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사랑이다

일은 사랑이다

[ 일터속그리스도인 ]

이효재 목사
2024년 06월 20일(목) 09:13
필자의 형님은 식당을 올해로 30년째 운영하고 있다. 종업원도 없이 형님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은 단골손님이 많다. 대부분 동네 분들이다. 손님들이 이 식당을 자주 찾는 이유는 음식값이 주변 다른 식당보다 싸고 국산 재료만을 사용하고 맛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형님은 최근에 물가상승을 견디지 못해 10% 올렸다. 10년 만에 처음 올렸다. 그것도 단골손님들이 "이러다 망한다"고 종용해서 올렸다.

형님은 재료 구입에 특별히 신경을 많이 쓰는데, 시내에서 가까운 오랜 단골 전통시장 상점과 가까운 농촌 산지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구입한다. 국수는 매일 아침 반죽해서 직접 뽑아낸다. 형님은 몸이 아프면 문을 닫을지언정 만약을 대비해서 식재료를 미리 며칠 분을 만들어 보관해서 사용하는 법이 없다. 신선도를 생명처럼 여긴다.

손님들은 알 수 없지만, 음식이 나오기까지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필자에게는 참 고생스럽게 일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건강도 그리 좋지 않은데 남들처럼 편하게 일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형님은 "손님들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신앙을 실천하는 것이다"고 대답했다. 형님 부부는 평생 한 교회만을 다녔는데 지금은 안수집사와 권사로 섬기고 있다.

필자가 가족 자랑을 하려고 형님 식당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다. 형님을 볼 때마다 필자는 일터신학의 핵심 주제를 떠올린다. '일은 사랑이다'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일하라는 소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일을 통해서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일하고 그 대가로 받는 돈은 일에 대한 보상이지 일하는 목적이 아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가정이나 교회, 혹은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에 해당하는 새 계명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터에서 하는 모든 일은 나의 생계를 책임지는 자기 사랑이면서 동시에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는 이웃 사랑이다.

사랑은 남녀 혹은 친구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에로스)만이 아니다. 사랑의 진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신 아가페다. 아가페 사랑이 인류에게 가장 숭고한 이유는, 이 사랑은 생명을 살리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의 헌신과 노력으로 상대방의 생명에 선한 유익을 주는 것이다. 사랑의 목적은 사랑받는 사람의 생명을 번영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터에서 재화와 서비스, 혹은 지식을 생산한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해서 생산하는 이런 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다. 다시 말해 나는 일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생명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 우리는 일을 나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이웃의 풍요로운 삶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기 위해 일한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그리고 정확하게 깨달았던 사람이 종교개혁자 칼뱅이었다. 칼뱅은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는 출애굽기 20장 15절 주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일은 하나님 자신이 세상에서 일하는 가시적 활동이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만의 유익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해 이웃들과의 연대 속에서 일해야 한다. 그러므로 일은 하나님께서 사회가 화목하게 살게 하려고 자신의 피조물들에 주신 사랑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서로를 향한 상호 의무를 부여하셨다. 인간들은 서로를 유익하게 하고 돌보고 도와야 한다. 하나님은 의심할 것 없이 우리에게 너그러움과 친절함과 다른 의무들을 심어주시는데 인간 사회의 공동체는 이것들로 인해 유지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도둑으로 저주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모든 노력을 다해서 자신이 소유한 것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이웃의 유익도 내 유익만큼이나 증진되어야 한다. 어떤 인생도 인간 공동체에 유익함을 주는 것보다 더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이 없다."

사람들은 비록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하면서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은 사랑이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를 가져온다.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 일하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위기와 어려움을 사랑의 수고로 감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른다면 악한 유혹에 넘어가 불의하게 일하고 갈등하고 싸우는 무한 경쟁에서 고통을 당한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오직 사랑의 수고로 인내할 때 선한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생각으로 일한다면 어떤 고난이 찾아와도 웃는 얼굴로 일하게 된다.



이효재 목사 / 일터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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