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삶 나의신앙- 홍희천장로<3>

나의삶 나의신앙- 홍희천장로<3>

[ 나의삶나의신앙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1년 02월 28일(월) 13:25
   
▲ 몇 해 전 가족사진. 아내 김홍숙권사와 딸 혜원.
첫 사업체인 '동문 비닐'은 탄탄대로를 달렸다. 고백하건데, 사업 수완이 뛰어나서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족한 종이기에 기도할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께서 한량 없는 큰 축복을 주셨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사업이 전국 단위로 넓어지면서 규모를 확장했다. 새로운 시작에 앞서 사명을 '에덴의 동산'이라는 의미를 담아 '동원'으로 변경했다.
 
사훈은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로 정했다. 사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조국 발전에 기여하며, 이웃에게 베풀며 산다는 각오를 담았다.
 
나는 사업상이든 사적이든 누구를 만나면 언제나 '장로(교인)'임을 밝히는 소개 습관을 이때부터 가졌다. 내 스스로 "상대방에게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며, 신앙인의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권하지 말 것을 은연 중에 표현하는 자기 방어법이기도 하다.
 
기독 경영 마인드가 업계에 알려지며 영업상 만나는 이들에게서 음주에 대한 권유가 없었다. 다행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지혜롭게 사업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서울 쌍문동에 집을 구하고 근처 창동염광교회를 등록하게 됐다. 창동염광교회는 지금은 원로이신 최기석목사님이 시무하셨는데, 설립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교인 수가 1백20여 명 정도였다. 목사님의 영감 넘치는 설교를 듣고 교회를 등록한 기억이 있다.
 
당시 사업이 번창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 봉사활동이 다소 부진하니 영적 목마름이 생겼다. 그래서 창동염광교회 등록 이후 봉사활동에 주력하며 '하나님께 받은 은혜, 모두와 나눠야 마땅하다'는 생각에 헌금생활을 철저히 지켰다. 재물을 탐하지 않고 정직하게 벌어 정직하게 나누는 마음을 주신 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1978년 당회 구성을 위한 장로 4명의 선출이 있었다. 교회 등록 2년 만에 생각지도 않게 3번째 득표로 장로 피택이 돼 송구스러웠다. 개척에 공로가 있지만 피택을 받지 못한 분들에게 결례가 됨을 밝히며 극구 사양했지만 최기석목사님의 설득 끝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수락을 하게 됐다.
 
그런데 장로 임직 한 달 후 고혈압으로 쓰러지는 일이 생겼다. 회복하는 데 1년이 걸렸다. 지금도 혈압약을 먹고 있기는 하지만, 그 때 하나님께 매달려 치유은사를 경험하기도 했다. 회상해 보면, 하나님과 깊게 소통하는 계기가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병상을 툭툭 털고 일어나 사업체에 복귀한 후 계속된 성장을 맛보았다. PVC 쉬트 제조업체에서 손꼽히는 회사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물건을 납품하고 해외수출까지 성사시켰다. 경기도 양주에 이어 김포에 공장을 설립했고, 직원은 80명을 넘어섰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회사에도 IMF의 한파가 찾아왔다. '아, 이래서 기업들이 부도가 나는구나'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숨이 턱턱 막히는 생활이 이어졌다.

이 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인 '담대함'이 위기를 벗어나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침착함을, 절대 포기하지 않게 하는 인내를, 기도하며 때를 기다리는 여유를, 남을 원망하지 않도록 사랑을,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믿음을 주셨다. IMF는 그렇게 우리 회사를 비껴갔다.
 
홍희천
창동염광교회 원로장로 / (주)동원 대표이사
<정리=신동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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