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자산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여야 한다"

"인생의 자산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여야 한다"

[ 라떼는 말이야! ]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24년 07월 03일(수) 09:33
군선교 현장 위문을 약속했었던 친구 이상양과 함께 한 박창환 목사(왼쪽).
인생의 자산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어야 한다. 경제적인 자산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만, 우리의 영혼을 전적으로 인도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신앙의 자산은 우리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고 우리의 삶을 영육적으로 윤택하게 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9)." 인생의 여정은 태어나면서부터 만남으로 시작된다. 부모, 친구, 선생, 부부, 목사와 신자 등 사회 생활에서 잘 만나면 성공하고, 잘못 만나면 인생의 실패로 끝난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의 영육을 축복의 길로 인도해 하신다.

필자는 신앙의 부모님을 만나 기쁨으로 여생을 살고 있다. 예장 통합 총회 증경총회장 故 박종렬 목사님과 고인이 되신 부친 박상복 장로님은 집안의 종중회원으로 함께 한학을 공부했다. 이후 박종렬 목사는 신학의 길을 걷고, 아버지는 1950년 6.25 전쟁 직후 지역사회에서 초등학교 졸업 후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모아 한학을 가르쳤다. 그 후 청주교육청에 건의하여 호죽헌신고등공민학교를 설립했고, 17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인재를 양성했다.

평생 가정과 교회를 섬기고, 지역 사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부친의 신앙 자산이 필자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다. 필자는 훌륭한 아버지를 만난 것이 오늘날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중요한 이유이다. 고등학교 3학년 당시 아버지께서는 "너는 장남인데 하나님께 바쳤으니 신학을 공부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1961년 광나루 장신대학교에 입학했다. 1965년 12월 제59기 83명 중 한 명으로 졸업했다.

성경에는 믿음의 자산을 받은 가문은 대대로 축복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등 필자도 믿음의 자산을 받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축복된 목회자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히브리서 11:1)는 말씀이 언제나 필자의 마음속에 있어 가상이 실상으로 실현되기를 늘 기도했다.

학창 시절에는 이상양과 홍종철 두 친구가 있었다. 그중 이상양은 불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필자가 전도해 청주서남교회에 출석하며 박종렬 목사님께 신앙 지도를 받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필자는 광나루 신학교에 진학하고 이상양 친구는 청주대학교에 진학했다. 여름, 겨울 방학 때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신앙의 교제를 나눴다. 키, 얼굴 모양, 성적까지 비슷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친구의 건강이 좋지 못했다. 필자는 장신대를 졸업하고 군종목사로 임관하여 근무를 했다. 이상양 친구는 청주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충무로에서 문방구를 운영했다. 어느 날 필자에게 편지가 왔는데, 문방구를 정리하고 장신대에 합격해 진학하는 것이 기도 제목이니 함께 기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불교 가정에서 자라 교회에 출석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신학교에 진학하겠다고 하니 너무나 반가웠다. 그 소식을 듣고 곧장 휴가를 얻어 친구를 만나러 향했다. 전도한 친구가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겠다고 하니 너무 기뻐서 부둥켜안고 얼굴을 비비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친구를 향해 "상양아, 고맙다. 우리 앞으로 영성이 풍부한 목회자가 되어 많은 영혼을 구원하자!"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당시 군종목사인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알았어, 창환아. 네가 목사가 되면, 위문품을 가지고 군선교 현장에 가서 협력할게. 장병 위문도 꼭 갈 거야!" 그 말이 참 감사했다.

하지만 상양이는 고민이 컸다. 대학에 합격은 했지만, 등록금이 부족했다. "상양아,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군종목사 시절 받은 봉급에 친구의 지참금을 더해 상양이의 등록금을 납부했고, 상양이는 장신대 기독교교육학과에 입학했다. 학기 중에는 주선애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뚝방마을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을 듣고 보게 돼 친구 이상양 전도사는 그곳에서의 헌신을 결심했다.

그 친구는 악취가 나고 노천에서 볼일을 보는 동네, 빈민촌의 화장실을 건축했고, 쌀이 없는 가정에는 쌀을 사다 주고, 방황하는 어린 학생들을 모아 성경 구락부를 세워 중학교 과정을 교육도 했다. 또 빈민촌 환자들을 위해 구청과 협조하며 치료해 주고 무주택자를 위해 자조주택조합을 설립해 530세대 주택을 제공한 것을 인정받아 서울시장 표창과 새마을운동 우수상도 받았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망원제일교회를 설립했고, 올해 그 교회는 창립 51주년을 맞이했다. 상양이는 더 긴 미래의 목회와 꿈을 이루지 못하고 35세에 천국에 입성했지만, 친구의 사역 스토리는 장신대학교 이상양기념홀과 망원제일교회 별관에 기록돼 있다.

친구의 사역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인생의 운명은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상양아, 천국에서 잘 있지? 나도 한평생 군종목사로 사역을 잘 마감했어. 이제 네 뒤따라갈 테니 기다려다오. 천국에서 만나 못다한 이야기를 하자!"

박창환 목사 / (예 육군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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