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 에큐메니칼 사회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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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신학동향 ] 최근 신학 동향  7. 에큐메니칼신학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7월 13일(화) 18:35

에큐메니칼 신학의 두 번째 영역인 '생활과 실천'(삶과 봉사)은 교회의 사회참여 신학을 전개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아주 논쟁적인 사회윤리 분야에서 한 세기 동안 어떤 답변을 시도했을까?

세계교회는 역사적으로 크게 세 시대에 적응해야 했다. 첫째는 박해시대다. 이 때는 정치적 권위에 저항하지 않고 복종했지만,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도 없었다. 둘째는 콘스탄틴 황제 이후 시대다. 이 때는 국가로부터 특혜를 받는 대신에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야 했다. 국가 교회 체제에서 국가의 요구를 따라야 했다. 셋째는 근대 이후 시대다. 근대 세속 국가가 발전하면서, 교회는 종교를 사적인 영역으로 축소시키고 사회 문제는 전적으로 국가에 맡기고 물러나야 했다.

그런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은 서구 교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사회 문제를 다 알아서 해결해줄 줄 알았던 국가가 오히려 문명을 파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14년 11월, 복음을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해야 한다는 믿음과 교파와 국가의 대립을 넘어 국제적으로 교제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생활과 실천' 운동이 시작되었다.

에큐메니칼 사회 사상은 이후 역사적 발전에 따라 세 번의 변화를 겪었다. 첫째, 1925년 스톡홀름 대회는 교회는 복음의 사회적 원칙과 이상을 제시하는 일만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복음의 사회적 원칙과 이상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은 개인의 양심과 공동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둘째, 1930년대 대공황과 나치 정부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이런 스톡홀름의 낙관적 사회사상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자, 1937년 옥스퍼드 대회는 좀더 구체적으로 '중간 공리'를 제시했다. 사회 정치적 딜레마에 대해 기독교의 도덕 원칙을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시대의 징조와 하나님의 역사를 분별하면서 하나의 방향성과 교회의 잠정적 과제를 제시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보았다. 결국 옥스퍼드는 정의를 중간 공리로 제시하고, 교회가 죄 많은 세상에서 상대적인 정의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바로 라인홀드 니버의 '기독교 현실주의'에 상응하는 입장이다.

셋째, 1950년대 제3세계의 독립과 서구의 철저한 세속화로 말미암아 중간 공리가 설득력이 약해지자, 1966년 제네바 '교회와 사회' 대회는 보다 더 철저하게 혁명적인 사회윤리를 제시했다. 정치 경제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부분적 수정이 아니라 철저한 혁명적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은 힘 없는 자들의 투쟁에 동참하고 역사의 희생자들과 연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것을 보통 '종말론적 현실주의'라고 부른다.

종합하면,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은 처음에는 추상적으로 복음의 사회적 원칙과 이상을 제시하다가 그 다음에는 정의라는 중간 공리를 주장하다가 그 다음에는 아주 구체적으로 세세한 실천적 적용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사회 문제에서 모든 교회가 아주 세부적인 적용에 동의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은 또한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바람직한 사회의 이상을 몇 가지 그림으로 제시했다. 첫째, 1948년 암스테르담 총회는 '책임적 사회'라는 사회적 이념을 제시했다. 자유를 누리고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책임을 지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는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서구 교회의 사회윤리 모델이었다. 둘째, 1975년 나이로비 총회는 '정의롭고 참여적이며 지탱 가능한 사회'라는 이념을 제시했다. 이것은 제3세계 교회의 사회윤리 모델이었다. 셋째, 1990년 서울대회는 '정의, 평화, 창조 질서의 보전'이라는 사회 이념을 제시했다. 교회는 불의에 맞서 정의를 추구하고, 전쟁에 맞서 평화를 추구하고, 생태계의 파괴에 맞서 피조물을 보전하는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이 국가 교회 체제를 벗어난 현대교회가 세속 사회에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한 거대한 실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노력에 비해 성과가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성과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평화, 경제 정의, 인종 문제, 환경 문제를 오랫동안 제기하여 세속 국가의 여론을 인도한 것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성과라고 생각한다. 

송인설교수(서울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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