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죽음의 의미

예수 죽음의 의미

[ 말씀&MOVIE ] 그랜토리노 감독: 클린트이스트우드/2009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04월 27일(수) 13:48

죽음은 더 이상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능하지 않은 상태이다.

죽는다는 것은 죄인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성도들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부활을 기대하며 소망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분명 슬픈 것이고 유족들에게는 고통스런 일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며 고난의 삶을 결단하는 것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절기이지만 그의 죽음의 의미를 묻는 질문은 늘 우리의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본회퍼 목사가 물었듯이,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나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죽음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감독이 이런 질문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필자는 '그랜토리노'에서 그 대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듭 반복되는 절기에 실재는 사라지고 단순히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가 새롭게 조명되는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미국의 한 마을에 사는 아시아계 가족과 백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이웃집 노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다. 노인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자신이 살기 위해 적을 죽여야만 했던, 그것도 어린 소년병들에게 총을 들이대야 했던 자신의 행위에 깊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성격이 까칠하기로 소문나 그의 가족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는 처음에는 이웃과의 소통을 거부하지만 자신에게 보여주는 진심에 감동되어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 그런데 같은 아시아계인 폭력조직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는 청년을 구해주는 일로 인해 청년의 가족 전체가 테러를 당한다. 특히 자신이 마음을 여는 일에 크게 기여했던 청년의 누나가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는 복수를 꿈꾸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악은 악을 불러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고민 끝에 그가 선택한 것은 복수가 아니라 자신의 죽음이었다.

즉, 갱단들이 스스로 붕괴되도록 한 것이었다. 총을 소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을 찾아간 그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쏘게 만들어 그들이 사회에서 격리되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이웃하는 가족의 삶이 아무런 염려 없이 계속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건강한 삶을 가능하게 한 것이었으며, 미래가 있는 삶이 가능해지도록 한 것이었다.

그의 죽음의 의미는 비록 대속적인 죽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해도 적어도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 예수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죽음이 아닐 수 없다. 예수의 죽음은 바로 우리의 삶이 방해받지 않고 건강하게, 풍성하게, 계속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제자도는 예수의 삶만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도 죽는 것까지 포함된다. 형제자매의 삶이 풍성해질 수 있기 위해서 내가 죽어야 한다면,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죽는 것이 바로 예수의 죽음이 오늘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