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불모지에 세워진 교회

복음의 불모지에 세워진 교회

[ 땅끝에서온편지 ] < 6 > 아름다운 동역의 열매 - 몽골 안광표선교사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7월 01일(목) 10:46

몽골은 아직 선교가 공식적으로 허가된 상황이 아니다. 라마불교의 영향권에 있다 보니 늘 선교를 방해하는 법령이 발표되곤 한다. 신년초가 되면 외래 종교로 분류되는 기독교는 외국인이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 늘 조심스러웠다.

몽골 선교 초기에 선교사에게 가장 어려웠던 문제가 비자문제이다. 그래서 선교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비자귀신'이라는 우스갯말이 있다.

   
▲ 선교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한국교회의 후원으로 몽골에는 여러 곳의 교회가 세워졌다. 사진은 두번째로 개척건축한 알들릭 에젠드교회성도들과 함께.

필자는 2000년 울란바타르 대학의 교수 비자로 입국했다. 울란바타르대학은 윤순재선교사가 한국어학원으로 시작하여 현재 몽골의 우수한 사립대학으로 발전시켰다. 울란바타르 대학이 학원선교와 더불어 선교사들의 안정적인 선교를 위한 비자 발급의 창구역할을 담당한 것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부분이다. 거주비자를 안정적으로 발급받지 못한다면 현실적으로 선교는 불가능한 것이 된다.

몽골이 새로운 선교지로 열리면서 한국교회에서 많은 분들이 방문해주시고 교회 설립에 깊은 관심을 가져주셨다. 본교단의 여러 목회자들이 몽골 선교지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실 때면 식사에 초대해 주시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격려해 주셨다. 그럴 때면 늘 하시는 말씀이 "선교는 잘하고 있는데 교회 개척이 부진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1992년부터 시작된 본교단의 선교가 10년을 넘긴 시점에서도 현지인 교회는 어머니교회의 역할을 하는 '아멘교회'와 '올리아스테교회' 그리고 바가노르지역의 '은혜교회'와 서울노회가 외국인근로자선교회를 통해 전도한 귀국 몽골인들을 돌보기 위해 설립한 '울란바타르 선교교회'가 전부였다.

사실 당시로서는 선교사들이 직접 전도하는 것이 어렵던 시절이다 보니 교회설립 역시 쉽지 않았다. 이런 때에 2001년 신년, 선교정책 컨퍼런스에서 교회 개척을 위한 향후 5년 계획을 세우고 우리 선교사 각자가 설립할 수 있는 교회 숫자를 작정하여 함께 기도하며 교회개척에 힘썼다.

2001년 1월에 세운 교회개척 가능 숫자는 20개 미만이었으나 몽골선교에 참여하는 본교단 선교사들이 정말 열심히 기도하며 동역한 결과 2010년 1월 선교정책 컨퍼런스에서 집계한 몽골현지 교회의 숫자는 기도처를 포함해 40곳을 넘겼으니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척박한 몽골 땅에 교회 개척을 주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필자는 주 선교사역이 '몽골연합신학대학' 교수 사역과 '울란바타르 한인교회'의 담임목사로서 디아스포라 한인들을 섬기는 일이었기에 2개의 현지교회를 세우도록 힘쓴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선교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2001년 말 첫번째 '울란바타르 갈보리교회'를 분당 갈보리교회(박조준목사)의 지원으로 헌당했으며, 2003년 서울 영주교회(성홍모목사) 50주년 기념으로 여전도회가 후원하여 '알들릭 에젠드교회'를 개척설립해 헌당할 수 있었다. 세번째 교회는 미주한인교회, 시애틀 지역의 한인교회들이 연합하여 미주한인교회 100주년기념교회 설립을 도와 '에덴교회'를 건축했으며 네번째 교회는 새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용천노회 신성교회(이희수목사)에서 성전 건축비의 십일조를 드리고 교회설립을 결단해 '보르하니 우르짐스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다섯번째 교회는 대전금성교회(임헌선목사)가 몽골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교회를 세우기로 결정하고 건축을 준비 중에 있으니 이 모두가 후원교회와 신학교 제자들과의 동역에 있어 아름다운 열매의 결과이기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뿐이다. 더불어 앞으로도 연합과 협력을 통한 아름다운 주님의 사역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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