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18일

9월 13-18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9월 09일(목) 16:29

월-기도로 좋게 변화된 사람
본문: 창 32:21-28
찬송가: 420장(구 212장)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땅, 바다, 풀, 나무, 꽃, 그리고 사람도 변한다. 그 중에 가장 빠르고 많이 변하는 것이 사람이다. 본문의 이야기는 기도 후에 변화된 야곱의 모습을 보여준다.
 
첫째, 기도로 이름이 바뀌었다.
 
먼저는 부당한 방법이었으나 아버지 이삭의 축복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얍복 강변에서 자신의 기도이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것은 기도하고 응답 받았다는 것이다. 그때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다. 그 뜻은 "야곱아, 이제부터는 인생의 목적과 방법을 바꾸어라. 너의 수단과 방법으로 성공을 붙잡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과 대면하라. 하나님께 기도하라. 하나님의 승리자가 되라"는 것이다. 기도하면 이름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삶이 변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자녀로 바뀌었다.  

둘째, 야곱은 겸손한 사람이 되었다.
 
야곱이 자기 형 에서를 5번이나 '주'라고 부르고 있다. 형님을 20년 만에 만나자 '내 주' '주님께'라며 형님을 주님으로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야곱처럼 기도하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셋째, 형 에서도 변했다.
 
4백명 장정을 동원하여 동생을 죽이겠다고 했던 에서였다. 그러던 그가 동생 야곱을 만나자 달려와 껴안고 입 맞추고 대성통곡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야곱이 목숨 걸고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이다. 내가 기도하면 먼저 내가 변한다. 내가 변하면 다른 사람도 변한다. 이것은 기도의 공식이요 변화의 절차이다.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이나 교회가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기도하라. 아름다운 변화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야곱이 기도하다 삶이 변화되어 형통하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산 것처럼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 종 준 목사
동암교회 시무


 화-지금 빨리 시작하라
본문: 수 3:15-17
찬송가: 496장(구 260장)

모세가 죽고 난 후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런데 말씀을 보면 저들이 기도하면서 강이 갈라지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강에 들어섰을 때 발이 물에 잠기자 강은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요단강을 다 건너가게 되었다.
 
무엇을 말하는가? 행동과 실천이 있을 때 강이 갈라졌다. 출애굽 때도 마찬가지다.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출발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먹을 것, 잘 곳, 신을 신발, 입을 옷을 다 고려하고 출발하려 했다면 모든 게 부족하고 준비가 될 수가 없어서 아예 출발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의 인도해 주심을 믿고 일단 광야로 출발했다. 일단 광야에 들어갔을 때, 수많은 기적들을 맛보게 되었다. 만나, 바위에서 나온 샘물, 메추라기,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광야로 떠나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만큼 시작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완벽주의적 성향은 시작을 못하게 만든다. 기본적인 스케줄이 만들어졌다면 부족부분은 해 가면서 만들면 된다.  일단 요단강에 발을 딛자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은 일어났다. 부딪히면 길은 열리게 된다.
 
자동문이 있다. 자동문이 먼저 열리면 들어가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문 앞에 서면 문은 열리게 되는 것이다. 행동해야 열리게 된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 앞길에 어떤 것들이 놓여 있다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분명한 일이라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바로 나타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 영 배 목사
번성하는교회 시무


수-묻고 설명함으로
본문: 신 32:7-14
찬송가: 220장(구 278장)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큰 아픔중 하나는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가정에서부터 소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가 한 가정에 살고 있지만 서로의 관심과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가족들 사이에 대화가 죽어버린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시며, 우리들을 말할 수 있는 존재로 지으셨다. 사람은 말을 통하여 하나님과 대화하는 존재이고,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대화가 있을 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식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운다고 한다. 어린 자녀들은 부모님과 말씀의 대화를 통하여 장성한 감람나무처럼 성장하고, 서로 이해하는 건강한 가정과 사회를 이루어 가고 있다. 부모와 자녀들이 대화하며 서로 소통하는 가정으로 세우는 길은 무엇일까?
 
현재와 미래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출애굽 2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은혜를 설명한 모세는 신명기의 결론 부분에서 "옛날을 기억하며,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고 부탁한다. 옛날과 역대의 연대를 기억, 생각하는 길은 "네 아버지에게 물어라, 내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라"는 말씀에 순종함이다. 자녀들의 의무는 부모님과 어른들에게 묻는 것이요, 부모님과 어른들은 반드시 설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녀와 부모가 묻고 설명하는 대화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함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아무리 바빠도 부모와 자녀가 하나님의 구원역사, 민족, 가정의 역사를 묻고 설명하는 대화가 이루어져야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가족을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관심과 목표를 말씀의 대화에 두게 하시고, 건강한 사회를 세우는 데 헌신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 두 호 목사
염광교회 시무


목-주님께 쓰임 받는 인생
본문: 막 11:1-11
찬송가: 520장(구 257장)

톨스토이는 그의 저서 인생독본에서 "인간이란 어디서 오는 것이고,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기쁨과 노여움, 애처로움과 즐거움, 사랑과 믿음의 모든 감정은 무엇 때문에 일어나며 사그라지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성경을 통해서 보면 우리 인생은 여호와께로 와서 여호와를 믿고 살다가 여호와께로 돌아감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내 인생은 여호와를 떠나서는 존재의 가치가 없다. 즉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 가장 가치있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쓰임받고 가치있는 인생으로 살기 위해서 어떠해야 할까?
 
