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 신학을 풍성하게 돕는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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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신학동향 ] 최근 신학 동향  8. 심리학적 신학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8월 25일(수) 15:31

신학에서 심리학을 문제 삼는 대표적 이유 가운데 하나는 무의식이다. 무의식의 존재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뉴튼의 만유인력 법칙과 함께 과학사에서 3대 발견으로 간주되고 있다. 개인에 따라서 무의식의 존재여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학문적으로 무의식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다. 무의식의 존재가 거부당하는 이유는 지난주에도 지적했지만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다. 성경을 이해하고 분석할 때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거나 타격을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방어적 반응이다.

무의식과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는 대표적인 성경구절을 살펴보자.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로라…내 지체 속의 한 다른 법이…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롬 7:17~24) 여기서 '내 속에 거하는 죄'가 인간의 변화되지 않는 죄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것을 무의식과 연관해서 해석할 수도 있다. 그 죄성이 곧 무의식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 죄성이 어떤 형태로든지 무의식이 말하는 바 여러 가지 내용과 연결되어 있다고 전제하고 해석할 때 더 심층적인 해석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 해석의 내용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의 궁극적인 초점은 우리도 바울과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이고 우리의 의식과 이성으로 잘 통제되지 않는 마음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인간의 죄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학적 설명이고 그것을 무의식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을 통하여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신학적 해석과 심리학적 해석이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면 학문적 설명을 수용하여 적용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큰 유익을 준다. 그 실체가 단순히 죄라는 신학적 판단으로 끝낸다면 해결 방법은 오직 로마서 8장에 나오는 대로 성령의 힘을 의지해서 뉘우치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앙적 권면 밖에 없을 것이다. 신앙의 성숙은 성령의 도움을 의지하는 나의 건강함과 자율성에 있다. 즉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깨달아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이다. 성령을 의지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무능함을 무의식의 개념을 이용해서 자신을 이해하고 진단할 수 있다면 무의식에 관한 수많은 심리학적 연구 내용 등을 통해 우리의 죄악된 행동들을 더 깊이 다양하게 분석해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자기 성찰을 심령 깊은 곳까지 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는 것이다. 죄악의 마음과 생각들을 더 깊이 분석하고 성찰할수록 8장 전체에 등장하는 성령의 역사가 어떻게 이뤄지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성경 말씀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다고 해서 인간의 죄성을 지적하는 성경의 선언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인간의 죄성을 깊이 분석해서 행동변화를 위한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다.

학문적으로 볼 때 영혼만큼 수수께끼와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신학적 관점에서는 분명히 존재하는 실체이지만 실존적으로는 인간의 이성과 감정 등을 통한 정신적 작용과 구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도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구분하는 이분법 혹은 영, 혼, 육체로 구분하는 삼분법이 모두 등장한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우리 믿음의 고백이 영혼의 존재에 대한 신학적 증거가 되지만 그 고백은 우리의 이성과 감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영과 인간의 이성작용의 상호관계성을 어떻게 설정하는가는 난해한 문제지만 양자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상호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사실이다. 영혼은 우리의 정신에게 그리고 우리 정신의 상태는 영혼의 고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심리의 상태와 기능과 역동을 더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당연히 우리의 심리적 성숙도를 파악할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 신앙의 성숙도에도 커다란 유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심리학은 그런 점에서 다른 어떤 학문보다도 더 신학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유익한 학문이다.

오규훈교수 / 장신대ㆍ목회상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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