 몇 명의 여 집사들과 함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함께 놀아(?) 주는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 집사 중에는 실질적으로 1대 1 만남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부교역자를 대상으로 한 이러한 요구는 결국 교회를 떠난 후에도 이어져 목회에 지장이 되는 경우도 있다. A 목사는 다른 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이후에도 이전 교회에서 자주 만남을 가졌던 여집사가 계속 연락을 해와서 결국 가정문제로까지 확대돼 이혼을 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같이 교회내 성윤리 문제는 어떤 상황에서 일어날지 모를 정도로 다양한 사례로 나타나고 있다. 때로는 목사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피해자의 위치에 서기도 한다. 그러나 결론은 한번의 실수가 평생해야할 목회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미 목회 현장을 떠난 목회자들이 상당수이다.
 경험자들은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라고 말한다. 문제가 될 것을 두려워해서 목회에 지장을 받아서도 안된다. 교인들과 거리를 둘 수도 없다. 은퇴한 한 목사는 평생 목회를 하면서 모든 심방을 부인과 함께 했다고 말한다. 이 목사는 사회적으로 말하는 성공적인 목회는 하지 못했지만 은퇴하면서 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게되었다며 걸어온 목회 여정을 스스로 잘했다고 평가한다.
  박만서 mspark@pckworld.com

 2. 목회자의 성-상담학적 접근

 최근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목회자 성추문 뉴스가 매스미디어에 오르고 있어서 교계가 온통 빈축의 화살을 맞고 있다. 난관에 봉착한 교회들은 사후 수습으로 몸살을 앓는다. 어떤 경우는 슬그머니 덮어두어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기를 바란다. 소극적 대처는 질병의 잠복기를 넘어 발견된 경우 손댈 수 없는 치명적 상황에 이르는 것처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수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보도된 성 스캔들의 다수는 지도자들보다는 교인 간의 사건들이었던 것이라고 주장하려다가 '가재가 게 편드는' 속물근성과 방어기제로 간주될 것 같아 필자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간다. 경건생활의 본이 되어야 할 교회지도자가 그런 일을 자행할 수 있는가 자괴감에 빠져 허송세월을 보내기보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보면서 원인과 대처방안을 제시하고 싶다. 
 원인을 살펴보면, 첫째 문제의 목회자들 대부분 인기 연예인과 같은 주목과 관심을 받게 되는 인기인의 요소(star factor)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 요소는 약도 되지만 독도 될 수 있다. 인기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팬처럼 교인들도 지도자들을 부추긴다. 교인을 상담하다가 추문에 휘말리는 목회자가 의외로 많다. 비근한 예로 가정생활에 욕구불만을 느끼고 있던 목사와 교인이 만났다 하자. 상대방의 상황에 몰입되면서 자신의 불만을 상대에게서 보게 된다. 병행 상황(parallel situation)이 연출된다. 거리끼는 느낌을 갖게 된다면 개선의 여지라도 있다.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수렁에 빠지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때로는 스스로 유혹의 덫에 빠지거나 미끼를 던지기도 한다.
 두 번째로 신학교와 사역의 현장에서의 목회자 훈련으로 친밀성이 요구되는 실제 상황에 대한 준비가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목회자들이 빈번히 마주치는 성적 유혹과 타락에 대한 예방 교육이 절실하다. 현 시대의 목회 상황은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지고 자유분방하고 자기표현을 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목회 사역을 할 때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교우들을 향한 돌봄과 위로의 사역은 부득불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상냥하고 친절한 자세를 갖지 않고도 목회에 성공한 사람들은 행운아가 아닐 수 없다. 함께 사역하는 이들과 날마다 마주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정도 들고 친밀한 관계를 가지게 되어 유사(quasi) 부부 또는 연인 관계를 맺게 된다. 상당히 가까운 사이에나 나눌 수 있는 대화가 가능해 진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러기에 안전하고 적절한 처신을 배워야 한다.
