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회없는 회중교회

당회없는 회중교회

[ 디아스포라리포트 ] 디아스포라 리포트 '영국 빌스톤ㆍ파크회중교회'편… <4>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4월 30일(목) 09:39

   
▲ 사진은 회중교회의 핵심인 공동의회(Church Meeting) 모습. 회중교회는 공동의회를 통해 모든 의사가 결정되며 이 결정기구 이외의 다른 지시에 대해서는 일절 거부한다.

본교단에서 파송된 필자는 세계선교협의회(CWM) 소속 선교사로서 영국 회중교회연맹에 가입되어 현지 회중교회에서 현지인 목회를 하고 있는, 어찌보면 조금 복잡한 과정 속에서 사역하고 있다. 한국 장로교회의 목사가 영국 회중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소 이해가 안될지도 모르나 이들에게 있어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는 여러 교단과 신학, 심지어 정치적 차이에서 수없이 발생한 분쟁과 조정의 역사를 거쳐온 영국 교회가 지닌 다양성의 산물이라 하겠다.

한국 장로교회는 개신교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의 괄목한 성장과 선교적 부흥을 통해 세계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도 유수의 교회들이 한국 장로교회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별히 한국 내에서 장로교회는 마치 한국 개신교회를 대표하듯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순복음교회와 같은 타교단 교회에서도 '장로'직을 임직해 '당회' 중심의 목회를 하고 있는 다소 기이(?)한 현상을 보기도 한다. 따라서 한국 개신교 교우들에게 있어 당회없는, 아니 장로직이 없는 교회를 바라볼 때 생뚱맞다 못해 거부감마저 생길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는 "혹시 이단 아니에요?"라며 의혹의 눈초리마저 보낸다.

우선은 회중교회에 대해 좀 알아보자. 회중교회의 역사는 1662년 영국성공회가 지교회의 목회자가 임의로 예배를 집전하고 인도하는데서 발생하는 폐단을 막기위해 모든 예배를 하나의 형태로 통일시켜 집성한 '일반기도문'(Book of Common Prayer)에 나와있는 예배 형태 이외의 어떠한 예배도 인정하지 않는 '예배통일령'(Act of Uniformity)에 반발해 발생한 '비국교도'(Non-Conformists)들의 주류 중 하나이다.

이들의 신학적 특징은 철저히 '만인제사장'설에 기초해 교회 안에서의 어떠한 수직적인 직제도 인정하지 않는데 있다. 회중신학(Congregationalism)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독자주의'(Independentism)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상회를 인정하지 않고 지교회 스스로가 공동의회(Church Meeting)을 통해 결정하고 누구의 지시나 통제도 따르지 않는 구조를 갖는다.

이제서야 쉽사리 이런 것이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만, 과거 이들은 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많은 순교의 피를 흘려야 했고, 대부분의 일반교인과는 달리 안락하고 영광된(?) 교회 묘지에 묻히지 못하고 대부분 길바닥에 뿌려지거나 야산에 묻혀야만 하는 참혹한 사연을 갖고 있다.

비국교도들에게는 죽어서도 교회 묘지에 묻히는 은총을 베풀지 않겠다는 국교회의 야박한 기득권에서 기인한 결과다. 그래서 성공회 교회와는 달리 회중교회에서 교회 묘지를 갖고있는 곳은 손꼽힐 정도이다.

이들의 제도적 특징은 교회 내에 당회는 물론, 공동의회를 제외한 어떠한 의결기구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바대로 모든 의사결정은 공동의회를 통해 결정한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약점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중요한 신학적 전제를 둔다. 공동의회에서 결정하되 반드시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교회 모임에서 자기네들 스스로 결정한 것이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에 있지 않다고 말할 곳이 어디 있겠냐만, 여하튼 이들 신학의 제도적 기초는 여기에 있다. 각 개인 의견의 다양성으로 말하자면 어디 하나 주눅들 것 없는 영국이지만, 일단 공동의회를 통해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는 것이 이들의 성숙한 의사결정 문화이다싶어 때로는 부럽기만 하다.

아무튼 이러한 신학과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회중교회이기에 교인수가 1천명 이상인 한국의 중대형교회처럼 성장할 수 없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 공동의회를 통해 의사를 결정할 수 없을만큼 공동체가 커진다면 교회 스스로가 또 다시 공동의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분립을 하게 된다.

초기 서양 선교사들이 조선 땅에 도래하여 교단과 신학의 차이에 관계없이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선교 협력사역을 펼쳤기 때문에 한국 개신교회내에서 다양한 신학과 교파로 인한 갈등과 반목이 유럽 교회들에 비해 훨씬 적었다고 생각한다. 왜 장로직제는 한국교회내에서 그리도 사랑을 받았을까? 민주주의의 '민'자도 제도로서 경험하지 못햇던 조선의 백성들에게, 민주주의 안에서도 고급 의사결정 형태에 속하는 대의민주주의를 택하여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은 연장자의 판단과 의사를 존중하는 우리사회의 사회문화적 특성과 맞아 떨어진 것이고, 달리 보면 연장자의 의견에 일절 토를 달지 못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특징에서 기인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웃지못할 사실이다.

종종 한국 목회자들과 만나 회중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고 얘기하면, 당회 없는 파라다이스(?) 목회를 한다고 은근슬쩍 농을 거신다. 아마도 교회의 각종 중차대한 결정을 함에 있어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수월치 않아 나오는 한숨 섞인 넋두리로 받아들인다만, 장로님들을 만나 똑같이 말한다면 그분들 역시 동일한 말씀을 하실것 같다. 교역자와 평신도의 차이 없이 동일한 직제 가운데서 함께 목회한다는 점에서 마음이 한결 가볍지 않겠나 생각된다.

올해 탄생 5백주년이 되는 깔뱅은 장로교회 내에서 목사와 장로가 같은 장로의 직함을 갖고 있지만 역할과 직임의 차이를 두어 상호간의 협력과 견제를 통해 교회가 건강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제시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비교적 이에 기초해 잘해 왔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간접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선호하는 형태로 변모하고 있으며, 목사와 장로간의 불신과 갈등에 대해서 교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매우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을 정작 당회만은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정확하고 합리적인 전체 교인들의 의사반영, 투명하고 깨끗한 의사결정과 재정집행, 아울러 군림과 일방적 통치가 아닌 진정한 섬김의 자세와 정신이 이 시대 한국 장로교회에 요구되는 시급한 요소들이라 감히 충언을 드리고 싶다. 장로교회건 회중교회건 형태는 중요치 않다. 교회가 건강하고 그리스도의 주재권이 인정되어 하나님의 교회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하는 교회이며 이를 위해 우리는 우리 교회의 모습도 개혁하고 변모하는 진정한 개혁교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日新又日新'(일신우일신). 


진영종
빌스톤ㆍ파크회중교회 목사
총회 파송 영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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