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19일

6월 14~19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6월 09일(수) 15:30

월-믿음의 눈으로
본문: 민 13:25-33
찬송가: 366장(구 485장)

1961년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인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은 보스토크 1호 우주선을 타고 우주 공간에 떠서 지구를 한 바퀴 돈 다음 지구로 귀환하며 "지구는 푸르다"라는 말과 "우주 어디에도 하나님은 없더라"는 말을 남겼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72년 아폴로 15호의 우주 비행사 제임스 어윈은 우주의 공간을 가로질러 달에 도착하여 월면차로 달 표면을 주행하고 돌아와 "나는 우주여행과 달 주행을 하는 동안 우주 모든 곳에 가득 찬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라고 증언하였다.
 
오늘 본문 말씀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들의 보고 내용이다. 그러나 동일하게 본 것에 대하여 전달하는 과정은 서로 상반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말한 반면 다른 10명의 정탐꾼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고 말했다.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10명의 정탐꾼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과 사실만을 보았다. 그러나 갈렙은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넘어 그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객관적인 사실로는 가나안 땅 거주민들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컸다 할지라도 갈렙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았기에 현실 앞에 놓인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믿음은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이다. 현상을 뛰어 넘어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믿음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내 앞에 놓인 현실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 채 수 목사
호남신학대학교


화-진정한 성공
본문: 막 10:41-45
찬송가: 440장(구 497장)

누구나 성공에 대한 열망이 있다. 그러나 성공이 모든 것들을 만족시켜 주지는 못한다. 성공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공이 주는 의미이다. 여러분이 느끼는 성공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들 대부분은 세상이 바라보는 관점으로 성공을 판단한다. 결국 누군가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이다. 오늘 말씀은 진정한 성공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조는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이뇨?"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나와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성공이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말씀한다. 진정한 성공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감당하는 것이다.
 
10킬로미터 경주대회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뛰고 있었다. 그는 머리가 하얗고 60세 정도 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다. 그는 완주 후 "저는 여러분에게 교훈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비록 꼴등이었지만 끝까지 뛰었습니다. 인생을 저처럼 뛰십시오"라고 말했다.
 
우리는 1등을 하기 위해 뛰는 것이 아니다. 꼴등이라고 해도 마지막까지 뛰어야 한다. 우리에게 독특한 성격과 재질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자.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성공을 이루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오늘의 기도

오늘 우리의 걸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성공을 이루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동 만 목사
동부교회 시무


수-기도의 사람이 되자
본문: 출 17:1-17
찬송가: 75장(구 47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 마실 물이 없어 고통을 당했다. 이에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다.
 
첫째, 누구에게나 고난이 찾아올 수 있다. 고난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자신의 실수와 잘못 때문에, 둘째는 죄의 결과로, 셋째는 사단이 시험하기 때문에, 넷째는 하나님의특별한 계획과 의도 때문이다. 본문의 경우는 네 번째에 해당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이 없는 르비딤으로 인도하셔서 고난을 당하게 하셨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고 살아 계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항상 그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평생에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고 믿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둘째, 고난은 기도로 해결해야 한다. 르비딤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망했다. 그리고 그 실망은 미움으로, 미움은 원망으로, 원망은 분노로 변했고 결국 돌을 들어 모세를 죽이고자 했다. 모세도 백성들의 분노에 의해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이 때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다. 기도가 곧 문제의 해결이다. 위기를 만날 때마다 모세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요, 그 사람이 고난을 복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은 당할 수 있다. 특별히 하나님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고난을 주시기도 하신다.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린 모세처럼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오늘의 기도

때때로, 수시로 고난이 닥쳐올 때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 고난의 원인이 무엇인지 바로 깨닫게 하옵시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하시고, 기도함으로 고난을 풀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삼 균 목사
대성교회 시무



목-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본문: 시 10:1, 17-18
찬송가: 347장(구 382장)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뒤에 찍히는 네 개의 발자국이 증거였다. 어느 날 큰 환난을 당해서 지쳐 쓰러질 지경이 되었다. 급히 주님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동안 주님 발자국과 함께 나란히 찍혔던 발자국이 2개 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 어려운 때에 주님은 어디에 계시단 말인가?"라며 시험에 들려는 순간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들아 지금 내가 너를 업고 가고 있단다. 두 개의 발자국은 내 발자국이란다."
 
