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시야에서 볼 것인가?

<1> 어느 시야에서 볼 것인가?

[ 최근신학동향 ] 9. 예술신학(기독교 미술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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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9월 28일(화) 20:09

   
그동안 신학은 계시의 가능성을 인간 이성의 지평 안으로 제한하는 방법을 택하여 논리적, 이성적인 규범 안에서 논하여졌다. 그러나 신앙의 신비는 이성적 개념으로써 도달하고자 하는 논리적 진리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에 초월적, 감성적, 심미적인 영성신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기독교는 오랫동안 미적체험이야말로 신앙의 체험임을 망각해 왔다. 현대의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명제는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보다는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가?"이다.(예술신학/심광섭/대한기독교서회)

예술이 기독교 신학에 지대한 공헌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논리적, 이성적 신학 쪽에만 매달려 있었던 부분을 영성신학 쪽에서 도울 수 있도록 끊임없이 영성적 해석이 제공되어져 왔기 때문이다. 특히 위대한 예술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은 영성을 통하여 그 신앙적 체험을 통하여 표현했을 때 보는 이들로 하여금 통전적 이해를 가능케 하였다. 이제 4회에 걸쳐 위대한 예술가들이 보았고 들었고 느꼈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을 소개하는 가운데 특히 기독교 미술 분야의 위대한 화가들의 시각을 소개하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예술신학을 소개하는 부분적 언급에 불과하겠지만, 어쩌면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신학의 시야들을 조금이나마 더 세밀히 들여다보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 미술의 경지를 신학적 경지에 올려놓았던 위대한 화가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심은 그것을 예술로 표현하려는 그들의 천재적 재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심미적 눈으로 보면서 어느 시야에서 볼 것인가?(where) 어떻게 볼 것인가?(how) 무엇을 볼 것인가?(what), 왜 보아야만 했는가?(why)라는 명제를 따라 입체적이고, 총체적이며 통전적으로 그림을 통하여 표현하였고 해석하였다. 이제 그들의 그림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느껴보는 여행을 떠나보자.

우선 어느 시야에서 볼 것인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 Spain)는 '요한의 그리스도의 십자가'(Christ of Saint John of the cross.1951)라는 그림에서 그 이전 십자가를 바라보았던 여느 화가들과는 달리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십자가를 그렸다.(그림 참조)

그렇다면 누가 바라본 십자가란 말인가? 그것은 처절하게 아버지를 부르다가 죽어간 아들 예수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시각에서 볼 것인가? 이것이 십자가를 느끼게 하는 전혀 다른 감동과 해석을 제공한다. 아들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마음은 어떠할까? 그것도 죄인 한 사람을 위하여 죽어가는 그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 하나님의 눈에는 그야말로 피눈물이 날 것이다. 십자가는 그렇게 바라보아야 십자가의 영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냥 우리 눈높이에서 바라보아서는 십자가의 그 아픔과 희생과 사랑이 전해오지 않는다. 흔히 부모보다 먼저 죽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에 대해서 우리들이 듣던 말이 있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그 자식을 마음에 묻는다" 예수님을 바라보시는 그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그것을 느낄 수 있어야 십자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신학적 해석도 불가능한 십자가의 진정한 느낌은 화가들의 독특한 시선을 통하여 전해질 수 있다. 이것이 예술이 제공하는 신학의 사각지대를 볼 수 있게 하는 영성일 것이다.

최민준목사 / 선한이웃교회/장신대ㆍ한일장신대 겸임교수

<약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장로회 신학대학원 졸업
맥코믹-장신대 목회학 박사
장신대, 한일장신대 겸임교수
선한이웃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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