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보금자리

내 영혼의 보금자리

[ 나의삶나의신앙 ] 나의삶 나의신앙-오정수장로 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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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01일(목) 11:18
서울교회ㆍ전국장로회연합회 부회장

신앙인으로서 좋은 목회자에게 양육받고 좋은 교회를 섬기는 것만큼 복된 일이 있을까?

많은 이들은 나의 사업이 번창한 것을 보고 "복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나는 사업체가 성공적으로 경영되고 있다는 것보다 나의 구주 예수님을 알아가고, 그 주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좋은 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것이 더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서울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서울교회는 단순히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가 아닌 내 인생의 열정과 힘을 다 쏟은 영혼의 보금자리이기 때문이다.

   
▲ 교회 건축이 완료될 때까지 일터에 하루도 나가지 않았지만 내 마음에는 감사와 기쁨이 넘쳤다. 신앙과 삶의 동역자인 아내 이영희권사와 함께.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나는 하나님께 말로는 이루 다 형용할 수 없는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감사한 일 중 하나는 존경할만한 담임 목사님을 만난 것과 열과 성의를 다해 봉사할 수 있는 교회를 만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서울교회는 타교단의 대형교회를 섬기던 이종윤목사님과 일부 성도들이 나와 교단을 옮겨 새로 개척한 교회이다. 젊음을 다바쳐 헌신하던 교회를 그만두고 교단까지 옮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상처가 컸고 그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아픔도 결코 적지 않았다. 장로인 내가 그러한데 담임목사로 억울한 누명까지 짊어져야 했던 이 목사님의 고통은 더욱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 속에서도 이 목사님은 "정말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자"는 순수한 열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교회가 교회됨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바보처럼 외길을 걸어가셨다.

필자도 옆에서 목사님을 도우며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세간의 잘못된 인식을 타파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1991년 첫 예배를 드릴 때만해도 교회에는 갖추어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는 의자도 준비되지 않아 차가운 마룻바닥에 앉아 1백59명이 첫 예배를 드려야만 했다. 비록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교회를 세우면서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교회를 섬기는 교회가 되자'고 원대한 슬로건을 세웠다. "범교단적이면서 한국교회를 받쳐주는 교회가 되자"는 이 목사님의 말씀에 모든 교인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서울교회는 설립 이후 단일교회로는 하기 힘든 여러 일들을 해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다양한 신학 세미나를 개최한 일이다. 1992년 처음으로 목회자 신학세미나를 시작했는데 이때 참석한 목회자의 수만 5~6백여 명이었다. 이들을 대접하기 위해 교인들은 옥상과 지하에서 김밥을 말았다.

당시 서울교회는 전세금도 없어서 월세를 주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 다음으로 시작된 사역이 '김치세미나'이다. 외국인 목회자들을 초청해 세미나를 하려면 1억원 가까운 돈이 드는데 전세금이 없어 쩔쩔매면서도 서울교회는 이런 사역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이 목사님은 "나는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목회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끊임없이 일을 추진해갔다. 이러한 힘든 사역을 불평없이 따라 간 장로님들과 성도들 또한 대단한 신앙이 아닐 수 없었다.

감사하게도 교회는 급속도로 부흥했다. 나날이 급증하는 교인들을 조그마한 공간 안에 모두 수용할 수 없게 되어 교회건축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돈이 생기면 쓰기에 바빴기 때문에 교회에 비축된 재정은 하나도 없었지만 서울 근교에 부지가 있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반드시 그곳을 찾아갔다.

1995년 대치동 210번지의 부지를 1백억원이나 되는 돈을 주고 샀을 때도 교회에는 비축기금이 없었다. 교인 중 큰 재력가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교인들이 기도하면서 물질이 아닌 비전으로 교회를 짓겠다고 결심하며 건축에 동참했다.

건설 도중 주민들의 반대가 심해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불철주야 설득작업을 해야했고, IMF 금융위기를 맞아 건축업체가 부도를 내 교회가 직접 건축을 총괄해야 하는 등 교회 건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는 건축위원장으로서 건축 시작일부터 완공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건설현장으로 출근했다.

당시 나는 사업을 포기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건축현장에서 작업복을 입고 밤 늦게까지 일했다. 건축이 완료될 때까지 내가 경영하는 사업장에는 하루도 나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업을 나날이 번창시켜주셨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 건축을 완공했다는 것이었다.

/ 정리 표현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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