 세 번째 목회 현장에서 겪게 되는 신체와 심리의 부담에서 발생하는 피로와 탈진 극복에 실패하였기 때문으로 본다. 과중한 목회 업무에 따르는 과로와 스트레스와 인간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노 등이 목회자들을 갉아먹는 병원균이 되고 있다. 가정에서 얻어야 할 휴식과 피로의 회복이 불만족스러울 때에 유사관계를 추구하다가 추문사건에 휘말릴 수도 있게 된다. 목회자는 자기내면에 부지중 일어나는 친밀성의 욕구, 성적인 욕망에 대한 감각이 없거나 무관심하면 문제다. 보통 사람의 욕구를 지니면서도 건전한 예방과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는 것은 전문성 확립에 실패한 것이며 자격박탈감이다.
 복음 사역을 맡은 자로서 도덕적인 잣대로 자신의 언행심사의 건전성을 가늠하면서 목회를 해나가야 하는 외롭고 고독한 과정을 견뎌야 한다. 노회나 시찰회의 동료목회자들이 지원과 모니터링을 하는 감독과 고급인력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정신과 의사들이 자신들의 정신건강을 위하여 감독과 점검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에 목회자를 위한 대처방안을 제시한다. 하나, 나와 너의 몸과 마음의 바람을 민감하게 성찰하는 자세를 갖자. 고통을 겪고 있는 가정을 돌보다가 위험한 선을 넘지 않도록 "선 줄로 생각하거든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사도의 경고를 새기자. 둘,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배우자의 모니터링을 받자. 목회 환경에서 "무늬만 남성 혹은 여성"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가짐은 어떤가. 셋, 산부인과 의사가 환자의 몸을 보고 성욕을 느꼈다간 환자도 의사도 파멸할 수 있다는 소명감으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칼같이 지키는 태도를 목회자도 배우자. 자신은 걱정하지 말라고 호기를 부리는 이들은 특히 조심하라. 어느 틈에 넘어질 수 있다. 넷, 취약한 상황을 만나게 되거든 자신이나 상대방에게 있는 교묘한 위험 징후를 포착하라. 단독 심방은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반드시 배우자나 동반자를 대동하는 것을 불편해 하지 말자. 다섯, 심방과 상담은 교회의 권위에 보고하거나 승인을 받고 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자. 가령, 일대일의 대화(상담, 심방, 회의 등)를 나눌 때에 성적인 의도를 유발하는 신체 접촉을 피해야 하며, 자신의 위치와 머물게 될 시간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상담과 개별적인 만남에 대하여 목회상담위원회에 허락을 얻고, 위급한 문제인 경우에는 교회내의 전문가에게 컨설팅을 요청한다. 여섯, 대처방안을 실천하다가도 실수하였다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치료받고 회복할 수 있는 용기를 갖자. 
 교회공동체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하나, 목회자도 성의 유혹과 타락에 취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보호와 예방정책을 수립하자. 둘, 목회자가 건강하고 윤택한 가정생활을 영위하도록 배려하자. 몸과 마음, 성과 영성을 통합 관리하는 것을 배우고 습득하는 것도 목회 영역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셋, 한 사람의 지도자의 가정과 신체의 건강이 공동체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 가 인식하여 건강한 환경을 제공하자. 넷, 노회는 교회와 목회자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을 전문가들을 모아서 수립하여 모든 교회에 파급시키자. 다섯, 실족한 목회자를 위하여 치료와 상담의 과정을 통하여 회복하여 현장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 보자.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니 친밀한 관계는 뜨거운 감자처럼 보인다. 아기를 목욕시킨 더러운 물을 버리다가 아기까지 하수구에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따뜻한 관계가 없는 목회는 일방적이고, 사랑이 없는 돌봄은 무미건조하다. 사람을 지으신 후 참 좋아하셨던 하나님은 인간의 품성에 성(性)과 영성(靈性)의 양면성도 포함하여 지으시지 않으셨던가! 목회 리더십은 고상한 품격과 양식을 갖출 때에 덕과 지혜로 영혼을 양육하고 돌볼 수 있다고 확신한다.

