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쓰러지면 이 깃발을 누가 들 것인가?

그가 쓰러지면 이 깃발을 누가 들 것인가?

[ 논설위원칼럼 ]

김운용 총장
2024년 09월 09일(월) 19:53
1989년에 개봉한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영화, '영광의 깃발(Glory)'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부연방 54연대의 활약상을 그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이듬해 아카데미 최우수 촬영상, 최우수 음향상, 최우수 남우조연상 등을 수상한 작품이다. 54연대는 자유를 위해 남부에서 온 흑인 지원자 1천여 명 중에서 600명을 선발하여 구성한 최초 흑인들로 구성된 부대로, 병사들 대부분은 군대 경험은커녕 소총도 한 번 잡아본 적이 없었다. 큰 부상에서 복귀한 젊은 백인 쇼 대령이 연대장을 맡는다. 군복, 군화, 소총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고,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조롱과 불신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부대 훈련에 돌입한다.

그리고 첫 임무가 주어지는데, 찰스타운 남부군 요새를 공략하는 것이었다. 사방으로 열려있는 해변을 달려 요새를 탈환하는 임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모두 꺼리고 있어 54연대가 자원하여 그 전투에 투입된다. 그 전투에서 부대원 절반이 전사, 혹은 중상을 입었고, 연대장도 전사한다. 전투는 결국 패배로 끝난다. 목숨을 걸고 국가의 부름을 수행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북부연방 자원입대자들이 줄을 섰고, 남북전쟁 전세를 바꾸어 놓는다. 훗날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 승리는 54연대의 헌신과 희생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치하한다.

한두 장면이 깊은 여운으로 남아있다. 병사들을 훈련하면서 연대장 이렇게 외친다. "나는 전투에 대비해야 한다. 여기서 하는 일에 확신이 없으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수가 없다. 내 임무는 병사들을 준비시키는 것이야!(It is my job to get these men ready)" 어려운 전투를 앞둔 병사들에게 성조기를 들고 있는 병사를 가리키며 연대장이 묻는다. "이제 우린 전투에 임할 준비가 되었다. 만약 이 친구가 쓰러지면 누가 우리 국기를 들 것인가?" 나이가 지긋한 상사가 일어나 외친다. "제가 하겠습니다!(I will!)" 병사들이 준비시키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지휘관이나 앞 사람이 쓰러지면 내가 하겠다고 외치는 병사의 모습은 비장했다. 무엇이든 그 비장함이 세운다.

자신에게 묻게 된다. '저런 비장함이 내게도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는가?' 비장함을 멋지게 그려낸 유안진 시인은 '겁난다'로 풀어낸다. "토막 난 낙지다리가 접시에 속필로 쓴다/ 숨 가쁜 호소(呼訴) 같다// 장어가 진창에다 온몸으로 휘갈려 쓴다/ 성난 구호 같다// 뒤쫓는 전갈에 도마뱀 꼬리가 흘려 쓴다/ 다급한 쪽지 글 같다/ ...비장한 유서 같다.../공들이는 상소 같다…" 오늘 우리는 어두움이 깊게 드리우는 영적 전쟁터에 서 있다. 여기저기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영적 지형도를 보고 있으면 심란함을 감추기 어렵다. 지금 한국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탈종교화가 진행 중이고, 한국교회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있으며, 마이너스 성장의 진지는 더 견고해진 듯하다. "7년 흉년기" 영적 빙하기의 도래인가?

무너진 것들을 세우도록 부름 받은 '우린 비느하스 세대'임을 선포하면서 새 학기의 문을 열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예배의 삼각편대(모세, 브살렐, 오홀리압)가 예배를 세워가는 말씀(출 19~31장)을 묵상하며, 예배 공동체를 세워가기 위해 우리가 거룩한 예배자가 되자는 다짐으로 학기의 문을 열었다. 개강 첫 주간, 장신대생들의 자발적 기도 운동인 '장신한마음기도회'로 660여 명이 함께 목이 터지라고 찬양하며,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며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행 15:16)." 허름한 장막에서 전심으로 그분을 찾으며 눈물로 예배하는 그 예배자처럼 거룩한 예배자로 살겠다는 다짐으로 결단했다.

신학교육은 깃발을 드는 것이고, 깃발을 들어야 할 사람을 세우는 사역이다. 무관심 속에서는 결코 세워질 수 없는 사역이다. '세우는 비느하스 세대로 서겠다'는 다짐으로 새 학기의 문을 연다. 그들이 희망이기에 노시인의 외침이 계속 맴돈다. "가을이다 아프지 마라." 인간 실존의 절망에 더 천착했던 '이방인'의 작가 카뮈도 거든다. "겨울은 언제나 봄 속에서 끝난다."



김운용 총장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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