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목사의 영국목회기

돈키호테 목사의 영국목회기

[ 디아스포라리포트 ] 디아스포라 리포트 '영국 빌스톤ㆍ파크회중교회'편… <1>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4월 09일(목) 10:55
   
▲ 필자가 처음 목회했던 친리교회. 역사가 4백년이 넘은 유서깊은 교회지만 지금은 교인 수가 많이 줄어 목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적인 모든 것이 표준이요 정석으로 여겨지는 지금 이 시대로부터 약 50년전만 해도 세계의 모든 표준이 영국에 있었음에 대해, 역사를 통해서 알고는 있긴 하다만 이를 느끼기에는 시간이 너무도 많이 흐른 듯하다. 세계 시간의 중심이 런던 동부에 있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고 있고, 금융 및 보험에 관계된 모든 기준이 런던에서 시작되었으며, 우리 신앙과 교회의 프로토콜(protocol)로 삼아왔던 미국 교회의 신학과 신앙의 원조도 사실은 영국 땅에서 고스란히 전해졌음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나아가, 오직 성경을 전하기 위해 대동강에서 순교의 피를 흘린 토마스 선교사와, 또한 선교사가 들어오기 이전에 현지어로 번역된 성경을 통해 현지인에 의한 현지교회가 먼저 설립된, 선교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그 기적의 밑바탕에는, 만주에서 성경번역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선교의 씨를 심어준 로스 선교사 역시 영국 출신임을 기억하고 있는 이는 한국 개신교회에서 얼마나 될까? 요컨대, 세계 개신교뿐만 아니라 한국 개신교회에 깊은 영향을 미친 영국교회에 대해서 우리는 그다지 친밀감은 없는 것같다.

그러면 도대체 영국교회는 어떠한가? 우선 성공회(The Church of England)가 개신교인가에 대해 그다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물론 개신교회로 여기고 있다지만 예전(liturgy)은 로마가톨릭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성공회 내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지만. 영국개신교는 크게 성공회와 비국교도(Nonconformist)교회로 나뉘는데, 1662년의 성공회 예배통일령(Act of Uniformity)에 반발해 성령의 인도와 신앙 양심에 따라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응전한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그리고 회중교회 등이 비국교도 교회에 속한다. 따라서 성공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신교회에서의 예배 형식은 기본적으로 말씀이 중심이 되는 성례전을 중시하는 우리의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지난 2004년 봄 친리(Chinley)교회에서 처음 예배를 인도할 때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목사가 예배를 인도하려면 예배 주제에 맞게, 본문말씀을정하고 그에서 기초하여 추출된 설교를 준비하고, 또한 찬송가도 선곡하고 심지어 예배를 드릴 때에는 목소리 높여 청중을 인도해야 하는 것을 한국의 목회자라면 너무도 잘 주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찬송가를 펼치고 곡을 찾는데 1천곡이 넘는 그 많은 곡 중, 아는 찬송가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열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는 미국 제2차 대각성 부흥운동 시절에 널리 불려졌던 소위 '복음성가'인데 아직도 영국인들은 이러한 찬송가들을 '샌키 찬송'(Sankey's hymn)이라 하며, 정식 영국찬송가(Hymn)로 수용하는데 인색한 편인 듯하다.

하긴 우리도 그들이 복음성가로 여기는 우리의 찬송가 외에, 새로운 형태의 가스펠송을 예배속으로 들여오는 데 얼마나 많이 공론화의 시련을 겪은 후에야 가능했던가?  마치 오늘날 드럼과 키보드가 피아노를 제치고 들어온 것이, 1백여 년 전 이곳에서 숱한 논쟁 후에 피아노가 파이프 오르간을 제치고 자리잡은 것이나 매한가지다.

여하간, 알아듣지도 못할 어줍잖은 영어설교라 찬송이라도 크게 불러 공(空)을 채워야 하겠다만,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곡조를 알아야 목청껏 크게라도 부를 것 아닌가? 찬송도 설교도 도대체 어떻게 인도했는지, 예배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목젖은 변사또 앞에서 취조 당하는 춘향이마냥 말라만가고, 오랜 유행가 가사대로 눈앞의 하늘은 오렌지 색이다. 잘난 내 손으로 작성한 설교 본문과 예배 인도문을 2주 내내 읽고 또 읽고, 새벽기도도 없는 이곳에서 주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예배의 모든 순서와 내용을 내 눈과 입에 고스란히 붙잡아 두려 했는데도 말이다.

하나님께 죄송하고 교우들께 미안하고, 일주일간 예배를 고대하고 기다려 온 교우들을 보자니 나 자신이 한심스럽고, 나같이 자격도 안 되는 어줍잖은 이를 뭐 하러 이곳에 하나님께서 세우셨나 은근히 부아가 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영어 좀 한다 싶고, 영국에서 공부도 했고 국제회의에도 좀 기웃거렸다 해서 영국인목회 하면 좀 하겠거니 생각했는데, 나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아니 나만을 몰랐던 것뿐 아니라 선교지와 현지 교우들에 대해 너무 몰랐던 것이다. 얼마나 피상적으로 준비 없이, 열정만 가지고 덤벼들었으며, 그로 인한 형편없는 시행착오와 그에 대한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또한 그것을 지불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 자신의 노력과 또한 교우들의 헌신과 양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아니 지금도 알고 있나? 언제나 반문 또 반문해 본다.

영국에서 이들을 선교한다 하여 위세는커녕 내 자신 하나도 추스르기 힘들다고 생각하며 지금껏 지내왔다. 다른 선교사들께서는 어떠하셨는지 알 수 없으나 이 땅으로 건너올 때 뭐 그럴듯한 출사표 하나 없이, 그저 하나님께서 불러주셨다는 허세 좋은 믿음으로 돈키호테마냥 거대한 복음의 나라였던 이 땅이 오히려 풍차(?)인줄 알고 허울좋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이 좌충우돌 중에서도, 중심을 놓지 않는 주님께서 나의 목회여정을, 삶의 소로를 지켜 주시리라 믿고 오늘도 믿음으로 늙은 애마 '로시난테'에 올라타 길을 떠난다. 에벤에셀.


진 영 종
빌스톤ㆍ파크회중교회 목사
총회 파송 영국선교사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