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지켜온 이들이 있었기에'

'믿음을 지켜온 이들이 있었기에'

[ 디아스포라리포트 ] 재일대한기독교회 '동경조후교회'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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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07일(목) 10:17

   
▲ 조후교회가 위치한 곳에 있는 민단 사무실.
1950년대 초반 교회 설립 때의 신도들은 지금 아무도 없다. L집사는 동포 2세로서 설립 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결혼 후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 살고 있다. 아무리 다른 곳에 살고 있다 해도 좁은 동포사회에서 이런저런 일로 두어번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1년 전 갑자기 주일예배에 참석해서 놀라게 했다. 신도들 중에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배가 끝나고 광고 시간에 그를 소개했고 잠깐이었지만 서투른 우리말로 설립 당시의 얘기를 들려 주기도 했다. L집사는 일본교회에 나가고 있다며 오랫만에 모교회에 참석하게 된 것에 대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미 70대 후반 노인이 되어버린 L집사는 그 다음 주일(성탄절)에 부인과 함께 참석하면서 교회에 값비싼 야마하 피아노를 헌납했다.

연로한(87세) C권사는 지금 몇 년째 치매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유일하게 동경조후교회에 적을 두고 있는 1세 생존자인데,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결혼을 이유로 일본에 살게 되었다. 친정이 기독교 가정이었기 때문에 조후에 와서 살면서 이인하목사를 도와 교회 개척때부터 일평생 섬겨왔다. 해방이 된 후의 재일동포 사회가 이념적으로 남한을 지지하는 '민단'과 북한을 지지하는 '조총련'으로 나누어 질 때 C권사의 남편은 조총련에 가입했지만 C권사는 친정 아버지의 뜻을 따라 민단에 가입했다. 그러니까 부부가 이념적으로 남북 나누어져서 일평생을 살아 온 셈이다. 그리고 태어난 자녀들 6명 모두 조총련에서 운영하는 조선학교를 졸업했다. 그래서인지 그 자녀들 아무도 교회출석을 안했다. 그러나 C권사는 같이 살고 있는 손자들을 교회에 데리고 나왔다. 필자가 부임했을때만 해도 C권사의 손자 2명이 교회학교에 출석을 잘 했는데, 조선학교의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교회하고는 작별하고 말았다. C권사의 남편은 조총련이었기 때문에 평양에는 몇 번 갔다 왔지만, 고향 땅은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전도를 받아 필자에게 세례를 받았다. 장례식에는 조객들이 교인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총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어색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A할머니는 1913년 경북 청도 출생으로 16살에 결혼해 일본에 와서 75년을 일본에서 살면서 한 많은 90평생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성격이 거세고 생활력이 강해 슬하의 6남매를 잘 양육했다. 기독교 가정이 아니었지만 큰 딸이 제일 먼저 시모노세키교회에 출석하게 됨으로 모든 가족들이 기독교인이 되었다. 1960년대 이후에 삶의 거처를 북큐슈지방에서 동경으로 옮기게 됨으로 동경조후교회를 일평생 섬겼다. 큰딸 H는 학교 교육은 많이 받지 못했지만 영리하고 분별력이 있어 온 가족을 전도했고, 그의 남편도 교회를 잘 섬기는 일꾼이었다. 그러나 딸 H의 가정이 자녀들 일로 인해 일본 국적으로 귀화를 했다. 지금 같으면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 때만해도 귀화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었다. 어느 교인이 별 생각 없이 내뱉은 "왜놈 되니까 좋더냐?"라는 말에 상처를 받은 H의 가족은 교회를 떠났고 말았는데, 지금은 일본교회를 잘 섬기고 있으며 일본인 침례교회 목사인 사위도 열심히 목회를 하고 있다.

북한은 1959년말부터 10년간 일본에 살고 있는 조총련계 재일동포 약 9만명을 만경봉호를 태워 북송했다. 그 중 A할머니의 남동생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끈질기게 누나를 설득해 함께 가자고 권유했다. 그러나 A할머니는 완강이 거절했는데, 동생이 북한으로 가면서 "누님, 내가 북한에 가서 편지 할텐데 편지가 오면 좋은 줄 알고 오세요. 편지가 없으면 속은줄 알고 오지 마세요"라는 말을 남긴 후 북송선을 탔다. 그런데 수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편지 한 통 없었다고 했다. 재일동포 사회의 또 하나의 슬픈 삶의 이야기인 셈이다. A할머니는 가고 없지만 그 후손들이 일본, 그리고 재일동포 사회에서 목회자로서 또는 사업가로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음에 주님께 감사드린다.

동경조후교회 뿐만 아니라 재일동포교회를 세우고 지켜왔던 1세들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믿음과 삶의 흔적을 남기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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