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비바람에도 오직 주님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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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문화유적지 산책 ] <12> 존 로스와 백홍준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9월 29일(수) 15:03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선교사인 존 로스는 두 번째 만주 고려문을 방문한 이래로, 1881년에 심양문광서원을 창설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이응찬을 비롯해 그의 친구들 백홍준, 이성하, 김진기, 이익세 그리고 서상륜과 함께 쪽 복음서를 번역하기 시작한다.

   
"주님께서는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계십니다" 라고 말하는 듯한 갈릴리 바닷가 베드로교회 지붕위 나무 십자가.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와 영국성서공회의 양해와 지원으로 번역비와 인쇄비를 받은 존 로스는 본격적인 우리말 성서 번역에 몰입하여 <예수 성교 전서> (1887년)라는 신약전서를 간행하기에 이른다.

어려운 한문 위주가 아니라 어린이와 여성들도 읽을 수 있는 언문으로 번역한 '로스 번역'의 위력은 믿음의 공동체를 쉽게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 개신교 최초의 세례를 받은 그 협력자들 중에 백홍준은 이미 그의 선친이 로스의 고려문 첫 번 방문때 한문성경을 전도서로 받은 인연이 있다.

백홍준(1848-1893)은 1883년에 의주교회를 개척하고,1887년 최초의 장로가 되었다. 복음서를 적극 선포하는 그는, 이단 사상을 전한다는 죄목으로 평양 감영에서 형틀을 쓴 채 2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1893년 개신교회의 첫 순교자가 된다.

한국에서 기독교역사연구소의 공개강좌에서 그의 순교역사를  처음 들었다. 그의 순교이야기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는 듯 한데, 기독교를 박해하고 순수한 믿음의 청년에게 형틀을 씌워 옥사하게 한 평양감사가 민병석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분노마저 일었다. 민병석은 나의 시댁 어른중의 한분이었으므로.

나는 공학도이면서 역사에 밝은 동생 창구에게 한 달음에 달려가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효자로 이름 난 그분이 자기 아버님만 알고, 우리 하늘 아버지의 참 자녀인 백홍준을 한국개신교 최초의 희생자로 만들다니! 83세옹 시남 민병석이란 서명이 든 그분의 유명한 12폭 병풍을 선물로 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이젠 부끄러워 모두 없애버릴거야!"하고 분개 했더니, 동생 왈, "누나, 그 병풍은 국보급인데 버리지 말고 나 주구려. 그리고 어찌된 인연이건 그분의 조카 며느님이 민씨 댁을 기독교 가정으로 이끄신 것을 생각하고 참아요."

우리 개신교의 첫 순교자 백홍준 장로는, 갈릴리 바닷가의 거친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베드로교회 지붕위의 나무십자가를 생각나게 한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래고 사랑함을 고백하는 베드로같이, 연약하나 강인한 나무십자가.

그 십자가를 비추는 변함없는 햇빛처럼 위로가 되는 것은 기독교인을 핍박하던 이의 조카 며느님이 된 여성 선각자, 서울 안동교회의 고 유진경 권사님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민문을 믿음으로 이끌고 세 명의 손자가 장로로 봉사하게 되는 믿음의 가정을 일군 일이다.

윤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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