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 일하라

생각하며 일하라

[ 일터속그리스도인 ]

이효재 목사
2024년 08월 21일(수) 08:49
대기업 중견간부인 K집사는 요즘 일하는 재미 없다고 말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 지루하고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상부의 이해할 수 없는 업무지시를 받으면 자리를 잃을까 고분고분 복종하는 자기 모습이 실망스러워 마음이 급 우울해진다. 그는 직장에서 일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내가 왜 이렇게 살까" 한탄한다. 다른 직장으로 옮길 생각도 해보았지만 거기인들 다를까 하는 마음에 그나마 월급을 더 주는 현 직장에 십 수 년째 다니고 있다. "요즘 소원은 아무 탈 없이 정년퇴직하는 것이지만 그때까지 어떻게 견딜지 모르겠어요." 직장인 K집사의 출근길은 우울하다.

인력업체들이 실시하는 직장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 80% 안팎의 사람들이 직장 우울증을 겪고 있다. K집사의 우울한 마음은 그만의 문제가 아니라 직장인들의 공통적 문제다. 무엇이 직장인들을 우울하게 만들까?

가장 자주 지적되는 원인은 직장인들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모른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이 재미있게 일하려면 자기가 하는 일이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 이상의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노동은 자신의 생계뿐 아니라 타인과 공동체에 선한 영향을 끼친다는 숭고한 의미와 가치를 가질 때 자부심과 만족을 준다. 일하는 사람은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타인의 삶에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올 때 행복해진다.

그러나 많은 직장인이 자신의 일이 다른 사람들과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자기에게 맡겨진 '작은 일'에 파묻혀 산다. 그 '작은 일'에 담겨 있는 '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일이 금방 따분해진다. 또는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일을 이용하기도 하고 기꺼이 악에 타협하게 된다.

'작은 일'을 크게 해야 한다. 세상에는 '작은 일' 없는 '큰 일'이 없다. '큰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작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반대로 '큰 일'을 '작게'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자기 일에 담긴 '큰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일터에서 항상 '큰 의미'를 생각하며 일해야 한다. 내 일에 담겨 있는 '큰 의미'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일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주신 명령은 "번성하라(창 1:28)"는 것이었다. 이 명령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에서 반복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이 번영을 누리며 사는 것이 우리가 일하는 의미이고 가장 중요한 가치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을 향해 유배지에서 번영하라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렘 29:5~7)". 생명의 번영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노동 소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하는 일이 나와 타인과 공동체를 어떻게 번영하게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일이 자기 생존을 넘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불의한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내가 하는 일이 아무리 작아 보여도 분명히 누군가의 삶에 선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신나게 일하고 발전할 수 있다.

칼뱅은 번영을 구하는 일을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는 일이라고 설파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에게 서로를 향한 상호 의무를 부여하셨다. 인간들은 서로를 유익하게 하고 돌보고 도와야 한다. 하나님은 의심할 것 없이 우리에게 너그러움과 친절함과 다른 의무들을 심어주시는데 인간 사회의 공동체는 이것들로 인해 유지된다…우리는 모든 노력을 다해서 자신이 소유한 것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이웃의 유익을 내 유익만큼이나 증진해야 한다. 어떤 사람도 인간 공동체에 유익함을 주는 것보다 더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이 없다(출애굽기 20:15 주석)."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나와 타인의 영적, 물질적, 정신적, 생태적 번영을 가져다 주는 일이다. 우리는 일터에 출근할 때마다 오늘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자연 생태계에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어떤 방식으로라도 번영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일해야 한다.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려면 내 일을 통해 누구에게 어떻게 유익을 주는지 면밀하게 생각하는 습관이 필수적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십중팔구 악의 유혹에 빠진다. 직장 우울증은 사탄의 승리다. 생각하며 즐겁고 신나고 보람차게 일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이효재 목사 / 일터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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