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특집-지도자를 바꿔야 한다

2월특집-지도자를 바꿔야 한다

[ 연재 ] 폭력에 흔들이는 한구교회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11년 05월 26일(목) 11:58

 추락하는 한국교회의 끝은 어디인가? 최근에 일반 언론까지 뜨겁게 달구었던 교회내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바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목회자의 윤리문제, 교회내 폭력,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 많은 사건들 등등. 이미 한국교회는 교인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교인이 떠난 교회, 더이상 양육해야할 교인들이 없는 목사를 생각해 보았는가? 한국교회 현주소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통계들 또한 어두운 그림자를 걷히게 할 만한 빛을 찾아 보지 못할 정도이다. 한국교회의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특별기획 2월 기획의 주제를 '지도자가 바뀌어야 한다'로 잡았다. 한국교회 지도자의 현주소를 살펴 보고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1. 폭력에 흔들리는 한국교회

 최근 한국교회를 어둡게 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같은 사건들은 기자들의 펜끝에서 회자되는 뉴스로 변모에 이제는 교회내의 사건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주일, 그 것도 새해를 시작하는 첫 주일에 담임목사 방에서 일어난 폭력 사건은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보기에도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어서 발생한 목회자의 성추행 사건과 무리한 교회 재정의 운용 등은 한국교회를 빠져 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몰아 넣었다. 그렇다고 재를 뿌리고 옷을 찢으며 회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회 지도자로 자처하는 목사들이 여전히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최근에 열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총회에 이어 잇따라 진행되고 있는 지도자들간의 싸움은 종착점이 보이지 않고 있다.
 몇 년전 발생한 한 대형교회 내분이 사회적인 이슈가 된 일이 있었다. 이 교회의 분규는 결국 사회법정에 서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주일이면 교회 인근이 마비가 될 정도로 교인들간에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본당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하기 일쑤 였고, 심지어는 폭력으로 인해 고소소발 사태까지 발생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 교회 내분이 교인들을 범법자로까지 만드는 결과를 낳았으며, 한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리던 교인들이 얼굴 조차 대면하지 않는 감정싸움으로까지 확대됐다.
 교인들 간의 물리적인 충돌은 경비용역까지 동원하는 일로 확대돼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전개되기 일쑤다.
 분규가 있었던 또 다른 교회의 경우 상대 교인들이 교회에 들어가 각종 자료 빼내가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신앙이 깊지 않았던 교인들 중에는 더이상 교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흩어져 버리기도 했다. 다른 교회로 옮겨 신앙생활을 지속하는 교인은 그남아 좋은 편이다. 교회 중에는 이러한 교인들을 낳기위한 얌체족도 있기는 하지만. 교회에 대해 증오하고 더이상 교회에 발을 들어 놓고 싶지 않다고 떠나버린 영혼들에 대해서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개교회 분규의 상당수가 교회내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목사와 장로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또 교회 지도층에 반대해서 안수집사와 권사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면서 확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주일마다 이루어지는 예배시간에 강단을 중심으로 폭력사태가 벌어진다. 