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이유가 있다

[ 미션이상무! ]

이성호 목사
2024년 08월 21일(수) 08:03
해병대 연평교회에서 진행한 유치부 여름성경학교 모습.
둘째 딸이 태어날 때가 되자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때 필자가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들어온 훈련소라 그런지 적응이 어렵지 않았으나 둘째 딸이 태어나는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아내가 산통이 시작되었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보고하여 특별 휴가를 받았고, 결국 아내 곁을 지킬 수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는 감격을 경험한 직후 다시 훈련소로 돌아왔다.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모든 과정의 마침표를 찍는 임관식을 치렀다.

임관식이 끝나자마자 장소를 옮겨 임관감사예배를 드리게 됐다. 육군과 공군은 이미 가야 할 임지가 결정된 상황이었는데 해군·해병대 군종목사들은 자신들의 임지를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임관감사예배 직전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임지를 알게 됐다. 필자는 연평도에 있는 해병대 연평부대로 배치를 받게 됐다. 화가 났다. 해군·해병대 동기 목사가 7명 있었는데 아이가 있는 사람은 둘뿐이었다. 게다가 신생아가 있는 사람은 필자밖에 없었다. 아무리 군대라지만 납득이 되지 않는 인사 발령이었다.

해병대연평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리는 날 알게 됐다. 이 섬에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아이들만 족히 20명은 되었다. 그중에 신생아가 있는 가정도 있었고, 임신 중인 성도도 있었다. 이들을 보면서 왜 우리 가정을 이곳에 보내느냐며 원망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장병들과 그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려고 임관했으면서 사명보다 내 가족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던 모습이 부끄러웠다.

연평도는 열악한 섬이다. 세탁소가 없어서 입었던 양복과 와이셔츠를 모아두었다가 출장이나 휴가 나올 때 육지에 있는 세탁소에 맡겨야 했다. 그 흔한 프랜차이즈 식당 하나 없었고 마트는 커녕 PX 한 군데, 슈퍼마켓 한 군데가 식자재를 살 수 있는 전부였다. 아기 엄마들과 아이들의 먹거리가 너무 적었고 또 비쌌다.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병원이 없다는 점이었다. 보건소 한 곳과 부대 의무대가 있긴 했지만 아이들이 아플 때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매우 제한적이다. 응급 상황이 생기면 헬기를 타고 인천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것도 날씨가 허락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가 있는 가정은 불편함은 물론이고 불안함을 감수하며 지내야만 했다.

군인은 임무를 위해서는 어디든 가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아내나 아이들은 한 번도 그런 서약을 한 적이 없다. 단지 남편, 아빠의 직업이 군인이기 때문에 이 모든 걸 감수해야 했다. 군선교의 대상을 장병에 국한하여 생각하기 쉽다. 현장에서 보니 군인 가족을 돌보는 일 또한 군종목사의 중요한 사명임을 깨달았다.

곧 여름성경학교가 다가왔다. 부족한 물적, 인적 자원이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여름성경학교를 진행했다. 비록 외딴섬이지만 다음 세대를 위한 사역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마음을 모았다. 초등학교 고학년과 청소년들은 육지에 있는 기독교캠프에 참여해 뜨거운 수련회를 경험했다. 필자와 학부모들이 동행했는데, 수련회가 끝나고 서울 투어를 하면서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문화적 혜택을 누리기도 했다. 학부모들도 학생들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소문이 났는지 이전에 교회를 띄엄띄엄 나오던 이들도 교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다 보면 처음에는 괜찮다가도 점점 피로가 쌓여간다. 군인 남편은 업무 스트레스가 쌓여가고 아내들은 육아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제 코가 석자이다 보니 부부 싸움이 잦아지기도 하고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는 케이스를 발견하기도 했다. 여전도회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시급했다. 주중 오전에 성경공부를 개설했다. 많은 엄마들이 참여했다. 말씀을 통해 삶의 소망을 얻었고, 진솔한 나눔을 통해 깊은 위로를 얻었다. 참여자들이 성경공부를 하면서 마음 밭이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겠다고 판단했다. 가정사역, 선교사역을 전문적으로 하시는 외부 강사들을 모시고 왔다. 치유 집회를 통해 뜨겁게 기도하고, 소그룹 모임을 통해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셔서 많은 분들이 큰 도움을 받았다.

돌아보니 우리 가정을 연평도에 보내신 이유가 있었다. 신생아를 데리고 있는 당사자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아이 있는 가정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고, 이런 가정을 잘 돌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생각은 필자의 생각보다 컸고, 하나님의 계획은 필자가 감히 예측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는 찬양 가사가 떠올랐다.

이성호 목사 / 해군평택교회·해군 2함대 군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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