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16일

4월 11~16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04월 06일(수) 15:55

월-이 사람을 보라
본문: 요 19:1-7
찬송가: 151장(구 138장)

지금 우리는 봄의 한가운데를 살고 있는 것이다. 봄은 무언가를 보는 계절이어서 봄이라고 한다.
 
무엇을 보는가? 아름다운 꽃들을 보고 새롭게 돋아나는 싱그러운 잎들을 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한 사랑을 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언제나 봄에 들어 있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화창한 봄날을 즐길 때에도 아름다운 봄날 속에 들어있는 예수님의 슬픔과 아픔과 고통을 보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나버림의 진한 사랑을 보아야 한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보라 이 사람이로다"라고 말했다. 이는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들이 마음 속 깊이 새겨 들어야할 가장 귀한 말씀이다.
 
사람은 누구나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능력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보지 않고서구원을 받는 길은 없다. 성경은 "예수님 이름 외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행4:12)"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이 절대 불변의 진리임을 믿는다. 만일 예수님을 믿지 않고도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면 가장 존귀하신 예수님께서 그 참혹한 십자가를 왜 지셨겠는가?
 
십자가는 예수님이 유일하신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이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순절 동안에 더욱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새봄 주심을 감사합니다. 모든 생명들이 새로워지는 이 봄에 십자가의 주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봄으로 믿음과 사랑이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국현 목사
한일교회 시무

화-숨은 보배 같은 사람
본문: 수 14:10-15
찬송가: 212장(구 347장)

2002년 월드컵 당시에 '이경규가 간다'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경기장 밖에서 숨은 이야기를 실감나게 풀어주었다. 특히 매 경기마다 숨은 MVP를 한 명씩 뽑았다. 보통 우리는 축구경기에서 골을 넣은 선수를 MVP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프로에서는 골과 전혀 관계없이 경기의 수훈선수를 뽑았다. 첫 경기인 폴란드전에서 골 넣은 황선홍 선수나 유상철 선수가 아닌 김남일 선수가 뽑혔다. 그리고 두 번째 미국 경기에서는 부상투혼을 발휘한 황선홍선수, 그리고 세 번째 포르투칼 경기에서는 수비를 잘한 최진철 선수가 받았다. 화려한 공격수가 아닌 숨은 영웅을 발굴하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오늘 본문에도 숨은 보배 같은 한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갈렙이라는 인물이다. 여호수아가 골을 넣는 공격수라면 갈렙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어시스트 해주고 뒤에서 보이지 않게 수비하고 방어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감독 입장에서 보면 누가 더 예쁠까? 골 넣은 선수도 예쁘지만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도와준 선수가 더 예쁜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신앙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며 섬길 때 가장 크게 기뻐하신다.
 
또 한 가지 갈렙에게 배울 것은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했다는 점이다(11절). 갈렙은 85세의 연로한 나이임에도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수14:12)"라고 요청하고 있다. 지력면에서나 체력면에서나 영력면에서 85세에도 전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기관리를 잘했던 것이다. 결국 신앙생활은 자기와의 싸움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도 갈렙을 본받아 숨은 보배 같은 신앙용사가 되자.

오늘의 기도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오늘도 가정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갈렙을 본받아 숨은 보배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철훈 목사
흰돌교회 시무


수-쾌락으로 위장된 유혹
본문: 창 39:7-10
찬송가: 426장(구 215장)

요셉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생활을 한다. 그리고 보디발의 집에서 쾌락으로 위장된 유혹을 받게 된다. 보디발의 아내가 용모가 준수한 요셉을 유혹한 것이다. 유혹이 까다로운 것은 쾌락으로 위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쾌락 후에는 엄청난 대가와 고통이 있다는 것을 숨기고 다가오기에 사람들이 쉽게 넘어가는 것이다.
 
요셉이 유혹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일까?
 
먼저, 요셉은 작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요셉은 이미 주인의 눈에 들어 보디발의 집 모든 가사를 책임지는 총무역할을 맡았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어렸을 적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거시적 안목을 갖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노예나 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보디발의 집에서 애굽의 문화와 풍습을 배울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요셉은 원칙을 정하고 더 많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위기가 찾아올수록 유혹이 올수록 원칙이 있어야 하며 욕심을 조심해야 한다. 남의 것을 넘보지 않으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감정적으로는 보디발의 아내가 자신을 유혹하는 것이 기분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의지적으로 결단하고 그 자리를 피한 것이다.
 