경기도 ㅇ시에 위치한 ㅇ교회의 경우 주일 설교를 위해 강단에 오르던 담임목사를 반대하는 장로들과 안수집사들이 몸싸움을 벌리는 과정에서 목사가 넘어져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주일에 강단에 오를 수 없는 목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예배 시간에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강단에 오르는 목사를 막아서는 교인들, 그리고 주장을 달리하는 교인들끼리 패를 갈라 서로 밀치며 몸싸움을 하는 사건 등이 오늘 한국교회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이러한 폭력 불감증을 가진 교회의 모습이 지난 첫 주일에 발생한 ㅅ교회의 폭력사태를 불러 온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법적으로 시시비비가 가려 지겠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교인들이나 사회의 일반인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원인이야 어떻건 간에 새해 첫 주일 예배 설교를 앞두고 있는 담임목사의 방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목사와 목사 사이에서 주일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충격이 컸던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
 또한 한기총 총회에서 발생한 사건은 교인들을 더욱더 경악하게 한다. 대표회장으로 출마한 후보자들간에 서로의 비방하며 불법적인 사례를 찾아 사회법정에 맞고소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으며, 대표회장을 인준하기 위한 총회 자리에서 입장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고성이 오가며 심지어는 회의장 앞에까지 나와 서로 밀치고 욕설까지 오가기도 했다.
 한편 교회내의 물리적인 폭력사태와 함께 이미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언어폭력 문제 또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강단에서 쏟아내는 독설로 인해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는 교인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교인들의 이구동성이다. "전도를 하기 위해 대상자와 대화를 하다보면 이미 교회를 다닌적이 있고, 교회에서 상처를 받아 더이상 교회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는 한 전도자는 "이들이 받은 대부분의 상처는 강당에 서서 설교하는 목사와 교회 지도자들의 언어 사용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당회나 사석에 있었던 일을 강단에서 목사가 설교 중에 감정을 섞어 내뱉기도 하고, 장로는 기도 중에 목사를 비방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러한 피해는 결국 순수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 교인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음을 보게 된다. 우리 나라 정치권에서 말하듯이 "이제 막가자"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내 폭력사태는 더욱더 늘어날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오늘의 현실을 한국교회 지도자, 즉 목사 장로들이 위기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1970, 80년대에 교회가 급성장하던 시기에 이를 주도했던 목회자들이 은퇴하고 교회 지도력이 바뀌면서 그동안 담임목사에게 눌려 있었던 장로들이 기세가 점점 등등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담임목사가 교체된 많은 교회들이 새로운 목회자와 교인들간의 갈등 관계에게 출발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문제가 내부적으로 해결되고 잘 자리를 잡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교회에 따라서는 갈등 관계가 문제로 표출돼 결국은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고, 급기야는 법적고소 사태까지 확대되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인들간에 편이 나누어져 폭력사태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게된다. 또 이같은 결과를 낳기까지 상대를 이해하거나 배려하는 기독교적 정신은 전혀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타협이나 협상도 없이 불꽃이 튀는 갈등과 폭력만 있을 뿐이다.
 박만서 mspark@pckworld.com

