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특집 ] 한국교회에 필요한 리더십 ③리더와 소통
이의용 장로
2024년 08월 21일(수)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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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은 한 마디로 '영향력'이다. 교회 공동체에서 리더란 누구일까? 담임 목회자, 의사 결정권자(당회 등), 가르치는 이들(부교역자, 교사), 소그룹 리더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들 중 '선한 영향력'을 갖춘 이들만이 진정한 리더다. 리더에게 필수적인 4가지 역량은 영성, 인성, 지성 그리고 사회성이다. 영성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능력이고, 인성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품성이다. 지성은 진리와 거짓을 구분하는 능력이고, 사회성은 다른 사람과 도움을 주고받는 능력이다. 영성은 하나님만이 아시고, 인성은 다른 사람이 잘 안다.
리더십은 공동체로부터 위임된 권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신뢰, 매력, 존경심은 스스로 갖춰야 한다. 전자만 있고 후자가 없는 경우, 팔로워들은 고통을 받고 공동체는 몸살을 앓게 된다. 누구나 사람(人)을 만나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함으로써 일(事)을 하니, 사회에서건 교회에서건 일하려면 소통력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최근 교회 공동체 리더들 앞에 새로운 소통 대상이 등장했다. 첫째는 MZ세대다. "제가요?" "이걸요?" "왜요?"라고 되묻는 MZ세대의 '스매싱'에, 통제와 권위주의로 무장된 리더십은 당황하고 있다. 19세기 꼬리가 21세기 머리를 통제할 수는 없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건 교회가 MZ세대와의 소통에 실패해서다. 교회의 리더들은 리더십을 쇄신하거나 물러나야 함에도 그냥 버티니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둘째는 교회 바깥의 비신자들이다. 교회를 향한 사회의 신뢰와 호감이 급하게 추락하면서,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나 생활현장에서 비신자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하느냐가 중요해졌다. 교회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따가워진 것은 교회가 사회와의 소통에 실패해서다. 목회자는 주로 열탕(교회)에서 살지만, 교인들은 냉탕(사회)과 열탕을 오가며 산다. 열탕에서 사는 목회자들이 냉탕과 열탕을 오가며 사는 교인들이 삶을 깊이 이해해야, 교인들과 소통이 가능해지고 교인들도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며 세상과 소통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교회는 소통 공동체다. 공동체의 소통은 인체의 피돌기와 마찬가지다. 공동체의 지체들은 소통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조정하고 의사를 결정함으로써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공동체의 목적을 이뤄나간다. 소통이 막히면 공동체에 동맥경화증이 온다. 그러므로 공동체 지체들 간의 소통은 매우 필수적이다.
소통은 '말'과 '글'을 주고받음으로써 이뤄진다. 바둑에 고수, 중수, 하수가 있듯이 소통에도 고수, 중수, 하수가 있다. 하수는 말만 많이 하는 사람이다. 중수는 듣기도 하며 말하는 사람이다. 고수는 적절히 말도 하고, 듣고, 답(맞장구)도 하는 사람이다. 말이 통하는 리더가 되는 데 유익한 팁 몇 가지를 제시해본다.
(1)어느 목사가 미국에서 운전 중 음주측정을 받게 됐다. 자기가 목사라고 했더니 그냥 지나가라고 하더란다. 한국에서도 똑같이 말했더니 경찰이 측정기를 입에 대면서 대뜸 "부쇼!"라고 하더라는. 신뢰는 소통의 문이다. 사람은 상대방이 진실하고 언행을 일치할 때 소통을 시작한다. 교회 안팎 사람들의 눈은 도로의 감시 카메라처럼 매섭다. 목사라고, 장로라고, 교인이라고 해서 믿고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2)소개팅에 나갈 때 상대방에 대해 미리 알고 나가야 성공한다. 소통을 잘하려면 상대방의 특성(성격, 관심사, 스타일 등)을 충분히 파악해야 한다. 그런 후 그의 주파수에 내 다이얼을 맞춰야 한다. 국자가 국 맛을 모르듯, 아무리 자주 만나도 상대방을 모르면 소통은 이뤄지지 않는다. 리더들은 새 교우에 대해 깊이 알아야 한다.