그리고 요셉은 위기와 기회를 구분할 줄 알았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것이 미끼인지 먹이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요셉이 유혹을 거절 했을 때 감옥에 갇히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만일 유혹에 넘어갔다면 요셉은 보디발에게 발각되어 결국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며 하나님께도 쓰임받지 못했을 것이다. 유혹은 쾌락으로 위장된 고통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세상에 온갖 유혹과 시험이 쾌락으로 위장되어 있습니다. 유혹에 넘어가지 말게 하시고 마지막을 생각하여 능히 이겨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동일 목사
안락교회 시무


목-여호와를 잊지 말라
본문: 신 8:11-20
찬송가: 308장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큰 기쁨이며 복이다. 주는 이는 줘서 기쁘고 받는 이는 받아서 기쁘니 그 자체로 복이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는 우리를 향한 선물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풍요로운 에덴을 선물로 주셨다. 아담과 하와는 매일 아침 에덴의 싱그러운 햇살과 초록빛 우거진 동산, 상쾌한 공기, 새들의 아름다운 천연의 노랫소리를 즐기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복, 영적인 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의 순간이 찾아왔다. 동산 중앙 선악과에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는 순간 찾아온 불행이었다.
 
본문은 가나안 입성에 앞서 모세를 통해 들려주는 경계의 교훈이다. 약속의 땅의 풍요에 도취된 나머지 마음이 교만해져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내용을 담고 있다. 모세는 번영하고 안전을 누릴 그 때 하나님을 잊을까 싶어 걱정한다. 그는 거듭 "여호와를 잊지말라"는 명령을 마치 뼈에 사무친 듯 귀가 따갑도록 반복해서 외치고 있다. 그리고 그 음성이 오늘 우리 귀에까지 쟁쟁하다.
 
우리의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로 풍요로운 만족을 누리는 때에 풍요에 도취되어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잊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어찌 풍요로움이 복일 수 있겠는가? 한 순간에 복은 우리의 영혼을 해치는 독이 되어버린다. 너희를 사랑하사 기뻐하시며 은혜를 주신 "여호와를 잊지말라."

오늘의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사 풍성한 복을 선물로 주심에 감사합니다. 첫 감사와 기쁨을 저버리고 우리의 수고에 따른 결실인 듯 착각하여 하나님을 배도하는 교만을 품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권 목사
영도교회 시무


금-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 되라
본문: 엡 2:10-22
찬송가: 216장(구 356장)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이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셔서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선한 일을 행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이 된 하나의 생명체인 교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피로 값을 주고 사신 구원의 생명체가 교회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었다. 육체로 할례의 징표를 가졌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제사장 나라였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십자가에 죽게 하였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복음을 거부한 것이다.
 
이방인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새 언약의 백성이 되어 구원을 은혜로 받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둘이 하나가 되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어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화목 제물이 되셨다.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화평하게 하셨다. 둘이 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한 생명체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온 인류에게 하나님께서 한 생명체로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된 교회로 구원생명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다. 그 안에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실 성전이 되기 위하여 지어져 간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십자가의 보혈이 흐르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하나의 몸이 되라!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의 죄악으로 하나가 되지 못했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으로 모든 사람과 하나 되게 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연섭 목사
한사랑교회 시무


토-가난한 자가 되라
본문: 마 5:1-3
찬송가: 249장(구 249장)

탈무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스라엘에 머무르고 있을 때 두 사람이 랍비에게 상담을 청했다. 내용은 한 사람이 넝마더미를 샀는데 그 넝마더미 속에 엄청나게 많은 황금이 들어 있었다. 산 사람은 "나는 이 넝마를 산 것이지 그 속에 있는 황금을 산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판 사람은 "내가 당신에게 판 것은 넝마더미 전부이니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건 모두 당신의 것이요"라고 말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랍비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물었다. "대왕의 나라에서는 이럴 때 어떤 식으로 판정합니까?" 대왕은 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둘을 죽이고 내가 그 황금을 가지오. 이것이 내게 있어서는 정의요."
 
나라면 어떻게 할까? 요즘 같이 이기적인 세상이라면 알렉산더 대왕처럼 말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가난한 자가 되라 말씀하신다. 마치 모르고 산 사람이 넝마 속의 황금을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고 또 주인은 그 넝마를 산 사람에게 자신의 것이 아니라 말하는 것처럼 세상의 것들로부터 자신을 비우라 하신다. 왜냐하면 "심령이 가난하다"라는 말은 우리 마음을 황금으로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으로 채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가? 알렉산더인가? 아니면 서로의 것이라고 미루는 두 사람인가?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에 더 좋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심령의 그릇에 세상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담는 가난한 자가 되길 바란다. 세상의 삶을 부요케 하는 황금보다 영혼을 살찌우는 천국의 가치가 더 크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오늘 주님은 가난해지라 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나라를 사모하며 그 나라의 보화로 마음을 채우라 하십니다. 이 진리를 실천하여 하늘의 보화를 갖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남종범 목사
안강제일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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