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 소통의기술 ] (2)

최석규 대표
2024년 09월 11일(수) 19:23
지금은 다(多)권하는 사회다. '멀티(multi)'가 능력의 대명사가 된 것은 이미 오래전. 멀티태스킹, 멀티플레이어는 유능함과 빠른 일처리의 상징이 되었다. 인생 이모작, 삼모작이라는 말도 이젠 옛말이다. 최근엔 'N잡러'가 대세다. 경제적 이유든 자아실현 차원이든 동시에 2개 이상의 직업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뿐만 아니다. 자아도 멀티가 유행이다.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처럼 본래 자신의 모습(본캐)과 다른 새로운 자아(부캐)를 추구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그러면 커뮤니케이션은 어떨까? 광고계엔 오랜 전설 같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프레젠테이션에서 열변을 토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다. 한참 프레젠테이션을 이어가던 중 그는 갑자기 작은 공 열개를 움켜쥐고 한번 받아보라며 청중을 향해 던진다. 여기저기 뿌려진 공을 잡느라 아수라장이 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커뮤니케이션도 똑같다고. 하나를 얘기하면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지만 열가지를 이야기하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확히 봐야 한다. 인간은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지 '생각하기 좋아하는 동물'은 아니다. 우리 뇌가 게으르기 때문이다. 뇌는 몸무게의 2%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에너지는 20%나 쓴다. 그래서 가급적 에너지를 아끼려는 습성이 있다. 이런 본능이 '절약본능'이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수잔피스크 교수와 UCLA 셸리테일러 교수는 이런 뇌를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고 이름 지었다. '생각하는데 인색하고 생각하기 싫어하는 뇌'를 이렇게 규정한 것이다.

뇌의 이런 습성은 여러 곳에 나타난다. 줄임말 사용이 대표적이다. '오운완'(오늘운동완료), '비담(비주얼담당)' 등 소위 요즘말들은 다 줄여 쓴다. 사투리도 그렇다. 충청도에선 "자네 술 마실 줄 아는가?"를 두 자로 줄여버린다. "술혀?", 경상도는 또 어떤가? "가~가 가~가?". 그 아이가 그 아이냐는 물음을 단 한 단어로 끝낸다.

우리 뇌가 이런 절약본능이 있다는 걸 안다면 커뮤니케이션은 달라져야 한다. 사람은 보통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말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말이 대게 한가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세가지, 열가지를 있는 대로 다 쏟아 놓는다. 또 말이 길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럴 경우 듣는 사람은 그걸 다 받아 안질 못한다. 우리 뇌는 게으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방법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하고싶은 말이 사랑, 용서, 헌신, 하나됨이라고 하자. 그 중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4가지를 다 남기고 싶다면 생각의 본능, 그 중 절약본능을 무시하는 것이다. 하나를 남겨야 한다. 사랑이면 사랑, 용서면 용서. 사랑에 용서를 버무리고 헌신이라는 양념을 쳐 하나됨으로 끈을 묶으려 하면 듣는 뇌는 결코 4가지를 묶지 못한다. 흘려버리거나 마음에 드는 하나 정도 잡아 둘 것이다.

버리는 게 얻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수록 썰어내야 한다. 세상엔 많을수록 좋은 것들이 많다. 돈도 친구도 많으면 좋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만큼은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에브리씽(everything)은 낫씽(nothing)이다.

최석규 대표(쉐어스팟·가천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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