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아이들

불쌍한 아이들

[ 입시사교육바로세웁시다 ] < 72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6월 01일(화) 13:17

19세기 유럽은 산업혁명의 여파로 생긴 아이들의 노동이 사회의 큰 문제가 되었다. 한참 즐겁게 놀아야 할 아이들이 하루 종일 공장에 가서 햇볕도 못보고 노동을 해야만 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당시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아이들의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아이들에게 노동을 시키는 공장주나 아이를 일하려 보내는 부모에 대해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였다.

그는 그 당시의 현실을 보고 안타까와 하면서 한편의 시를 썼다. '멜랑꼴리아'라는 제목의 이 시는 그 당시 공장에서 노동을 해야만 했던 아이들의 비참한 현실을 통탄하면서 그렇게 만든 어른들을 통렬하게 비난했고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들은 가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끝없이 일한다. 똑같은 감옥에서 똑같은 움직임으로." "그들은 감옥 안에서 결백한 사람처럼, 지옥에서 천사처럼 일한다." "절대로 중단하지 못하고, 절대로 놀지도 못한다." "그들은 이렇게 하나님께 말하는 것 같다. '우리 아버지, 우리는 어린 아이에요. 그런데 어른들이 우리에게 한 일을 좀 보세요.'" "누가 이런 비참함을 만들어서 돈을 벌고 있는가?" "누가 활짝 핀 어린 시절을 꺾어버리는가?" "누가 그들의 영혼을 기계에 넘겨주고 있는가?"

"오 하나님! 노동의 이름으로 저주 받을찌어다." "참된 노동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자유롭고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찌어다."

이제 그런 비극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가난한 나라에서는 그런 비참한 일이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또 즐겁게 뛰어놀고 아이들이 공장에서 중노동을 하고 있다. 세계화가 빚어낸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그런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 대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아이들이 공부에 시달리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문득 우리나라의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겪는 고통을 연상하게 된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오늘 우리들의 아이들의 현실에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 공장에서 노동을 하는 아이들의 현실을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 우리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그 당시 아이들이 느꼈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외국인들에게 우리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하면서 공부하는 실정을 이야기 해주면 그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의 현실은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 따라 외국에서 살게 된 아이들과 이야기하다보면 그들의 반응은 한결 같다. 언어가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은 힘들지 않단다. 단지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가서 공부할 생각을 하면 힘이 든단다. 이유야 어떻든 우리의 아이들에게 우리의 교육현실은 정말 가기 싫은 곳이 되어버렸다. 과거에 어른들이 합작해서 아이들에게 노동의 지옥을 만들어 버렸듯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어른들이 합작해서 아이들에게 공부의 지옥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공부를 지옥으로 만들었는가? 일차적으로는 자녀를 사랑한다면서 자신의 욕심과 염려 때문에 자녀에게 교육노동을 강요하는 부모들이다. 물론 그러는데는 학교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는 일부 무책임한 교사들, 교육을 사업의 아이템으로 개발해 돈을 버는 사교육 기업가들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방치하거나 해답을 내놓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교육행정가들, 정치가들이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어른들은 이런 지옥 같은 현실을 보고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나를 비롯한 여러 교회의 지도자들이다. 모두들 자기 자녀가 입시에 성공하기를 위해서 애쓰기도 하고 그것을 위해 기도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현실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데는 관심이 별로 없고 그것을 위해서는 기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교육현실은 여전히 지옥과 같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이 기도가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곳이 바로 우리 아이들의 교육현장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교육의 책임을 진 사람들 모두가 세상의 흐름에 따라가는데 급급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방선기/직장사역연구소 소장ㆍ기윤실 이사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