김진영 교수 ( 호남신학대학교 목회상담학)

 3. 성경에 나타난 성

  최근 성서학 연구동향의 특징 중 하나는 성서윤리에 대한 관심의 고조이다.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회학적 문제에 대해 사회가 교회에 입장과 답변을 물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리스도인이 세상 가운데서 살아갈 때 부딪히는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신학적 입장을 묻는 교회의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성에 관한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와 권익 회복에 맞물려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본고에서 필자는 특집 기획의 의도에 따라 성희롱ㆍ성추행ㆍ성폭력, 결혼ㆍ이혼ㆍ재혼ㆍ근친결혼, 동성애ㆍ성전환, 임신중절ㆍ선택불임ㆍ인공수정, 매음ㆍ음행ㆍ간음 등 제반 성윤리 문제를 다루는 대신, 최근 한국교회 품위 손상과 이미지 실추, 교회의 대 사회 신인도를 떨어뜨림으로써 한국교회 위기론에 한 몫을 하고 있는 교회 내 성윤리 문제, 그것도 목회자의 성윤리 문제에 국한하여, 교회의 자성(自醒)적이고 자정(自淨)적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회복과 갱신을 바라는 마음으로, 다루고자 한다.
 교회 안에서 목회자의 성윤리 문제가 불거지는 이유들 중 하나는 교회 지도자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에 대한 부적절한 의식과 성경을 오용하는 자의적 해석에 따른 자기합리화이다. 목회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 이상의 권리의식을 갖거나 자신에게 할당된 의무 이하의 의무의식을 가지면, 또한 성윤리에 관한 판단과 해석에서 성경을 전체적으로 신학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인용하여 자신의 잘못을 가리는 인본적인 합리화의 수단으로 삼으면, 이는 목회자를 '하나님의 종'으로 여기며 따랐던 성도들과 신앙 공동체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경을 하나님 편에서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신학적 성서윤리관의 확립이 화급하게 요구된다.
 그러면, 목회자가 성적인 유혹을 물리치고 제반 성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목회자의 성윤리에 대한 성경의 신학적 원리는 무엇인가? 신구약성경이 제시하는 신학적 인간관의 으뜸 되는 명제는 다름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으며, 인간은 그의 피조물이라는 점이다(창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타락하여 죄를 범하였는데, 죄인 된 인간이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이 신학적 인간 이해의 핵심이다(고후 5:17). 이러한 핵심 원리를 근거로 삼아 목회자의 부도덕한 성윤리, 곧 '음행'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성경에서 모든 종류의 불법적인 성관계를 가리키는 음행은 무엇보다도 교회 지도자가 경계하고 삼가해야할 독버섯과 같다. 그것은 음행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성도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 음행은 '몸에 범하는 죄'(고전 6:18)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마 28:20; 롬 12:1-2)을 파괴하고, 또 세상과 벗되는 것이기에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한다(약 4:4). 둘째로, 음행은 신자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을 때 하나 된 그리스도와의 관계(롬 6장)를 깨뜨린다. 그리스도인은 수세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고, 이로써 그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고전 6:15)가 되는데, 음행은 몸에 생긴 암과 같기에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파괴한다. 셋째로, 음행은 육욕(肉慾)적인 삶(갈 5:19)으로 이끌어감으로써 '성령으로 사는 삶'(갈 5:25)을 저지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된 성도의 몸은 '성령의 전'(고전 6:19)이다. 따라서 음행은 성령의 전인 몸을 상하게 하는 범죄 행위이다. 넷째로, 음행은 거룩한 삶을 방해한다. 성경적 의미로 '거룩함'이란 구별됨이다. 