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학과 신학의 경계담론, 과학신학

<1> 과학과 신학의 경계담론, 과학신학

[ 최근신학동향 ] 최근 신학 동향/  2. 과학신학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1월 29일(금) 13:15

최근 SF 영화 '아바타' 열풍이 거세다. 필자도 3D 영화관에서 최첨단 CG가 창조한 판도라 행성의 경이로운 가상세계를 탐미했다. 미래 고도의 과학기술을 가진 지구인이 판도라 행성에서 자원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자연종교적인 외계 원주민('나비'족)과 정면충돌한다. 이때 나비인으로 분신화한 지구인의 리더십으로 나비족이 구원된다는 이야기이다. 최첨단과학기술에 의해 탄생된 이 영화는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주지할 것은 경계인의 이야기다. 나비인을 사랑한 주인공인 경계인(지구인/나비인)은 이들을 중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애석하게도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 참담한 전쟁이 일어나지만 그 중재의 노력은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준다. '아바타'는 최근 부상하는 첨단 신학담론인 과학신학에 대해 좋은 비유를 제시한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과학 간에는 큰 정면충돌이 있어왔다. 갈릴레이 재판과 다윈의 진화론, 또 최근 생태문제와 생명복제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로 인해 대중들에게는 '종교와 과학의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이 이미지를 고착시키는데 기여한 두 사조가 있다. 하나는 과학을 배척하고 신앙만능을 외치는 극단적 신앙주의 또는 교조주의이다. 중세 가톨릭은 최초의 망원경 관찰을 통해 지동설을 확증한 갈릴레이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그 한 중요한 근거는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언급이 성경에 없다는 것이다. 교조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종교를 배척하고 과학만능을 외치는 과학주의이다.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그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과학주의와 교조주의는 과학과 기독교의 정면충돌을 불가피하게 한다.

과연 과학과 기독교의 전쟁은 불가피한 것인가? 창조적 대안은 없는가? '아바타'의 주인공이 지구인/나비인의 경계인인 것처럼 과학신학은 과학/신학의 경계담론이다. 이 경계담론은 과학주의와 교조주의를 넘어서 과학과 기독교의 창조적 대화와 조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극단적인 사례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심각한 병에 걸렸을 때 병원에 가야할까 아니면 교회에 가야할까? 이것이 과연 양자택일의 문제일까? 현대의학을 신뢰해 병원에 가는 것이 신앙에 위배되는 것일까? 병원에 가지 말고 기도만 하라고 하는 것이 건전한 신앙, 건전한 신학일까? 현대의학의 경우, 이렇게 믿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물리학ㆍ생물학과 같은 순수과학의 경우, 이런 이분법적 사고가 아직까지 교계에 팽배하며 그 폐해는 실로 심각하다.

그러면 왜 이런 사고가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일까? 먼저, 이것은 과학을 통한 하나님의 창조적 섭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땅을 정복하라"(창 1:28)의 말씀은 생태위기를 맞이하면서 생태계 파괴의 원흉으로까지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이 자연을 이해ㆍ활용하는 과학기술과 문화의 창출능력을 가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적 섭리를 의미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즉 과학기술은 인간의 자연초월적인 창조적 능력, '하나님의 형상'의 발현인 것이다.

또한,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과학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부정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성서를 통한 특별계시 외에 자연을 통한 자연계시를 인정해왔다. 고대나 중세에서 과학은 신학에 통합되어 있었지만, 근대과학이 태동된 16∼17세기에 과학이 신학에서 분화되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갈릴레이 재판은 이 과정에서 생긴 대표적인 충돌사례인 것이다. 고도로 분화된 현대사회에서 과학은 자연관찰의 기능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게 되었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현대사회에서 과학은 자연계시를 일차적으로 관찰하는 '눈'의 기능을 맡게 된 것이다. 과학을 통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자연의 신비, 즉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가 새로운 차원에서 드러나게 된 것이다. 다양한 과학을 통해 드러나는 우주의 신비, 생명의 신비, 인체의 신비를 생각해보라. 즉 과학은 보다 광범위하고 보다 세밀하고 전문적으로 하나님의 자연계시를 관찰할 수 있는 창조적 기회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 과학의 전문성ㆍ분화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과학을 통한 하나님의 창조적 섭리와 계시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과학에 대한 균형 잡힌 신학적 이해. 이것이 과학과 신학의 창조적 조화를 희망하는 경계담론인 과학신학의 첫걸음이다.

문영빈교수/서울여대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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