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기초 위에 평화를 건설하자"

"정의의 기초 위에 평화를 건설하자"

[ 주님의 평화 이땅에 ] 폭력극복 10년 운동과 한국교회의 역할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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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10일(목) 10:25

디나반두 만챌라 / WCC 정의와 통합적 공동체를 위한 프로젝트 담당자

전세계 도처에는 폭력이 만연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우리가 이러한 창조적 흐름에 동참할 때 종교 공동체가 세상에 내놓는 대답은 세상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지 분석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폭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단순히 정신적 측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쟁취하고 행사하는 도구로서의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을 보다 다양한 관점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전세계 각처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폭력의 뿌리는 지배세력으로부터 얻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이득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힘과 지배, 그 결과를 통해 생기는 위험은 특히 상처받기 쉬운 이들이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

필자의 모국인 인도에서는 폭력이 행사된 후에 반드시 수백명의 사상자가 생겨났고 가난이 이어졌었다. 인도의 사회, 경제에서 발생되는 폭력은 매일 수백만명의 굶주린 사람들과 노숙자를 만들어낸다.

필자는 몇 년 전 '폭력극복 10년 운동'과 관계된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동아프리카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필자가 만난 이들은 모두 석유와 광물, 다이아몬드, 소형 무기들이 어떻게 그들의 삶의 터전을 전쟁터로 바꿔 놓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므로, 평화에 대해 설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힘에 대해 국제사회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억압자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비폭력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험과 인간 관점의 한계 너머를 바라보아야 하고 사회 깊숙이 스며들고, 파괴적이기까지한 비윤리적 이슈에 대해 다뤄야 한다. 필자는 교회가 오늘날 세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역할은 오로지 교회와 다른 종교 공동체에서만 해낼 수 있는 것들이다.

"선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자가 되라."
정의에 근거한 평화 건설은 성경에서 말하는 중요한 명령이 아닌가? 불행히도 이것은 내적 진정성의 부족과 부정의한 권력에 직면해 자주 간과되곤 한다.

전통적으로 크리스찬들은 폭력에 의한 희생자를 양산하는 구조적인 면을 다루기 보다는 폭력에 의해 희생 당한 이들을 돌보는 것을 그들의 의무로 생각해왔다. 이러한 점은 특수한 갈등 상황에서는 중요하면서도 현실적인 응답이다. 그러나 세계가 윤리적인 면에서 변화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중요하고, 필수불가결한 교회의 사명이라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상처난 곳을 치유하는 동안에도 이러한 윤리적 변화를 위한 헌신은 계속되어야 한다. 디아코니아는 자선사업이 아니라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평화를 '건설(building)'하기 원한다. 특히 아시아 교회들은 평화를 '경작(cultivating)'한다는 단어를 사용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스스로 평화를 지속할 수 있는 조건과 밑바탕을 준비하지 않고는 평화를 건설할 수도 경작할 수도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삶을 보장해주는, 정의에 근거한 평화 건설을 원한다. 그리고 우리는 힘없는 자들의 권리를 짓밟는 것에 대해서나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 침묵하는 표면적인 평화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단순한 '반전주의'의 구호가 아닌 정의를 위한 투쟁을 거친 평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순진하거나 힘없이 피해자로 전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공동체에서 폭력극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은 새로운 형태와, 표현, 조합을 만들어내는 아주 복잡하고 역동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폭력에 대해 교회가 대응하기 위해서는 역시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세계화에 의해 가속화되는 경제상황 악화, 종교 근본주의, 자아정체성에 대한 억압,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카스트제도, 차별, 점령, 여성을 겨냥한 폭력, 가정 폭력, 청년들이 겪는 불안감 등은 오늘날 폭력적 상황에 놓여있는 주요 요소들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교회가 내어놓으려면 다양한 측면의 접근이 요구된다.

예를 들면, 대안을 제시하는 캠페인이나 대규모 운동 등이 그것이다. 필자는 교회가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필요한 3가지 중요한 이슈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자아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다원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자아정체성의 확립은 세상과 공동체,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극복을 위한 주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경제적 잣대로 보면 너무나 빠르게 세계화 되어가고 있는 세상에서 전쟁, 기아, 실업에 맞서기 위해 대규모 운동을 전개한다던가 자아정체성과 생존을 위해 투쟁을 한다는 것은 더 많은 긴장과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우리가 피하지 않고 직면해야 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어떠한 해답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창조물의 다양한 아름다움과 선함을 확신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두번째, 오늘날 종교는 세상에서 권력 투쟁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해야 하다. 인도에서 우리는 정치인들이 종교 근본주의 속에서 어떻게 협력자들을 찾아왔는가를 목도해왔다. 우리는 긴장을 완화시키고, 신뢰와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해결책으로서 종교간 대화를 제안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만 행해져왔다. 이 영역에서 더 많은 작업들이 필요하다. 특별히 갈등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수용하고 시도할 수 있는 모델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세번째는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평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폭력은 놀랄만큼 빠르고 다양한 방법으로 학습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평화 교육은 아이들의 관심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평화교육은 평화적인 문화를 걸설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중요한 요소다.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고 생명의 신성함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평화교육은 특정한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몇몇 평화 관련 단체들과 시민 운동은 전문가와 운동을 전개할만한 든든한 기반을 갖추어 교회와 창의적인 교류를 나눌 필요가 있다. 도덕적 공동체로서 교회는 도덕적 사회를 형성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평화의 순례에 동참함으로써 기관, 운동, 네트워크, 신앙인들과 같은 창조적인 힘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이 창조적인 힘들은 이미 하나님의 창조, 생명의 신성함과 가치를 지탱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크리스찬의 하나됨의 의미를 발견하고, 인도주의를 함께 실현하며, 승리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우리의 행동을 새롭게 하는데 우리의 삶을 헌신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폭력극복 10년 운동'은 세상에 평화와 정의를 위해 타인과 함께 하나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시하고 있다.

 <번역:표현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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