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련한 한 영혼의 기도

가련한 한 영혼의 기도

[ 목양칼럼 ]

김동찬 목사
2024년 08월 07일(수) 19:22
필자가 좋아하는 찬송가 중에 '때 저물어서 날이 어두니'(새찬송가 481장)라는 곡이 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목양실에서 자주 이 곡을 들으며 말씀을 묵상하곤 한다. 이 노래의 원래 제목은 영어로 'Abide With Me'(나와 함께 하소서)이다. 주로 임종 예배 또는 장례 예식 때 엄숙하게 부르는 찬송이다.

이 곡의 가사는 영국 성공회의 목사이자 시인인 헨리 라이트(Henry F. Lyte)가 결핵으로 투병하다가 54세 때 임종하기 3주 전에 쓴 시이다. 그러다 보니 '삶과 죽음', '시간과 영원'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그는 이 시의 영감을 누가복음 마지막 장에서 얻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와 동행하며 말씀을 나누셨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분이 예수님인 줄 전혀 알지 못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니까 두 제자는 예수님께 이렇게 간청했다. "이미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되었으니 우리와 함께 묵으소서"(눅 24:29a, 바른성경). 예수님은 요청에 응하셨고, 제자들은 집에서 예수님과 함께 음식을 나누었다. 그때 제자들의 눈과 마음이 열리면서 예수님인 줄 알아보았고, 다시 힘을 얻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곡은 참 특이하게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널리 애창되고 있다. 예를 들면, 지구 상에서 개최되고 있는 구기 대회 중 가장 오랜 대회인 축구 FA컵 결승전이 매년 영국에서 열리는데, 그때마다 경기 시작 전에 이 노래를 부른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할아버지인 조지 5세가 이 곡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1927년 FA컵 결승전 때부터 부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100년 가까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영국은 럭비의 고장으로 인정할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의 럭비 경기를 선보이는 나라 중 하나이다. 럭비 결승전인 챌린지컵에서도 이 찬송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2012년 런던 올림픽 개회식에서도 이 곡을 불렀다.

그뿐만 아니라, 불교와 힌두교의 발상지이고 심지어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인도에서도 이 찬송을 부르고 있다. 매년 1월 26일은 인도 공화국의 날이다. 인도 헌법이 발효되어 자주독립국인 공화국으로서의 국명을 가지고 민주 정부로 출범한 날을 기념하는 인도 최대의 국경일이다. 이 기념일에 온 국민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바로 이 곡이다. 이러한 전통은 인도 건국의 아버지 간디가 독립운동 당시 이 찬송을 통해 큰 힘과 용기를 얻었고 이 곡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새벽 고요한 시간, 이 찬송을 들을 때마다 "때가 저물어서 날이 어두워지고, 나의 사는 날이 속히 지나가고, 이 세상 영광도 빨리 지나간다"라는 애잔한 선율이 필자의 심금을 울린다. '저무는 때'는 단지 물리적 시간만이 아니다. 수많은 굴곡과 부침이 있었고,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화창했던 날들과 흐린 날들, 깔깔거리던 웃음의 날들과 펑펑 울며 눈물을 쏟던 날들 등등, 이 모든 희로애락의 인생 여정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저녁의 시간이다.

"육신이 쇠해져서 눈을 감게 될 때 십자가를 밝히 보여달라"는 가련한 한 영혼의 마지막 애원이 눈물겹도록 고맙게 느껴진다. 결국 인생의 최후를 책임져 주는 것이 십자가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으니 말이다. 이 찬송가의 3절(영어 번역)이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를 몰아내는 한 줄기의 기도문으로 다가온다.

"주님! 매 순간 내 곁에 계셔주소서.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무엇으로 사탄의 유혹과 시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주님 밖에 누가, 주님 외에 누가, 내 인생의 든든한 인도자와 동반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흐린 날에도, 맑은 날에도, 주님! 언제나 나와 함께 해 주소서."



김동찬 목사 / 광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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