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의 불꽃, 개혁의 불길로 번지다

순교의 불꽃, 개혁의 불길로 번지다

[ 윤경남의 문화유적지 산책 ] <7> 죠지 위셔트와 세인트 앤드루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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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8월 19일(목) 15:12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 골프장 옆엔, 십자로 위에 군데군데 남은 대성당 터와 웅대한 세인트 앤드루 성터가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화형당한 죠지 위셔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듯 외롭게 서 있다.

   
▲ 비이튼 대주교가 위셔트의 화형을 내려다 본 성루와 위셔트가 화형당한 자리를 알리는 푸른 표지판.
스위스에서 활동한 종교개혁가 츠빙글리의 사상은 죠지 위셔트(1513-1546)를 통해 16세기 스코틀랜드에 들어온다. 그는 여러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다가 체포되어 이곳 세인트 앤드루 성의 지하 감옥에 갇히고, 1546년에 세인트 앤드루 대성당의 데이빗 비이튼 대주교에게 '금지된 성서를 선포한 이단'이란 죄목으로 화형을 당한다.

이보다 앞서 18년 전에는 패트릭 해밀튼이 비이튼 대주교의 삼촌이며 전임 대주교였던 제임스 비튼에게 세인트 앤드루 대학의 살바토르 채플 앞마당에서 화형을 당해 스코틀랜드교회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두 번째 순교자인 위셔트의 화형은 비튼 대주교가 세인트 앤드루 성루에 앉아, 그곳에서 잘 내려다 보이는 자리를 화형장으로 지정했다. 시체가 불에 빨리 타고 연기가 더 멀리 퍼지도록 위셔트의 사지에 화약을 매어 사방 어디서든 그의 시체가 불에 튀는 모습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처형당하기 전에 위셔트는 성루에 융단을 깔고 앉아있는 비이튼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벽에 의기양양하게 앉아있는 저 사람에게 하나님의 용서가 임하기 바라오. 며칠 안에 저 사람 자신의 위풍에 걸맞는 엄청난 수치를 당하면서 저 곳에 눕게 될 것이오"라고. 그의 예언이 맞았는지 아니면 자극을 받았는지 한 용감한 청년과 일당이 비이튼 대주교를 습격해 "위셔트와 하나님의 종들을 처형 시키면서 보여준 자비만큼 갚아주겠다"하며 칼로 찔러 죽인다. 비이튼은 위셔트의 화형을 즐겼던 바로 그 자리에 차가운 시신으로 눕게 된다.

위셔트의 복음전도 활동과 불꽃으로 사라진 그의 죽음은 오히려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마음속에 개혁의 불씨를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세인트 앤드루 대학을 졸업한 존 녹스는 그가 존경하며 따르던 위셔트의 순교에 충격을 받아 신부의 옷을 벗어 던지고 장로교 개혁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는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에 앞장서서 세인트 앤드루 성의 설교자와 지도자가 되었으나, 프랑스군의 침략으로 갤리 노예선을 타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칼빈의 제자가 되어 귀향한다. 앤드루 성에 다시 돌아온 그의 불을 뿜는 듯한 설교에 감명 받은 청중들이 들고 일어나 대성당과 성을 모두 때려 부순다. 쓸만한 돌들은 그 동네 주민들의 집을 짓는데 쓰기도 했다.

기독교는 핍박이라는 영양분을 먹고 자라는 종교같다. 핍박을 받을수록, 피를 흘릴수록 피로서 인류의 죄를 대속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결속하는 힘이 생기는 듯, 국가의 이름을 교단 이름으로 붙인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번성해갔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해드린 세례 요한처럼 장로교회의 길을 존 녹스에게 준비해준 위셔트는 이제 없고, 그 자리엔 앤드루 성인의 유해가 있는 룰스 타워(Rule's tower)만 남아있다. 그 탑 지하석관에 조각된 용감한 다윗왕의 이야기가 그 탑을 지켜준 듯, 죠지 위셔트를 위로하려는 듯, 세인트 앤드루의 온 시내를 굽어보며 높이 서 있다.

글ㆍ사진  윤경남
토론토 세인트 자일스교회ㆍ국제펜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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