(3)리더는 친절해야 한다. 말에도 온도, 색깔, 무게가 있다. 친절해야 호감이 생긴다.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 바깥 사회에서도 그래야 한다. 신자는 성경을 읽지만, 비신자는 신자의 삶을 읽기 때문이다. 당신은 친절한가? 판단은 상대방이 한다.
(4)리더의 입은 무거워야 한다. 침묵할 때와 말할 때를 구분해야 한다. 어느 공동체에나 남의 말을 옮기고, 뒤에서 남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말이란 전해지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왜곡, 확대되어 가짜 뉴스(거짓말)가 되기 쉽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 뒤에서도 좋게 말하는 사람이 리더다. 또 사명감(?)을 갖고 가짜뉴스를 단톡방에는 퍼 나르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 설교로, 대표기도로 가짜 뉴스를 퍼뜨리기도 한다. 가벼운 입이 교회를 병들게 한다.
(5)리더는 격노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하라"(약 1:19-20),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다"(잠 16:32)고 가르친다. 리더는 양궁선수들처럼 심장박동수 100bpm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 리더가 노(怒)하면 소통도 노(No) 된다.
(6)좋은 리더는 공적, 사적 모임에서 대화를 독점하지 않는다. 최소한 50:50으로 대화해야 한다. 상대보다 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은 '말다(多)공증 환자'다. 한 사람만 말하고 모두가 듣기만 하는 강의나 회의는 상호작용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7)경청(傾聽)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다. '들을 聽'자는 상대방을 왕처럼 여기고, 귀를 기울이고, 오직 한 사람에게만, 눈을 향하고, 마음까지 읽으라는 뜻이다. 귀가 닫힌 이들은 어디서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귀가(歸家)하게 된다. 들어야 배우고, 들어야 자신을 알게 된다.
(8)콜라병을 흔들면 거품이 일지만, 생수병은 아무리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누군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때 집중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적절히 호응을 해줘야 소통이 활발해진다. 반응을 잘해주는 사람이 좋은 리더다.
목회자와 모든 사역자들은 소통 역량을 충분히 기른 후 사역에 임해야 한다. 그래야 말이 잘 통하고 영향력이 생긴다. 우리 사회, 우리 교단, 우리 교회, 우리 가정의 리더들은 과연 말이 잘 통하는가? 선한 영향력을 갖추고 있는가?
이의용 장로 / 생활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전 국민대 교수
리더십은 공동체로부터 위임된 권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신뢰, 매력, 존경심은 스스로 갖춰야 한다. 전자만 있고 후자가 없는 경우, 팔로워들은 고통을 받고 공동체는 몸살을 앓게 된다. 누구나 사람(人)을 만나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함으로써 일(事)을 하니, 사회에서건 교회에서건 일하려면 소통력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최근 교회 공동체 리더들 앞에 새로운 소통 대상이 등장했다. 첫째는 MZ세대다. "제가요?" "이걸요?" "왜요?"라고 되묻는 MZ세대의 '스매싱'에, 통제와 권위주의로 무장된 리더십은 당황하고 있다. 19세기 꼬리가 21세기 머리를 통제할 수는 없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건 교회가 MZ세대와의 소통에 실패해서다. 교회의 리더들은 리더십을 쇄신하거나 물러나야 함에도 그냥 버티니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둘째는 교회 바깥의 비신자들이다. 교회를 향한 사회의 신뢰와 호감이 급하게 추락하면서,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나 생활현장에서 비신자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하느냐가 중요해졌다. 교회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따가워진 것은 교회가 사회와의 소통에 실패해서다. 목회자는 주로 열탕(교회)에서 살지만, 교인들은 냉탕(사회)과 열탕을 오가며 산다. 열탕에서 사는 목회자들이 냉탕과 열탕을 오가며 사는 교인들이 삶을 깊이 이해해야, 교인들과 소통이 가능해지고 교인들도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며 세상과 소통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교회는 소통 공동체다. 공동체의 소통은 인체의 피돌기와 마찬가지다. 공동체의 지체들은 소통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조정하고 의사를 결정함으로써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공동체의 목적을 이뤄나간다. 소통이 막히면 공동체에 동맥경화증이 온다. 그러므로 공동체 지체들 간의 소통은 매우 필수적이다.
