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먹는 사람들

감자 먹는 사람들

[ 목양칼럼 ]

김동찬 목사
2024년 08월 28일(수) 11:33
필자는 미술엔 문외한이지만,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좋아한다. 화폭에 담긴 화수의 열정과 메시지를 통해 적잖은 영감을 얻기 때문이다. 서양 미술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인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의 어느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정신 질환을 앓게 되면서부터 그림을 그렸지만, 그 이전에는 문학과 신학에도 심취해 있었다. 또 선교에도 큰 관심을 가졌는데, 한때 평신도 전도자로 벨기에의 가난한 광부들을 섬기기도 했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켄 가이어는 '영혼의 창'이라는 책에서 당시 고흐의 삶을 이렇게 대변한다. "고흐는 광부들 속에서 그들과 똑같이 가난하게 살았다. 그들과 함께 있고자 탄광에 들어갔고, 그들이 마시는 까만 흙먼지를 함께 들이마셨다. 병자들을 찾아가 상처를 싸매주고, 그들과 함께 기도했다. 주일이면 그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그들의 칠흑 같은 삶 속에 작은 빛, 작은 희망, 작은 격려라도 부어 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고흐의 삶은,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첫 번째 작품 '감자 먹는 사람들'에 투영되어 나타난다. 작은 불빛에 의지하여 저녁을 먹는 농부들의 모습, 감자와 차 한 잔이 전부인 초라한 저녁 풍경이 담겨 있다. 그가 가난한 이들의 삶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탐욕에 눈이 먼 이 세상에서 정직한 삶과 안락한 삶의 양립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괴리감 속에 실망하며 눈물을 흘리는 연약한 자들에 대한 애착과 연민이 있었을 것이다. 궁핍한 환경에서도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그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지난 한 주간 고흐를 생각하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의 걸음은 자주 비틀거리는 것일까? 왜 성경을 읽으면서도 우리의 삶은 그 성경적 가치관에 완전히 사로잡히지 못하는 것일까?" 사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고뇌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절실한 문제로 자신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이다. 삶이 너무 바쁘기도 하고, 또 깊이 생각하는 힘을 스스로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수필가 몽테뉴의 말이 생각난다. "목적지가 없는 배에겐 어떤 바람도 순풍이 아니다." 망망대해에 한 척의 배가 떠 있다. 만약 그 배에 목적지가 없다면, 늘 풍랑에 출렁거리다가 결국 표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에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순풍이 불 때 돛을 올리고 역풍이 불면 돛을 내리면서, 흔들림 없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 분명한 목적지가 있는가? 있다면 그곳은 어디인가?

우리는 매일 꿈과 현실 사이를 오고가곤 한다. 잠들기 전 누워서, 가끔은 하나님 나라를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꿈일 뿐이다. 눈을 뜨면 아침이고, 일찍부터 출근 전쟁과 바쁜 사역의 일상이 시작된다. 우리는 그렇게 꿈을 깨고, 날마다 익숙한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때때로 강단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이런 강론은 그저 사치스러운 얘기처럼 느껴진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너무나 세속적인 현실이 우리를 한가롭게 그냥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하루의 조각들이 모이면, 일생은 한 폭의 회화가 된다. 오랜 세월 걸어온 인생길의 끝자락에 설 때, 그제야 흐리게만 보이던 평생의 그림이 선명해진다. 그 작품이 아무 열매도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느껴진다면, 우리는 밀려오는 후회와 탄식의 쓰나미 앞에 망연자실할 것이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진지한 성찰과 과감한 결단을 미루며 살아온 철부지 인생의 자업자득이다. 인생도, 목회도, 마찬가지 아닐까! 오늘은 감자를 좀 먹어야 하겠다.



김동찬 목사 / 광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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