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목회에서 듣는 목회로

말하는 목회에서 듣는 목회로

[ 목양칼럼 ]

김종하 목사
2024년 09월 04일(수) 08:44
Evoto
필자는 신학교 시절 농어촌선교를 꿈꿨다. 학교에서 그 꿈을 위해 농어촌 선교동아리에서 활동하며 나름 농어촌 목회를 준비했다. 그러던 중 신대원 3학년 1학기 무렵 친구로부터 "우리 고향 교회가 목회자를 청빙하는데 너처럼 농촌목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가면 좋겠다"는 말에 낯선 땅 포항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 나름 농촌목회에 대한 준비를 많이 했다고 생각하며 마음에 힘을 많이 주고 내려왔다. 내 안에는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싶은 말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미 이농 현상으로 젊은이들이 떠나버린 농촌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대부분이 어르신인 성도님들은 그동안 쌓아온 전통이란 옷을 입고 있었기에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어르신 성도님들을 심방하면 한두 시간은 기본으로 그분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드려야 했다. 매주 심방을 가면 매주 같은 이야기가 마치 녹음기 돌아가듯 했다. 하지만 열심히 들어드리는 일에서부터 첫 목회 생활은 시작됐다.

열심히 설교 준비를 하여 강단에 올라가면 농사일에 찌든 성도님들은 졸기가 일쑤였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분은 제오댁이란 택호를 가진 할머니 집사님이었다. 이분은 살아오면서 가정적으로 한이 많다. 그래서 평소 집에서는 불면증으로 잠을 잘 주무시지를 못했다. 그 긴 밤 제오댁 할머니는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한을 누르며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분은 교회만 오시면 잠을 주무신다. 그렇게 잠을 자는 대표적 시간은 설교시간이었다. 필자는 이분의 사연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교회에서라도 주무시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서 설교 시간에 그분이 주무시는 모습을 보는 것은 필자 마음에도 한편으로 위안이 됐다. 그래도 교회가 주님의 품이라고 여기셨던지 그분은 예배시간 거의 빠짐없이 잠을 잤다.

그런데 어느 날 필자를 당황스럽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예배시간 한참 설교를 하고 있는데 이분이 갑자기 눈을 뜬 것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매일 주무시던 분이 깨셨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그날의 설교는 그렇게 당황스러운 가운데 끝이 났다. 예배 후 필자는 그 주변에서 함께 웃었던 권사님에게 물었다. "아니 예배시간에 왜 그렇게 웃으셨어요?" 그러자 권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오댁 할머니가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여지 하나?'라고 하더랍니다." 한참을 주무시다 일어났는데, '아직도 저 목사가 설교하고 있나?'라는 물음이었다. 이 분의 갑작스러운 말씀에 주변은 웃음바다가 됐다.

이 일은 필자에게 잊히지 않는 목회의 추억 중의 하나가 됐다. 하지만 이 일은 필자에게 우스운 추억으로만 기억되는 것을 넘어 목회에 소중한 교훈을 던져주었다. 그분의 말씀은 필자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제오댁 할머니에게는 그 어떤 설교보다 그분의 한 많은 사연을 들어드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분에게 교회에서의 잠은 그 어떤 은혜로운 찬송보다 절실한 것이었다. 이처럼 필자가 처음 만난 농촌목회의 현장은 필자가 가르치거나 말하는 자리 이전에, 듣는 자리여야 했다.

신학을 공부하고 농촌선교에 대한 꿈을 키우면서 시골교회로 찾아간 젊은 청년은 할 일과 할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렇게 필자의 목회 열정은 먼저 말하고 싶었고 농촌과 교회를 살리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먼저 말하는 것 이전에, 듣는 것을 배우게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인내하며 한걸음 늦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하나님이 필자에게 가르쳐주신 목회의 첫걸음이었다.



김종하 목사 / 곡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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