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의 계란 초콜릿

부활절의 계란 초콜릿

[ 디아스포라리포트 ] 디아스포라 리포트 '영국 빌스톤ㆍ파크회중교회'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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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16일(목) 09:34

   
▲ 영국 유명 백화점에 진열된 부활절 계란 초콜릿. 부활의 메시지가 경박한 자본주의에 가려지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사순절 넷째 주간을 지나고 있다. 근자에 들어 한국교회에서는 성탄절과 부활절을 제외한 사순절과 대림절, 주현절과 같은 다른 절기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목회에 적극적으로 접목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앞서 말한 두 개의 커다란 절기 외에도 연중 수없이 교회 내의 자체 행사들이 많이 있기에 이를 다 감당하기도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가 가장 크리라 생각한다.

반면 영국교회에서는 이들 절기에 대해 비교적 충실하게 지키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 교회력에 기초해 사회구조나 전통이 형성되어 있기에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예컨대, 학교교육의 학기제도가 교회력에 기초하여 크게 3학기로 나뉘어져 있고 각 학기 사이에는 6주 간격을 두고 1주씩 쉴 수 있는 '하프텀'(halfterm)이라는 시스템을 갖게 되었는데 대림절, 성탄절, 사순절, 부활절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금이 사순절이니 사순절과 부활절에 관해 잠시 짚어보자. 영국 전역에는 각 마을 단위로 형성된 교회연합 모임이 있다. 이른바 '처치스 투게더'(chur-ches together)라는 에큐메니칼 모임인데, 여기에는 로마가톨릭을 비롯해 그 마을에 속한 모든 기독교회의 평신도 대표와 교역자가 함께 모여서, 교회가 연합하여 할 수 있는 사역을 의논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탄절, 부활절 연합예배 등이 있고 그 외에 사순절 연합성경공부, 크리스찬 애드(Christian Aid) 구제사역, 타 종교와의 대화 등이 빠짐없이 자리를 지켜준다. 우선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인 1월쯤에 모여서 사순절과 부활절 연합행사를 준비한다.

올 사순절에도 어김없이 사순절 연합성경공부를 하고 있다. 교제는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지만 '요크 코시스'(York Courses)라는 탁월한 사순절 전용 성경공부 교제가 해마다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모두가 함께 모여 교제를 통해 받은 각자의 생각들을 거침없이 허심탄회하게 나눈다. 비롯 신학과 교파에서 기인한 차이가 있어도 오히려 그 다양함 속에서 일치를 찾으려는 그들의 여유있고 너그러운 모습은 교회일치 의식이 시급한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종려주일이 되면 '처치스 투게더'(churches together)에서는 종려나무 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각 교회에 나눠주고, 교회는 이를 예배 시에 온 교인들에게 나눠준다. 또한 세족목요일(Maundy Thursday)이 되면 한 교회에 모여 애찬을 나누고 세족의식을 갖기도 한다. 모든 순서는 각 교회별로 대표 한 사람씩 꼭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다. 성금요일이 되면 마을 중심광장이나 혹은 마을 가장 높은 언덕 위 커다란 십자가 아래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며 기도한다.

대림절 때처럼 사순절 기간 동안 절기달력을 만들어 매일 주어진 말씀을 묵상하고 또한 이에 따른 기도를 드린다. 처음엔 너무 형식적이고 틀에 갇힌 것 같아 답답한 느낌도 들었지만 차츰차츰 몇 백년 동안의 고민과 연구 끝에 만들어진 절기력의 깊이를 흡족히 느끼면 가슴 벅찬 감격이 밀려오기도 한다.

요즘 한국교회는 예전을 내세우면 일각에서는 친 가톨릭적인 느낌을 준다 하여 반감을 갖기도 하는 것 같다. 알맹이 없는 예전만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지만, 역사를 통해 쌓아왔던 전통과 경험의 틀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린 '경박한 자본주의'(shallow capitalism)의 힘이 교회 깊숙이 들어와 교인 수 증가와 외적 부흥에만 몰두하여, 개혁교회가 가진 본연의 능력인 스스로 개혁하고 복음 그 자체로 돌아가려는 핵심을 놓치고 있는 듯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돈키호테 같이 생각이 짧은 나만의 한 숨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고난 주간에 금식을 하듯, 사순절 기간 동안 각자가 즐기던 기호식품이나 취미들을 절제하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우리 아이들 명이, 헌이도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 자기네들이 좋아하는 초콜릿을 과감히 먹지 않겠다며 심지어 초콜릿 향이 들어간 아이스크림마저 피해 딸기 향을 고르는 모습을 보니 사뭇 대견스럽다.

한국에서는 부활절이면 지금도 여전히 계란을 삶아서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는지 궁금하다. 부활절 계란은 이곳에서도 오랜 전통 속에 남아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고난주간에 집사, 권사님들이 교회에 함께 모여 계란 삶느라 겪는 고난을 유명 초콜릿 제조회사에서 친절하게도 대신해 주고 있다. 계란이 아니라 거의 타조 알만한 '부활절 계란 초콜릿'이 대형수퍼마켓에서 마을 길 모퉁이의 작은 구멍가게에 이르기까지 넘쳐나고, 이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부활절 특수에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성탄의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 '산타클로스'가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부활의 핵심도 '복음'에서 '경박한 자본주의'로 바뀌어 영국교회와 한국교회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통탄스럽다 못해 애처로운 마음에 입맛이 씁쓸하기만 하다. 올 부활절에는 초콜릿 대신에 아이들이랑 꼭 계란 몇 개라도 삶아서 이웃과 함께 나눠 먹어야겠다. 찬미예수!

진영종
빌스톤ㆍ파크회중교회 목사
총회 파송 영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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