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12월4월

11월 29일-12월4월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11월 24일(수) 16:23

월-기다리는 사람
본문: 눅 2:25-29
찬송가: 104장(구 104장)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신령한 성도였다.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받고 사는 기다림의 사람이었다. 그는 약속대로 그리스도를 뵙고 환희에 차서 찬송한다. "하나님 이제 저를 해방시켜 주시는군요." 그의 삶은 메시야 대망으로 행복했다. 기다림이 있는 사람, 소망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스스로에게 묻자. "나는 엿새가 주일을 위해서 있는가 주일이 엿새를 위해서 있는가" 연애를 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약속한 사람은 모든 날이 데이트를 위해서 있다. 기다리는 날들이 보람과 가치와 기쁨과 충만함으로 채워진다. 기다림은 소망이다. 소망이란 무엇일까?
 
성경에서 '소망은 영혼의 닻'이라고 했다(히6:19). 닻은 배가 바다 가운데에서 정박했을 때 떠내려가지 않도록 붙들어 준다.
 
소망은 우리의 시선을 끌어가는 사탄의 유혹에서 보호하여 넘어지지 않게 하고,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게 하며, 우리로 능력 있게 하고, 삼가며 살게 하며, 바람과 파도에 도전하여 극복하게 한다. 소망은 우리로 마침내 천국에 이르게 한다. 종말론적인 삶이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으로 영원한 소망의 삶이다. 언제 오실지 모르기에 항상 기다리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수놓아가고 역경에서도 승리하게 한다.
 
기독교인은 모두 영원한 소망의 사람이요 기다림의 사람이다. 그날을 기대하면서 역경에 도전하고 인내함으로 마침내 그 나라에 들어가는 복을 누리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생을 아름답게 수놓아가게 하소서. 시련에 넘어지지 않고 우리의 시선을 끌어가는 유혹을 이김으로 마침내 그 나라에 들어가고 주님을 뵙는 신령한 종으로 빚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희룡 목사
머릿돌교회 시무


 

화-면류관이 예비된 교회
본문: 딤후 4:7-8
찬송가: 25장(구 25장)

언젠가는 우리도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무엇을 가지고 설 것인가? 설마 빈 손은 아닐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의의 면류관이 있기에 빈손은 아니다. 이제 남은 것은 준비된 의의 면류관을 가지고 주의 부르심을 기다리면 된다.
 
'의의 면류관'은 믿음으로 재림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의의 면류관은 장래에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것이다.
 
어떻게 준비된 의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을까?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 자신과의 싸움, 마귀와의 싸움, 죄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영생을 얻기 위해 가야 할 길을 가며, 해야 할 일을 하며, 피할 것은 피하는 것이다. 그러면 의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 달려 갈 길을 마쳐야 한다. 맡겨주신 사명을 포기하지 않고 감당하는 것이다.
 
달려 갈 길은 예수께 받은 사명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복음 증거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마쳐야 의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
 
또한, 믿음을 지켜야 한다. 예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약속을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확신과 그리스도에게 충성할 때 의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 우리는 이미 생명의 면류관, 영생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얻었다. 이미 허락된 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며 믿음을 지켜야 한다.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의의 면류관을 허락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미 허락된 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달려가며 믿음을 지키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낙운 목사
태평제일교회 시무


수-절망의 자리에서 희망의 자리로
본문: 삼상 1:1-18
찬송가: 365장(구 484장)

본문은 절망스러운 분위기로 시작하고 있다. 불임이라고 하는 절망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희망으로 가득 찬 한나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절망에서 희망으로의 전환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첫째, 한나는 자신의 괴롭고 힘든 마음을 하나님에게 기도 가운데 토해내었다.

사람의 위로보다 하나님의 위로를 진정 원했기 때문이다.
 
둘째, 한나는 드리기 위한 기도를 드렸다.

단순히 응답을 받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다시 드리기 위해 기도했다. 다시 드리기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이다.
 
셋째, 한나는 끈질긴 기도를 드렸다.
 
12절에 보면 한나가 오래 기도하였고, 26절에 보면 '나는 여기서 기도하는 여자라'고 당당히 이야기하고 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 끈질기게 기도하던 기도의 여인이었다.
 
마지막으로 한나는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18절에 보면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고 나와 있다. 응답해 주셨다는 확신 속에 한나의 마음 속에 있던 근심이 사라지고 평안이 찾아온 것이다.
 