첫째는 매임에서 풀려나야 한다. 오늘 말씀에 보면, "아직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새끼의 매여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어오너라"고 했다. 나귀새끼는 지금 매여있다. 매여있는 존재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우리 인생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매여있다. 그래서 영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매임에서 우리를 풀어주셨다. 바울도 과거에는 혈통, 전통, 세상 학문, 자기자랑, 명예와 권력에 매여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만나 그 매인 바의 인생에서 풀어주셨다.
 
나귀가 풀려나니 주님을 태우고 예루살렘 성을 향해 갔다. 그러고 보면 주님은 바울이라는 나귀를 타고 이방인과 열방 민족에게 찾아가 주셨다.
 
오늘은 주님은 우리를 타시고 직장으로 가길 원하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를 묶고 있는 것들로부터 풀려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 가장 기뻐하고 만족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 두 성 목사
제주화북교회 시무



금-그들이 와야 완전해진다
본문: 눅 15:3-7
찬송가: 182장(구 169장)

9월이 되면 여름 농사를 끝내고 추수까지 일손을 놓고 가까운 친척을 방문하는 풍속이 있다. 백로(白露)라고 일컫는 이 시기에 농부는 들녘의 모든 농작물에 소복이 맺힌 흰 이슬을 통해서 가을의 기운을 느껴보기도 한다. 뜨거운 여름 행사를 모두 마친 교회에서도 영적 열매가 맺혀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가을을 맞이하는데, 영적 추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각 부서들을 살피면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곤 한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나타나는데 모두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것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사소하고 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한결같이 그 사소한 것을 되찾은 자의 기쁨이 정당함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의 경제논리나 가치로 일관성을 적용받기가 쉽지 않은 대목이다.
 
교회와 이 사회의 모든 약자들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의 결실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푸른 논에서 벼와 함께 자라는 피한포기를 뽑아내기 위해 조심조심 다가가는 농부의 심정을 누가복음 15장의 잃어버렸던 양을 되찾은 목자의 심정, 잃어버렸던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서 온 집안을 뒤지던 여인의 심정, 그리고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의 심정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되돌아 와야만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영적 잔치는 완전해지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출렁이는 들판의 농작물을 보면서 한여름 농군의 땀방울을 가늠할 수 있듯이, 우리 사회의 모든 나약한 이들을 보면서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은총의 결실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영안을 열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 성 훈 목사
효목제일교회 시무


토-독수리가 까마귀를 떼어내는 법
본문: 사 40:26-31
찬송가: 354장(구 394장)

독수리가 날아오르면 쫓아오며 괴롭히는 새가 있다. 바로 까마귀다. 까마귀는 독수리보다 작지만 민첩한 기동력이 있다. 그래서 독수리의 등 위에 잽싸게 올라타 독수리의 머리를 쪼으며 괴롭힌다. 그러나 성가신 까마귀를 떼어내는 방법이 있다. 까마귀보다 더 높이 날아오르는 것이다. 독수리는 그 어떤 새보다도 높이 날아오를 수 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문제나 사건, 사람이 항상 따라 붙는다. 그때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로써 더 높이 날아오르면 문제를 떼어내 버릴 새 힘을 얻는다. 지혜를 얻는다. 그리고 우리의 영이 하늘로 올라가 하늘 보좌에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문제를 내려다보는 경험을 한다(사40:26). 그 결과 내 앞에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이 보이는 믿음의 눈이 떠진다. 두려움은 담대함으로, 어둡고 혼탁한 생각은 밝고 선명한 분별력으로 바뀐다. 똑같은 문제, 골리앗을 앞에 두고 왜 한 사람은 승리하고 한 사람은 능욕을 당했는가? 사울은 골리앗을 자신의 힘과 신체조건, 경험과만 비교했다. 그래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수치를 당했다. 하지만 다윗은 골리앗을 자신과 비교하지 않았다. 자기 안에 계신 하나님과 비교했다. 그래서 담대하게 나아가 싸워 승리했다.
 
모든 문제 앞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보이는 영의 눈을 떠야한다. 그것은 깊은 기도에서 경험된다. 기도로써 더 높이 더 가까이 주께로 나아가라. 괴롭히던 까마귀는 이미 떨어져 나가고 없을 것이다. 다윗과 같은 믿음의 눈으로 골리앗을 대하라. 골리앗은 이미 쓰러져 있을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 가정을 괴롭히는 까마귀를 떼어내도록 더 높이 더 가까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우리 식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 강 덕 목사
명수대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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