시편 10편 1절 말씀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불평을 하고 있다. 의심과 불신앙이 섞인 탄식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문의 시편기자는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분명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큰 환난을 당해서 자신의 지금까지의 신앙경험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당황하며 탄식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도 죄인인 동시에 의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과 환난을 만났을 때 낙심되고 불평과 원망이 생기기도 한다. 사실은 어려울 때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낙심과 고통까지도 십자가 밑에 내려놓는 자기부정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연약함까지도 다 아시고 대신 담당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가 환난 당할 때에 건져주시고 성숙한 믿음으로 이끄시고 악인을 심판하시는 기회로 삼으신다.

오늘의 기도

환난을 당할 때 낙심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고 더 큰 뜻을 믿고 주님을 바라 보게 하옵소서. 겸손히 기도의 무릎을 꿇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추 연 욱 목사
성환중앙교회 시무


금-느헤미야의 기도
본문: 느 1:4-11
찬송가: 524장(구 313장)

느헤미야는 성전재건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이스라엘을 흩으셨다. 신앙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성문도 불에 타 없어졌다. 이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다가 슬픔을 기도로 승화시킨 믿음을 보여준다. 그는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우리는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느헤미야처럼 슬픔을 갖고 기도해 본적이 있는가?
 
느헤미야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하나님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었다(4절). 크고 두렵다는 말은 경외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 본문에서의 의미는 전쟁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두려움의 하나님이란 뜻에 더 가깝다. 그런 하나님을 느헤미야는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본문 6절부터 7절에서는 또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느헤미야의 신앙이 이스라엘을 살리고 회복시킨다. 이러한 기도의 응답은 11절 말씀에 왕의 술관원이 됨으로 결론지어진다. 술관원이 된 느헤미야가 2장에 가서 왕의 신임을 얻어 이스라엘로 돌아가 성을 재건하는 일을 맡게 된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신앙을 보시고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일에 사용하셨다.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나라가 어려움을 당할 때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해야 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가 이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주님의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옵소서.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 도 출 목사
비전교회 시무


토-손을 내밀라
본문: 마 12:9-13
찬송가: 220장(구 278장)

미국의 사상가인 에머슨은 "인간의 손은 도구 중의 도구라"고 말했고 희랍의 철학자 아낙사고라스는 "인간이 동물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손을 가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일에 기량이 뛰어나 많은 사람 가운데 대표로 뽑힌 사람을 가리켜 선수(選手)라고 말한다. 한자 뜻으로는 뽑힌 손이라는 뜻이다. 어떤 일에 사람이 부족한 경우 일손이 부족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다. 여기 손이 말라 쓸 수 없게 된 사람이 있다. 그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네 손을 내밀라." 그리고 그의 손을 고쳐 주셨다.
 
태초부터 인간의 손은 죄를 짓는데 사용되어 왔다. 아담의 손이 선악과를 땄고 그 아들 가인의 손은 동생 아벨을 죽였다. 가룟 유다의 손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했다. 본래 인간의 손은 이렇게 더러운 손이요 죄악의 손이다. 죄에 익숙해진 손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손을 씻는다는 것, 손을 끊는다는 것이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병든 손으로는 일을 할 수 없다. 죄악의 손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만 준다. 손은 건강해야 하고 깨끗해야 한다. 예수님의 손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손이요, 병든 자를 고쳐주시던 손이다, 눈물을 닦아 주시던 위로의 손이다. 예수님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
 
어떤 손이 아름다운가? 화해를 위해 내미는 손이요, 나누는 손이다. 무엇보다 더 아름다운 손은 기도하는 손이다. 손이 필요한 세상이다. 손이 부족해서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의 손이 따뜻한 사랑의 손이 되어 세상을 향해 그 손을 내밀자.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들의 병든 손을 고쳐 주옵소서. 섬기는 손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 광 재 목사
노원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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