소통은 '말'과 '글'을 주고받음으로써 이뤄진다. 바둑에 고수, 중수, 하수가 있듯이 소통에도 고수, 중수, 하수가 있다. 하수는 말만 많이 하는 사람이다. 중수는 듣기도 하며 말하는 사람이다. 고수는 적절히 말도 하고, 듣고, 답(맞장구)도 하는 사람이다. 말이 통하는 리더가 되는 데 유익한 팁 몇 가지를 제시해본다.
(1)어느 목사가 미국에서 운전 중 음주측정을 받게 됐다. 자기가 목사라고 했더니 그냥 지나가라고 하더란다. 한국에서도 똑같이 말했더니 경찰이 측정기를 입에 대면서 대뜸 "부쇼!"라고 하더라는. 신뢰는 소통의 문이다. 사람은 상대방이 진실하고 언행을 일치할 때 소통을 시작한다. 교회 안팎 사람들의 눈은 도로의 감시 카메라처럼 매섭다. 목사라고, 장로라고, 교인이라고 해서 믿고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2)소개팅에 나갈 때 상대방에 대해 미리 알고 나가야 성공한다. 소통을 잘하려면 상대방의 특성(성격, 관심사, 스타일 등)을 충분히 파악해야 한다. 그런 후 그의 주파수에 내 다이얼을 맞춰야 한다. 국자가 국 맛을 모르듯, 아무리 자주 만나도 상대방을 모르면 소통은 이뤄지지 않는다. 리더들은 새 교우에 대해 깊이 알아야 한다.
(3)리더는 친절해야 한다. 말에도 온도, 색깔, 무게가 있다. 친절해야 호감이 생긴다.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 바깥 사회에서도 그래야 한다. 신자는 성경을 읽지만, 비신자는 신자의 삶을 읽기 때문이다. 당신은 친절한가? 판단은 상대방이 한다.
(4)리더의 입은 무거워야 한다. 침묵할 때와 말할 때를 구분해야 한다. 어느 공동체에나 남의 말을 옮기고, 뒤에서 남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말이란 전해지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왜곡, 확대되어 가짜 뉴스(거짓말)가 되기 쉽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 뒤에서도 좋게 말하는 사람이 리더다. 또 사명감(?)을 갖고 가짜뉴스를 단톡방에는 퍼 나르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 설교로, 대표기도로 가짜 뉴스를 퍼뜨리기도 한다. 가벼운 입이 교회를 병들게 한다.
(5)리더는 격노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하라"(약 1:19-20),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다"(잠 16:32)고 가르친다. 리더는 양궁선수들처럼 심장박동수 100bpm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 리더가 노(怒)하면 소통도 노(No) 된다.
(6)좋은 리더는 공적, 사적 모임에서 대화를 독점하지 않는다. 최소한 50:50으로 대화해야 한다. 상대보다 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은 '말다(多)공증 환자'다. 한 사람만 말하고 모두가 듣기만 하는 강의나 회의는 상호작용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7)경청(傾聽)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다. '들을 聽'자는 상대방을 왕처럼 여기고, 귀를 기울이고, 오직 한 사람에게만, 눈을 향하고, 마음까지 읽으라는 뜻이다. 귀가 닫힌 이들은 어디서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귀가(歸家)하게 된다. 들어야 배우고, 들어야 자신을 알게 된다.
(8)콜라병을 흔들면 거품이 일지만, 생수병은 아무리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누군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때 집중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적절히 호응을 해줘야 소통이 활발해진다. 반응을 잘해주는 사람이 좋은 리더다.
목회자와 모든 사역자들은 소통 역량을 충분히 기른 후 사역에 임해야 한다. 그래야 말이 잘 통하고 영향력이 생긴다. 우리 사회, 우리 교단, 우리 교회, 우리 가정의 리더들은 과연 말이 잘 통하는가? 선한 영향력을 갖추고 있는가?
이의용 장로 / 생활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전 국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