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부국 꿈꾸며 보낸 청춘의 나날'

'농업부국 꿈꾸며 보낸 청춘의 나날'

[ 나의삶나의신앙 ] 류광열장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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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9일(화) 11:45
류광열 / 삼성교회 장로ㆍ갈릴리농원 대표

   
▲ 아내 홍인순장로는 오늘날의 필자가 있기까지 기도와 헌신으로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하와이 열방대학에서 신학 과정 이수후 학교 관계자와 함께한 사진.
양어장에 들어서니 장어들이 수조를 오르고 있다. 장어들이 수조를 오르는 것은 틀림없이 큰 비가 온다는 징조다. 이런 신기한 일들을 경험하면 풀 한포기, 작은 생명체, 심지어는 미생물까지 그냥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창조됐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70년 가까운 나의 파란만장했던 인생도 되돌아보면 하나님의 섭리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벼농사에서 시작해 낙농업, 대한민국 대표 청년농민으로 선정돼 선진국의 앞선 영농기술을 배우던 나날들, 1차 농업 기반산업의 틀을 깨고 첨단생명농업산업을 꿈꾸던 중 시작하게 된 양만(養鰻)사업, 아내의 병을 계기로 다시 시작하게 된 신앙생활, 최근 개교회를 넘어 노회 및 교단을 위해 봉사 하게 된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 혼자의 힘으로는 지날 수 없는 길이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이 모든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필자는 1943년 2월28일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현재까지 경기도 파주에서 살고 있으니 그 인연의 끈이 참으로 질긴 모양이다. 현재 경기도 파주는 개발이 많이 되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는 등 큰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허허벌판이라 말할 정도로 개발이 되지 않았었다.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필자는 형제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 어린 나이에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게 됐다. 젊은 나이에 가족들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고향 땅에 남아 농사를 시작하게 됐다.

무엇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성격 때문인지 최선을 다해 농사를 지었던 필자는 어린 나이에도 성공적인 영농인으로 성장했다. 필자는 군대에서 제대한 후 농사에 임하기 전에 몸과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보름 동안 광주 소재 가나안농군학교에 입소했다. 그 때 김용기장로님의 신앙과 근면, 절약, 자립, 협동의 정신을 바로 옆에서 배웠던 경험은 70세를 바라보는 오늘날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경험이 됐다.

가나안농군학교를 퇴소하고 최고의 농업인이 되기 위해 정말 내 목숨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생명을 사랑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때도 지금도 생명을 대하는 일은 나의 모든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인간은 말로 의사소통하지만 식물은 감성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3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생명을 대해왔다. 지금은 장어를 키우고 있지만 양어장에 가면 물의 빛깔만 봐도 이 아이들이 행복한 지 알 수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국가의 미래농정방향 계획단에까지 참여해 당시 농림부 국장을 비롯한 실무자들과 함께 농정 비전 계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동안 정부에서는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농어촌 모범 청년을 전국에서 단 한명 선발해 선진농업국을 견학하게 했다. 그때 선정된 1인이 필자였다.

해외 여행조차 자유롭지 않던 시절 필자는 외국을 안방 드나들 듯 하며 선진국의 농업을 익혔다. 네덜란드 덴마크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스위스 호주 뉴질랜드 일본 이스라엘 등 농업 선진국을 다니며 필자는 한번 탐방을 갔다오면 피골이 상접해질 정도로 열심히 메모하고 배웠다.

이스라엘의 수질관리, 네덜란드의 시설 채소 농업,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의 양식, 스위스의 관광농업 등은 '농업부국'을 꿈꾸는 필자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푸른 청춘의 나날, 필자는 우리나라도 머지 않아 유럽의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올 것이라는 신념 속에서 최선을 다해 배우고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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