믿음으로 기도했으면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한나가 절망의 자리에서 희망의 자리로 옮겨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도 가운데 붙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기도 줄이다. 우리가 기도 줄을 끝까지 붙잡을 때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능력이 함께할 줄 믿는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 가정이 어떤 자리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절대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아니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도 가운데 붙드는 믿음의 가정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인택 목사
대치동교회 시무


목-감사를 표현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본문: 단 6:10
찬송가: 543장(구 342장)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감옥에서 26년 옥살이를 했다. 노인이 되어 출감한 그는 들어갈 때보다 더 건강한 모습으로 밝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저는 감옥에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늘이 보이면 하늘보고 감사드리고 땅이 보이면 땅을 보고 감사 드렸습니다. 강제 노동을 시키면 일할 수 있는 건강을 주심에 감사했고 독방에 가둬두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늘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건강과 행복을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지배국의 왕으로부터 온 나라를 경영할 수 있는 힘을 부여 받았다. 어찌 질투가 없었겠는가?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지 못하자, 그의 종교에 착안하여 이제부터 30일 동안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사자굴에 던져넣기로 금령을 세워 왕의 도장을 찍게 하였다.
 
집에 돌아온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 감사가 기적을 가져왔다. 사자들에게 전혀 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온 나라와 족속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도록 조서를 내리게 하셨다.
 
우리가 감사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영광받으시고 우리의 문제들은 해결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련이라는 보자기, 시험이라는 보자기에 축복의 선물을 싸서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주님을 신뢰하며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적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규호 목사
큰은혜교회 시무


금-감사는 거룩한 도전
본문: 요 11:40-44
찬송가: 558장

성경에 예수님이 죽었던 사람을 살리신 사건이 세 번 나온다. 첫째는 죽었던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고, 둘째는 죽었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고, 셋째는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셨다.
 
특히 나사로는 죽은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썩은 냄새가 나는 상황에서 "나사로야 나오라"하시니 수족과 얼굴을 동인채로 무덤에서 나왔다. 이것은 예수님은 조물주 하나님이시란 것을 보여주신 놀라운 사건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죽은지가 하루가 되었건 열흘이 되었건 상관이 없으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사로를 일으키신 과정과 기도의 내용이 놀랍다. "돌을 옮겨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41절)." 마리아와 마르다는 시체를 보았지만 예수님은 하늘을 보셨다. 현상이 나타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우러러 보면서 믿고 감사하신 것이다. 바로 여기에 감사의 능력이 있다. 우리는 보통 현실에 나타난 축복을 감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죽은 것 같고 불행해 보이는 환경 속에서도 먼저 감사하는 것이 예수님의 방법이요, 비결이었다. 감사는 반응이 아니라 거룩한 도전이다. 그래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한 것이다.
 
예수님은 죽은 소녀를 일으키실 때도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신 후에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고, 엘리야는 비가 올 줄 믿고 아합 왕에게 마차를 준비하라고 했다. 바울도 빌립보 감옥에서 찬양과 감사를 드림으로 기적을 경험했다. 감사는 반응이 아니라 불행에 대한 거룩한 도전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감사하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오늘의 기도

능력의 하나님,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감사로 불행을 극복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류우열 목사
일산예일교회 시무


토-누구를 기다리십니까?
본문: 사 11:1-10
찬송가: 105장(구 105장)

기다림이란 소중한 것으로 꿈을 가져다 주고, 소망을 가져다 준다. 노아가 그랬고, 아브라함이 그랬고, 요셉과 하박국, 다니엘이 그랬다. 기다림이란 인생의 동력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기다림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기다림의 대상이다. 기다림의 종류는 각양각색이다. 그 다양함 속에서 대상을 바로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헛된 것이나 불순한 것이나 바람직하지 못한 기다림도 있는 것이다. 기다림의 종류도 많으나 그 동기도 목적도 순수하지 못한 많은 기다림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본문 말씀은 주님 오시기 7백년 전 하나님께서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남쪽 유다에 주신 말씀이다. 분단된 현실에서 남쪽 유다왕 아하스는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지혜를 의지하다가 결국은 정치적으로 앗수르의 속국이 되는 비극을 맛보게 된다. 거기다 소수 부유층의 지나친 낭비와 사치풍조, 그리고 국가 관리들의 횡포로 인해서 일반 서민들의 원망과 불신은 깊어져가고, 사회의 무질서와 도덕의 타락으로 말마암아 나라의 기강은 어지러울대로 어지러워진 그런 때였다. 이 국가존망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은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환상을 보여주신다. 모든 것이 뒤엉켜있는 혼란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이 메시야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 평화의 왕 그분이 오시면 세상은 달라질 것이기에!
 
오늘 우리는 누구를 기다리는가?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이 땅의 모든 한을 풀어주고, 선악 간에 분별하여 올바른 심판과 판단을 내리시고,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그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케하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과 함께 한 아름다운 과거를 통해 소망이 넘치고 오늘이 알차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잊고 사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근호 목사
구미영락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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