 2. 군림 아닌 섬김으로

 최근 한국교회를 어둡게 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같은 사건들은 이제는 교회내의 사건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주일, 그 것도 새해를 시작하는 첫 주일에 담임목사 실에서 일어난 폭력 사건은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보기에도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어서 발생한 목회자의 성추행 사건과 무리한 교회 재정의 운용 등은 한국교회를 빠져 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몰아 넣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를 뿌리고 옷을 찢으며 회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회 지도자로 자처하는 목사들이 여전히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최근에 열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총회에 이어 잇따라 진행되고 있는 지도자들간의 교권 싸움은 종착점이 보이지 않고 있다.
 몇 년전 발생한 한 대형교회 내분이 사회적인 이슈가 된 일이 있었다. 이 교회의 분규는 결국 사회법정에 서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주일이면 교회 인근이 마비가 될 정도로 교인들 간에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본당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하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폭력으로 인해 고소고발 사태까지 발생,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
 교회 내분이 교인들을 범법자로까지 만드는 결과를 낳았으며, 한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리던 교인들이 얼굴 조차 대면하지 않는 감정싸움으로까지 확대됐다. 교인들 간의 물리적인 충돌은 경비용역까지 동원하는 일로 확대돼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전개되기 일쑤다.
 분규가 있었던 또 다른 교회의 경우 상대 교인들이 교회에 들어가 각종 자료 를 빼내가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신앙이 깊지 않았던 교인들 중에는 더이상 교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흩어져 버리기도 했다. 다른 교회로 옮겨 신앙생활을 지속하는 교인은 그나마 다행인 편이다.
 교회에 대해 증오하고 더이상 교회에 발을 들여 놓고 싶지 않다고 떠나버린 영혼들에 대해서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개교회 분규의 상당수가 교회내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목사와 장로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또 교회 지도층에 반대해서 안수집사와 권사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면서 확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주일마다 이루어지는 예배시간에 강단을 중심으로 폭력사태가 벌어진다. 경기도 ㅇ시에 위치한 ㅇ교회의 경우 주일 설교를 위해 강단에 오르던 담임목사를 반대하는 장로들과 안수집사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목사가 넘어져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주일에 강단에 오를 수 없는 목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예배 시간에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강단에 오르는 목사를 막아서는 교인들, 그리고 주장을 달리하는 교인들끼리 패를 갈라 서로 밀치며 몸싸움을 하는 사건 등이 오늘 한국교회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이러한 폭력 불감증을 가진 교회의 모습이 지난 첫 주일에 발생한 ㅅ교회의 폭력사태를 불러 온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법적으로 시시비비가 가려지겠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교인들이나 사회의 일반인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원인이야 어떻건 간에 새해 첫 주일 예배 설교를 앞두고 있는 담임목사의 방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목사와 목사 사이에서 주일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충격이 컸던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한기총 총회에서 발생한 사건은 교인들을 더욱더 경악하게 한다. 대표회장으로 출마한 후보자들간에 서로 비방하며 불법적인 사례를 찾아 사회법정에 맞고소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으며, 대표회장을 인준하기 위한 총회 자리에서 입장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고성이 오가며 심지어는 회의장 앞에까지 나와 서로 밀치고 욕설까지 오가기도 했다.
 한편 교회내의 물리적인 폭력사태와 함께 이미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언어폭력 문제 또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강단에서 쏟아내는 독설로 인해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는 교인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교인들의 이구동성이다. "전도를 하기 위해 대상자와 대화를 하다보면 이미 교회를 다닌적이 있고, 교회에서 상처를 받아 더이상 교회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는 한 전도자는 "이들이 받은 대부분의 상처는 강당에 서서 설교하는 목사와 교회 지도자들의 언어 사용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당회나 사석에 있었던 일을 강단에서 목사가 설교 중에 감정을 섞어 내뱉기도 하고, 장로는 기도 중에 목사를 비방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러한 피해는 결국 순수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 교인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보게 된다. 우리 나라 정치권에서 말하듯이 "이제 막가자"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내 폭력사태는 더욱더 늘어날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오늘의 현실을 한국교회 지도자, 즉 목사 장로들이 위기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1970, 80년대에 교회가 급성장하던 시기에 이를 주도했던 목회자들이 은퇴하고 교회 지도력이 바뀌면서 그동안 담임목사에게서 장로들쪽으로 힘의 방향이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담임목사가 교체된 많은 교회들이 새로운 목회자와 교인들간의 갈등 관계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문제가 내부적으로 해결되고 자리를 잡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교회에 따라서는 갈등 관계가 문제로 표출돼 결국은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고, 급기야는 법적고소 사태까지 확대되곤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인들간에 편이 나누어져 폭력사태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또 이같은 결과를 낳기까지 상대를 이해하거나 배려하는 기독교적 정신은 전혀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타협이나 협상도 없이 불꽃이 튀는 갈등과 폭력만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박만서 mspark@pckworld.com

