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위해 기경된 '북한'

복음 위해 기경된 '북한'

[ 디아스포라리포트 ] 디아스포라 리포트 '캐나다 토론토 큰빛교회'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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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3월 12일(목) 10:32

   
▲ 13년 동안 이어진 북한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북한을 향한 그 분의 사역을 쉼없이 행하시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사진은 북한 라진의 양로원.

북한 이야기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마다 항상 마음의 답답함을 느낀다. 북한 땅을 수십 번 밟기는 했지만 항상 지극히 제한적인 자유 속에 다녔기에 북한을 깊이 아는 것에 한계가 있고 보고 들은 얘기가 많지만 직접 그 땅의 설움을 몸으로 겪으며 살지 않았기에 피상적인 얘기를 할 가능성도 많기 때문이다.

내가 북한 땅을 처음으로 바라보며 울며 기도 한 때는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당시이며 북한 땅을 직접 밟기 시작한 때는 2년 후인 1996년 여름이었다. 그 당시 북한의 '큰물피해대책본부'에서 캐나다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면서 캐나다 대표단 5명 중 하나로 북한 땅을 처음으로 밟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 북한을 위해 기도하며 북한 땅을 밟기를 소원했던 것은 1972년 경부터였으니까 실로 24년만에 기도 응답을 받고 북한에 들어 가게 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청소년 시절 북한을 위한 헌신예배 시간에 어딘지도 모르고 커다란 우리나라 지도판에 촛불을 꽃고 함흥이라는 곳을 위하여 기도했던 기억 때문에 북한에 들어 가서 제일 먼저 양식을 보낸 곳도 함흥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북한 동포들과의 만남이 벌써 만 13년이 되었고, 그동안 60번을 다녀오게 되었고 수백만 불 상당의 양식과 옷 이불 비료 약 안경 컴퓨터 등이 그들을 돕는 지원 사업에 사용되었다. 평양과 황주 사리원 구장 개성 신의주 원산 함흥 고성 남포 회령 라진 선봉 학송을 비롯해 북한의 전역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사역들을 개발할 수 있었다.

필자가 북한을 계속 돕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평안북도 구장군을 방문하면서였다. 40만 명이 넘게 사는 탄광 마을의 비참한 현실을 눈으로 목도하면서 그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병들고 배고파 힘없이 앉아 있었던 탁아소 아이들의 측은한 모습들, 뇌 손상으로 멍하니 앉아 우리들을 쳐다 보던 아이들의 눈길들, 한 집 건너 한 사람씩 허기에 지쳐 신음하며 도움을 요청하던 주민들의 모습. 그래서 옥수수 3백 톤을 기차에 싣고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어 황주 국수공장을 만들게 되었고 후에 평양 대동강 즉석국수공장에 밀가루를 보내면서 육아원(고아)과 탁아소와 초등학교 아동들(약 4만 명) 급식을 10년 간 지속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큰빛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하시고, 그외에도 많은 돕는 손길들을 허락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고백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칭찬을 받아야 할 사람은 이름없이 빛도 없이 자신들의 귀중한 재물을 내어 놓았던 무명의 성도들이다.

10년 간 북한을 드나들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있다. 주로 국가 관리들이 제일 많을 수밖에 없고 우리들의 사역과 관련되는 분들이다. 그들은 이제 모두 우리의 친구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도 있고, 복음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도 있다. 아직 하나님을 잘 모르지만 함께 식사 할 때마다 그들은 내게 기도 부탁을 잊지 않는다. 기도를 싫어 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북한 땅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진행된 사역 중 가장 재미 있었던 사역은 안경 사역이었는데 안경점을 운영하던 집사님 한분이 평양에 따라 왔다가 시작된 것이 안경 보내는 사역이 된것이다. 한 사람의 관심과 사랑, 비전으로 인해서 북한에 처음으로 컴퓨터 검안기가 들어 가고, 안경이 40만 개 씩 두 번이 들어가 값으로 따지면 수천 만불어치의 안경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영예군인 진료소 지원 사업도 보람있는 사역이 되었다. 진료소를 지어 드리고 약을 보내 드렸더니 그곳에서 일하는 북한 의사들이 생기가 돌아 얼마나 열심히 일하시는지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라진에 옥수수 종자를 보내 드리고 있는 사역도 매우 값진 사역이었고 중국에서 종자 공장을 하는 조선족 분들을 만나게 되어 그 분들의 도움으로 종자를 보내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1톤을 보내면 1백50톤 이상을 거둘 수 있게 되므로 30톤만 보내도 결국은 4천5백 톤의 옥수수를 보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은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되어야 할 사역이다.

지금까지 가장 꾸준하게 지속해 온 사역은 황해북도 사리원시에 있는 육아원(고아원) 지원 사역이었다. 5백50명이 두 곳에 나뉘어져 수용되어 있었는데 벌써 8년이 되었으니 그 때 5살이던 아이들은 13살이 되었고, 10살 짜리들은 18살의 청년이 되었다. 10년, 20년이 지나면 그 때의 아이들이 성인이 될 것이고 그들의 마음 밭은 이미 복음을 위해 기경된 밭이 될 것이다.


임 현 수
토론토 큰빛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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