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이웃이 되기

자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이웃이 되기

[ 가정예배 ] 2024년 7월 1일 드리는 가정예배

신동호 목사
2024년 07월 01일(월) 00:10

신동호 목사

▶본문 : 누가복음 10장 25~37절

▶찬송 : 461장



새터민 사역을 담당하던 10여 년 전 7월이 되면, 새터민들과 통일수련회를 떠났다. 수련회의 하이라이트는 저녁에 진행되는 나눔과 기도 시간이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것을 나누고 아픔을 보듬어 주는 기도 시간에 한 새터민은 절규했다. "우리는 남한에서 삼류보다 못한 취급을 당합니다. 조선족을 삼류 취급하는데, 우리는 그보다 못한 대우와 시선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따뜻하게 품어주고, 내 일처럼 저희를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부끄러움과 감동이 몰려왔다. 필자 역시 새터민 사역을 하기 전 이념과 사상의 안경을 끼고 그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께 해 보니 이들은 고향, 가족, 체제를 등지고 떠나오며 깊은 마음의 생채기를 가진, 자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새터민 사역은 정치 상황에 따라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칭찬받는 사역이 되기도 하고, 천덕꾸러기로 전락하여 비난받는 사역이 되기도 한다. 10년 전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이다" 선언으로 새터민 사역은 당장 통일이 될 것 같은 분위기에 편승하여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어, 많은 격려를 받았다. 그러나 몇 년 흐르고,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언제 뒤통수 칠지 모르는 새터민이라며, 한 번 배신한 사람들은 또 배신할 수 있다며 이 사역을 부정적으로 보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새터민 사역이 특별히 바뀌었는가? 그렇지 않다. 꾸준히 해야 할 일을 했고, 동일하게 진행되는데,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러면 새터민 사역의 의미와 가치가 바뀌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중요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사역이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인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살아가라고 강조한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 또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그들의 이웃이 되어주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라고 가르치고 배우며 살아간다. 물론 바리새인의 입장, 제사장의 상황도 이해는 가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은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막상 내 앞에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도, 그를 도와주는 것이 나에게 불리하거나, 피해가 가거나, 내 편이 아닌 사람이 확실할 때, 우리는 그의 이웃이 되기를 포기한다. 더 나아가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때도 있다. "지금은 도와줄 때가 아니다" 또는 "그들을 도와줄 필요가 없다"라고 외치며, 심지어는 도와주는 사람들을 배신자라고 말한다. 아는 것과 믿는 것과 실천에 괴리가 일어나면서, 바리새인과 제사장의 입장에서 행동하며 정당화하면서도 신앙을 앞세운다.

예수님은 율법사의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통해 영생을 얻으라고 답하시면서 이웃 사랑의 구체적인 예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으셨다. 그리고 율법사에게 물어보신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는가?"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 자"라고 말하며 사마리아 사람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율법사는 사마리아인은 절대 선한 이웃이 될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도 가서 그와 같이하라"라고 말씀하신다. 과연 이웃 사랑으로 영생을 얻는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는 아는 것과 믿는 것, 실천이 하나가 되어 살아야 한다. 주님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오늘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도와줌으로 영생을 얻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신다.



오늘의 기도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는 마음 주셔서, 오늘도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고, 말씀대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동호 목사/서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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