성도가 세상과 구별되게 거룩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다(레 11:45). 이 거룩함에 이르는 한 길은 '음란을 버리는 것'(살전 4:3)이다. 음행은 무엇보다도 목회자의 거룩성을 빼앗는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지도력을 잃지 않고 거룩성을 유지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도들 앞에 서려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딤전 2:8)는 바울의 권면을 기억해야 한다. 다섯째로, 음행은 성도의 기본적 삶의 자세인 '종말적인 삶'을 가로막는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고 권면했던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마치 아닌 것'처럼 처신하는 것을 성도의 기본 신앙 태도로 가르쳤다(고전 7:29-31). 다가오는 종말에 부합된 신앙적 삶의 자세는 '아내 있는 자가 없는 자 같이 하는 것'이다. 여섯째로, 음행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목회자의 소명과 사명을 파괴한다. 목회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제자 삼는 사명을 가지고 있으나(마 28:19), 음행은 이를 저지한다. 게다가 음행은 목회자로 하여금 '양 무리의 본'(벧전 5:3)이 되지 못하게 한다. 이로써 목회자는 사실상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딤후 3:5)로 전락하고 만다. 마지막으로, 음행은 목회자 자신의 가정을 파괴하고 또한 다른 성도의 가정도 파괴한다. 바울에 의하면, 교회의 지도자는 한 아내의 남편으로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해야 한다(딤전 3:2). 이는 제 집을 다스리지 못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딤전 3:5). 목회자의 음행은 다른 가정을 파괴하는 간음 행위다. 목회자의 부적절한 성행위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라고 기도하며 가르쳐야할 목회적 책임에 사실상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함으로써 제3계명(출 20:7; 신 5:11)을 파기하는 셈이다.
 전술(前述)한 성윤리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목회자가 건강한 성윤리 의식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목회자의 부도덕한 성문제를 예방하는 목회자 성윤리의 'ABC'다. 목회자의 건전한 성윤리를 위해서는 목회자 스스로 '성적인 유혹을 물리치라', '음행을 피하라'는 성경 구절에 눈을 크게 떠야 한다. 또 거짓 목회자에게 내릴 심판(유 3-16)에 대하여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 20-21)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들을 귀'가 목회자에게 필요하다. 목회자라 할지라도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어찌 육욕이 없이 살 수 있겠는가? 그렇다 할지라도 육욕을 음행으로 발산하지 않고, 믿음으로써 절제하며 사랑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지혜와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모든 교회 지도자들에게 요구된다. 교회 안에서 성문제를 일으키고도 밧세바를 범한 다윗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구렁이 담 넘듯 얼버무리며 아무 일 없었던 것으로 여기고, 자기를 기만할 뿐 아니라 성도를 속이며 하나님을 속이는 자는 다윗이 얼마나 철저하게 회개하며, 회중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복을 위한 적절한 수순을 밟아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백성들의 신뢰를 회복한 후에야 비로소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올바른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새겨들어야 한다.

장흥길(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4. 목회자 성문제의 윤리적 문제

 때는 바야흐로 목회자 수난시대다. 최근 들어 부쩍 목회자들이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바람직한 일로 주목을 받는다면 좋겠지만 대부분 목회자의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고 있다. 목회자의 성적 탈선도 그 중 하나다.
