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의 모범을 보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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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끝에서온편지 ] <2> 아름다운 동역 - 몽골 안광표선교사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6월 01일(화) 12:26
새 천년이 시작된 2000년 2월 25일 몽골행 비행기에 올랐다. 늦은 밤 12시가 되어 몽골의 보앙트 오하 국제공항에 내린 우리는 마중 나와 준 윤순재선교사와 함께 숙소로 향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온통 흰눈 덮인 은빛 세계를 연출하고 있었으나 도로변은 외등 하나 없는 캄캄한 밤이었다. 울퉁불퉁 불규칙한 도로면은 우리나라의 60년대 시골길을 연상할만큼 열악했고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바람소리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나는 1백년전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조선땅을 처음 밟고 느낀 바를 미국 본국에 보내셨던 편지 내용이 생각이 났다. "온 세상이 깜깜하고 아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 평생 라마불교에 젖어 있던 노인이 모든 우상을 버리고 돌아와 감격하며 세례를 받았다.
10년전 몽골 입국 당시의 상황은 마치 언더우드선교사님이 조선 땅을 처음 밟고 느꼈던 것처럼  바로 그런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70년 넘게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생활하다 1990년 구 소련권의 붕괴와 함께 개혁개방이 시작된 몽골은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먹고살기조차 힘든 상황이 마치 우리나라의 1950년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필자는 1시가 넘어 숙소에 도착하여 몽골에서 첫밤을 아내와 함께 무릎꿇고 간절히 기도함으로 맞이했다.
"부족한 종들을 이땅에 불러주셨으니 저희들을 통하여 우리와 얼굴이 같은 동인종 몽골민족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선교의 열매로 드릴수 있도록 당신의 거룩한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몽골에 입국하여 2월 27일 첫주일을 오전 11시에 울란바타르 한인교회(당시 안교성목사 시무)에서 눈물로 감사의 예배를 드렸는데,  선교지에서 처음 만난 한인교우들의 따뜻한 환영이 큰 위로가 되었다. 당시 몽골에 파송받은 선교사님들은 대부분 젊은 30, 40대가 대부분이었는데 한국에서 22년간 목회하다 뒤늦게 선교지에 들어온 필자의 마음은 조급하면서도 먼저 선교지에서 수고한 선임선교사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매사에 조심하며 정착훈련에 들어갔다.

당시 몽골은 개혁개방을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었지만 모든 물자가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선교사들의 생활도 생존의 문제가 가장 급한 것이었다. 시장은 열렸지만 시장에 상품이 없었다. 당시에는 습관처럼 외출할 때 배낭을 메고 다녔다. 혹 필요한 물건을 찾으면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입국한 안교성, 윤순재선교사 가정의 이야기를 들으면 1992년 초기에는 모든 것을 배급에 의존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하니 생필품을 구하는 기대감은 때로는 즐거움이 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색다른 생필품이 생기면 선교사들이 함께 나누고 작은 것에도 크게 감동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은 모든 것을 넉넉하게 누릴 수 있는 환경이 되었지만 그때의 감동을 찾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하겠다.
몽골은 새로운 선교지로 한국교회의 각광을 받고 있었으며 총회에서도 몽골을 선교 정책지역으로 선정하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몽골은 연합의 모범을 보이는 선교지이다. 선교사로 입국하기전 여러 선교지를 방문했을 때 느낌은 선교사들간의 긴장관계가 많았고 같은 교단 선교사들끼리 혹은 같은 교회 파송을 받고 함께 사역하면서도 갈등관계로 불편해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몽골에서는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서로 협력하고 연합하는 모습이 칭송들을만한 선교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니 새롭게 선교의 문이 열린 몽골의 선교사로 입국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되었다. 연합하고 동역하는 아름다운 선교, 동인종 근거리의 선교, 이것이 몽골 선교의 매력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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