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넘어 '꿈'을 꾸며

꿈 넘어 '꿈'을 꾸며

[ 디아스포라리포트 ] '두바이한인교회'편…<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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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4일(화) 11:50
신철범목사/아랍에미리트 선교사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들은 이상을 볼 것이며"(욜 2장 28절)

"카자흐스탄에 와서는 4가지를 자랑하지 마십시오." "카자흐스탄에서는 4시간은 시간이 아니고, 4일은 날짜가 아니며, 4백km는 거리가 아니고, 40도는 술이 아닙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갔을 때 김현두 선교사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카자흐스탄은 워낙 넓은 땅이기 때문에 시골의 마을과 마을 사이에 최소한 4시간은 달려 가야하고, 또 기차를 타고 4일은 가야 조금 멀리 가는 것이고, 시골에 있는 한 개의 도시에서 최소 4백km는 가야 또 다른 도시를 만날 수 있기에 4백km는 거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추운지방이라 보드카는 40도 이상이 예사라는 것이다. 열사의 땅 두바이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세상이다. 내 생각의 사이즈가 항상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지난 9월 이스라엘과 요르단 성지순례를 갔을 때, 이스라엘에서 요르단 국경을 너머 페트라로 이동하는 중도에서 주일 예배를 드려야 했다.(중동의 주일예배는 금요일에 드린다. 일요일은 평일이기 때문이다.) 햇볕 내리쬐는 그늘 한 조각 없는 광야에서 예배를 드리자고 하니 교인들의 얼굴이 조금 찡그려졌다. 그러자 요르단을 안내하던 가이드가 조금 결연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애굽에서 4백년 동안 종살이하는 것을 원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는 길을 가겠습니까? 예수님처럼 광야에서 40일 금식을 하겠습니까? 아니면 광야에서 40분 예배드리는 것을 택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고난도 객관화시키면 고통의 무게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우리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교회부지 안에는 세계 각처에서 모인 1백25개의 교회가 존재한다. 이 교회 안에는 세계 도처에서 모여든 청년들이 넘친다. 그곳에는 인종과 언어, 문화와 관습, 피부색깔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다보면, 아래층 교회 계단에 얼마나 많은 인도 크리스찬들이 있는지를 한 눈에 가늠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하고 많은 숫자의 신발이 놓여 있다. 이것은 신발을 거룩한 곳에 신고 갈 수 없다는 그들의 신앙 모습이다. 이들뿐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이 곳이다.

그들은 생각의 크기가 다양하고, 삶의 무게가 다르다. 청년,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며 철저히 이성으로 판단하고, 드러나는 현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한국의 청년들도 꿈 너머 꿈을 꾸며 두바이를 찾아왔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로 모여든다. 신앙이 없는 청년들도 있고, 초보적인 믿음을 가진 젊은이들도 있다. 우리교회가 가진 고민은 '본토 친척아비의 집을 떠나온 그들을 저토록 다른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향한 비전의 사람으로 키우며, 어떻게 신앙 안에서 융합하여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미래의 하나님의 일꾼으로 키워낼 것인가?'하는 것이다. 젊은 청년들이 세계 속에서 진정한 월드비전을 가진 세계인으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구 중심의 세계관, 더 구체적으로 백인 사회에 대한 맹목적인 선망을 갖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소위 문명 충돌의 현장인 이슬람 사회에 살아서 더 절실히 느끼는 것이겠지만 지구촌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이웃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 창이 두바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인 비율 80%, 세계의 축소판 두바이, 이곳에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글로벌스탠더드의 사고의 틀을 가져야 한다. 꿈 너머 꿈을 꾸며 두바이로 모여든 한국의 젊은이들, 그들이 진정한 글로벌 스탠더드 사고를 가지고 한국인인 동시에 세계인으로 거듭나도록 돕는 것이 우리 교회뿐 아니라 해외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한인교회들의 사명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아가 어떤 것이 더 우월하다고 판단하는 시각보다, 무엇이 더 진실한지를 바라볼 줄 아는 청년들, 틀리다는 판단 보다, 다르다는 수용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으로 당당히 나아가는 청년들이 되길 소망한다. 그래서 우리 교회 청년들이 그들의 치열한 삶의 터전과 문화 공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열린 사고와 수용과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로 성장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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