 목회자는 영적 지도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남성과 여성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목회자 역시 성적 정체성을 가진 존재라는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영적 지도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초월할 수는 없다. 이것은 목회자 역시 인간의 성적 측면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고 이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 듯이 보인다. 많은 목회자들은 성적 탈선에 빠진 목회자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서 막연히 "조심해야지!"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조심해야 하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듯 보인다. 그렇다면, 목회자가 성 문제에 연루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영성과 성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를 통합적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영성은 거룩한 것이고 성은 세속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인간에게 성 정체성을 주신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위배되는 것이다. 최초의 두 사람이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성이 타락의 산물이 아니라 타락 이전에 존재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창2:25에는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였다고 소개하는데, 이것은 영성을 상징하는 장소인 에덴동산에서 성의 긍정적 측면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대 영성학자들은 영성과 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영성과 성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건강한 부부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성을 억압하고 억누르는 것만이 참된 영성에 도달하는 길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결혼 내에서의 사랑의 관계에 대한 성서의 교훈과 배치되는 것이며, 기도할 틈을 얻으려는 때 외에는 부부가 분방하지 말라는 성경의 교훈과도 배치되는 견해다. 또한 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표면적으로 부부관계를 멀리하는 것이 더 깊은 영성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라 생각하는데 까지 나가가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극단적인 성의 억압은 도리어 성 자극의 격화나 불가피한 폭발 혹은 성적 탈선을 야기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건강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한 부부관계란 육체적 측면만이 아니라 정서적 측면과 영적 측면을 모두 포함하는 전인적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 및 동료들과의 친밀한 관계 또한 중요하다. 이런 관계들은 목회자로 하여금 성적 유혹에 대처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셋째, 금욕 훈련을 해야 한다. 영성신학자 루이 부이에는 배우자의 욕구를 존중하며 각자의 욕망을 잘 조절하며 경우에 따라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다. 이것은 부부 사이라 하더라도 쉽게 이기적인 쾌락의 추구에로 빠질 수 있고 상대방의 기쁨을 빼앗는 것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말이다. 성적 욕구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잘 다스릴 때 건강한 영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영성훈련이 부족할 때 세속적 욕구를 제어할 능력이 약화되고 성적 탈선을 포함한 여러 가지 문제를 낳게 된다. 초대 기독교인들의 영성은 금욕적이었는데, 여기서 '금욕'의 의미는 엄격과 극기의 행동이라기보다는 덕의 실천과 성장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금욕훈련은 소극적 의미로서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 대한 절제 훈련과 함께 적극적 의미로서 덕의 실천이 동시에 필요하다.
 넷째, 성윤리 지침이 필요하다. 이 지침은 목회자가 개인적으로 마련할 수도 있고 교단 차원에서 마련할 수도 있다. 제임스 맥도널드는 목회자로서 자신이 성적탈선에 빠지지 않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지침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1) 나는 어떤 상황 하에서도 나 혼자서 내 아내나 나의 직접적인 가족구성원이 아닌 여성과 차를 타지 않을 것이다. 2) 나는 폐쇄된 공간에서 여성과 상담하지 않는다. 3) 나는 홀로 호텔에서 밤을 지내지 않는다. 4) 나는 내 아내가 내 곁에 있거나 없거나 간에 흔히 공개적으로 내 아내에 대한 나의 애정을 말한다. 5) 인격이나 행동을 칭찬하고 머리장식이나 옷을 칭찬하지 않는다. 이 지침이 문화에 따라 다소 다르게 해석될 여지는 있지만, 목회자가 개인적으로 성윤리 지침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교회 내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목양실은 부교역자실이나 사무실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것이 좋다. 목양실이 고립된 공간에 위치해 있을 때, 예기치 않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고 목회자가 대처하기가 힘들어질 수 있으며, 헛된 소문이나 문제의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다. 또한 소위 꽃뱀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목회자를 유혹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경계와 대처 또한 중요하다. 일과 시간 이외에 목회자가 교회 내에 있을 경우 최소한 다른 동성 교역자 한 명 이상과 함께 있는 것이 좋다. 불가피한 경우라 하더라도, 이성 성도의 불시의 방문은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목양실은 목회자 개인의 사적 공간이라기보다는 목회자의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공간이자 동시에 영적 상징성을 띤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목회자는 교인들이 목양실을 출입하는데 있어서의 기본적인 에티켓을 교육해야 하며, 목양실 내에 성적 유혹이 될 만한 요소가 있는지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결국 어려움에 빠지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김승호 교수(영남신학대학교, 목회윤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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