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간의 주례사

2분간의 주례사

[ 목양칼럼 ]

이근형 목사
2024년 10월 16일(수) 17:11
결혼식에서 주례자가 사라졌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주례 없는 결혼식이 대세가 되었다. 결혼 예식은 상대와 의견을 맞추어야 한다. 결혼식장에서 요구하는 시간을 철저히 지켜주어야 한다. 본인들은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그 순간에 유쾌하고 위트가 넘치는 애정 표현을 하고 집안 어른들의 덕담을 들으려 한다. 신혼부부들의 이런 대세를 외면하고 목사가 엄숙하게 주례하는 결혼 예배는 경건하기는 하지만 구태의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기에 좀 허전하긴 하지만 서운하지도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우리 교회 성도 가정의 결혼 예식에 순서자로 나서게 되었다. 신랑 신부가 필자에게 서약 문답과 성혼 선언 그리고 축복기도까지 맡아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반가운 마음으로 응낙했다. 시간을 엄수 해달라는 신신당부에 따라 결혼하는 부부에게 꼭 필요한 내용만을 초미니로 작성했다.

"혼인서약을 하겠습니다. 신랑 윤OO 군은 일평생 신부 이OO 양만을 사랑하겠습니까? (예!) 신부 이OO 양은 일평생 신랑 윤OO 군만을 사랑하겠습니까? (예!) 그러면 이제 성혼 선언을 하겠습니다. 신랑 윤OO 군과 신부 이OO 양은 하나님 앞과 많은 증인 앞에서 일평생 서로 사랑하며 부부 되기를 굳게 맹세하였으므로 이에 하나님의 종인 나는 하나님 앞과 증인 여러분 앞에 신랑 윤OO 군과 신부 이OO 양이 부부가 된 것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2024년 9월 28일 대한예수교 장로회 포도원교회 담임목사 이근형. 이제 이 부부를 위한 축복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여호와는 윤OO 이OO에게 복을 주시고, 윤OO 이OO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윤OO 이OO에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윤OO 이OO에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실수하지 않으려고 아내 앞에서 읽어보며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정확히 2분이 걸렸다. 감사하게도 결혼식 당일에 무난히 그 부부를 축복할 수 있었다. 그날의 예식은 단 1분의 어김도 없이 축복 속에 매끄럽게 진행됐다.

필자에게 맡겨진 부분이 정식 주례이든 약식 축복이든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이다. 결혼식을 앞둔 신혼부부가 굳이 담임목사에게 순서를 부탁하는 마음과 담임목사인 필자가 들려주고 싶은 하나님 사랑의 마음이 충분히 교감 되었다면 2분이라는 시간은 평생 기억될 주례사 못지않았으리라.

신랑은 우리 교회에서 3대째 신앙을 승계하는 청년이고, 신부는 우리 교회 장로님의 조카로 역시 유치부 시절부터 자랐다. 그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 담임목사로서 단 2분간의 축복으로는 너무나 아쉬워 선물로 주는 성경책 갈피 속에 '글로 쓰는 주례사'를 촘촘하게 써서 전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차분하게 짐을 풀고 신혼의 삶을 살아가면서 서로를 주님의 사랑으로 보아주며 행복의 실타래를 풀어가기 원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였다.

그날, 신랑 부모의 눈가에는 시종 이슬이 맺혀있었다. 그 이슬방울은 아들을 결혼까지 시켰다는 감사와 안도감, 그리고 앞으로 아들과 며느리의 삶이 하나님의 복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였을 것이다. 담임목사인 나도 그랬으니까.

결혼식은 토요일이었다. 결혼 예식을 모두 마치고 감정과 육체가 피로했을 것임에도 주일 예배 준비를 위해 교회 방송실에 와서 맡겨진 일을 하고 가신 신랑의 어머님께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역시 결혼은 사랑이다. 그 부부로 인해 양가는 물론 신앙의 계대를 이어갈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이근형 목사 / 포도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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