 3. 섬김의 리더로 거듭나야 한다

 목사들끼리 모이면 당회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한 목사는 당회에 들어가기 전에 우황청심환을 먹고 들어간다고 한다. 당회에서 놀랄 일도 많고, 가슴 뛸 일도 많아서 미리 약을 먹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들은 이야기는 당회에서 한 장로가 사사건건 너무 반대를 해서 목사가 멱살을 잡고 끌고 들어가서 욕을 해 주었다고 한다. 어느 목사는 행정목사를 두어서 당회를 그 분이 주관하게 한단다. 자신은 성품이 급한데 그 목사는 성품이 좋아서 그러한 회의를 잘 한다는 것이다. 정말 목사들 모아 놓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이러한 이야기들이 무용담처럼 끝도 없이 펼쳐진다.
 물론 장로들이라고 안 그렇겠는가. 장로들도 모이면 교회 걱정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목사의 문제가 단골로 찾아든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장로들이 잘 지도하고 견제를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될 목사들이 또 많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목사와 장로들이 교회에 모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교회를 위해서 서로를 견제하고 힘을 앞세워서 정의를 세우겠다고 할 것 아닌가. 근데 그 교회는 무엇이고, 그 정의는 무엇인지 우리는 물을 수밖에 없다. 혹시 그것이 교권이 되고 권력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되짚고 싶은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젊은 사람들의 눈이다. 목사와 장로를 그렇게 권위 있는 직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젊은 사람들의 눈에서 그들이 교회의 권력을 얻기 위해서 싸우고, 총회의 자리를 얻기 위해서 싸우는 모습은 결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즉 교인들과는 동떨어진 자리에서 그들이 교회를 대표하여서 싸우고 있다는 것이 이 어찌 한심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그러한 이전투구를 통해서 얻은 권력으로 교인들 앞에서 우세라도 떤다면 그들을 보는 교인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교회에서 자라난 교인들은 대부분 교회에서 일어난 분쟁을 경험해 보았다. 존경하던 목사가 떠나는 것도 보았을 것이고, 장로파와 목사파가 갈려서 멱살잡이하는 것도 보았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사랑하는 이들이, 그리고 존경하는 이들이 시정잡배만도 못하게 변해가는 모습도 보았을 것이다. 이런 이들이 아직 교회에 남아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어릴 적 상처를 부여안고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를 품고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면 그들의 신앙이 순수하거나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게 내 자녀이고, 내 믿음이 후손인데 어찌 그러한 생각도 없이 하나님의 교회를 훼하고, 그들에게 이런 무지막지한 상처를 주고 있는가. 
 바울 선생님은 직분을 은사라고 표현했다. 고전 12:28을 보면 사도, 선지자, 교사라는 당시의 직분을 나열하고서는 능력 행함, 병고치는 은사,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 각종 방언 말하는 것을 나열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이 직분들도 이 뒤에 나열되고 있는 이 은사들과 다를 바 없는 은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은사를 왜 주셨는가. 그것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뒤에 열거된 은사들을 하나님이 주신 것처럼, 사도, 선지자, 교사라는 직분도 결국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은사, 즉 선물로 주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의 직분은 내가 노력하여서, 내가 돈 주고 힘써서 얻는 것이 되었다. 그 자리가 점점 높아질수록 그 액수가 높아지고, 고도의 전략이 필요로 한다. 그렇게 얻은 자리이니 본전도 찾아야겠고, 노력에 대한 대가도 얻어야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인지상정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 즉 은사라고 이야기하겠으며, 그것을 통해서 교회를 세워야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세상이 많이 변했다. 이제 권위가 해체되어지고 각 개인이 세상의 중심이 되고 있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인정받지 못한지는 이미 오래전이고, 대통령이 아이들의 우스갯거리가 된지도 오래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생활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된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감히 질문 하나 던져 보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거리낌 없이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부당한 것이 있으면 거침없이 저항하고 있다. 그런데 교회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목사는 아직도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알고, 장로 역시 노인의 흉내를 내려고 하고 있다. 걸어 닫은 당회실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리그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이 변한 만큼 교회의 젊은이들도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불합리하고 권위주의적인 교회의 구조 앞에서 많은 젊은이들은 좌절하고 실망하면서 조용히 교회를 떠나고 있다. 때론 저항해 보지만 그렇게 교회가 그들의 삶에 있어서 중요하지도 않다. 교회가 이들을 받아주지 않으면 내가 떠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그러면 이제 걸어 닫은 당회실만의 교회에서 그들만의 교회가 되지 말란 법이 있을까. 교회를 세우라고 임명한 그들을 통해서 교회가 무너지고 있는데 우리는 쳐다만 보고 있는 것이 올바를까.
 목사, 장로와 같은 교회의 직분자들에게서 많은 감동을 받고, 덕분에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문득문득 이들로 인해서 무너지는 교회를 보는 것은 필자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권력은 갖는 순간부터 사람을 망가뜨리는 신기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혹 이분들이 이 직분을 권력으로 이해한다면 곧 그들도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직분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 즉 은사라고 그들이 생각한다면 이들로 인해서 세워지는 교회가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조성돈교수(실천신학대학워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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