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소멸의 시대, 최흥종의 ‘환대정신’ 이어가야”

“인구소멸의 시대, 최흥종의 ‘환대정신’ 이어가야”

제3회 호남영성연구원 세미나

김동현 기자 kdhyeon@pckworld.com
2024년 06월 03일(월) 08:24
제3회 호남영성연구원 세미나가 지난 5월 28일 광주YMCA 백제실에서 개최됐다.
오방 최흥종 목사.
급격한 인구감소로 지방소멸의 위기가 대두되고 있는 오늘날, 오방 최흥종의 '환대정신'을 본받아 우리 사회로 들어오는 이주민들을 환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세미나가 열렸다.

오방기념사업회(이사장:최영관)가 주최하고, 호남영성연구원(이사장:서순복)이 주관한 제3회 호남영성연구원 세미나가 지난 5월 28일 광주YMCA 백제실에서 열렸다. 이날 '성서로 보는 오방 최흥종의 삶과 환대 영성'을 주제로 발제한 강성열 교수(호남신대)는 최흥종의 삶에서 나타난 환대정신에 대해 설명하고 인구감소 문제를 겪고 있는 한국사회에 환대의 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방 최흥종(1880~1966)은 조선 말기부터 한국전쟁 이후까지 격동의 한국 근대사 속에서 목사와 전도자, 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어린 시절 친모를 일찍 여읜 최흥종은 새엄마 슬하에서 자라며 방황의 시기를 겪었다. 광주 시장통에서 '최망치'라는 별명을 가진 싸움꾼으로, 건달패로서의 삶을 살았던 그는 유진 벨(Eugene Bell) 목사와 광주 나병원 설립에 기여한 포사이트(W. H. Forsythe) 의사를 만나며 회심했다. 그가 살았던 당시 조선에는 일제의 수탈로 극심한 가난을 겪으며 전국적으로 걸인과 부랑인이 많아졌고, 영양실조와 질병치료의 지연으로 각종 질병이 만연했는데 특히 나환자와 결핵환자가 많았다. 그는 나환자와 결핵환자, 걸인들과 함께하며 이들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으로 가득하던 당시 사회 속에서 그들의 삶의 자리를 세우는데 헌신했다. 그가 1966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진행된 장례식에서 음성나환자와 결핵환자 등 그가 보살폈던 약자들이 줄을 지어 따라가며 "아버지, 아버지"하고 울부짖었다고 전해진다.

강성열 교수는 "최흥종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갈 수 없는 사람들을 향한 환대를 실천에 옮겼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환대의 실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초저출산으로 지방소멸·국가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꾸준히 유입되는 이주민들을 환대하고 그들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필요가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국민 대다수가 단일민족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주민들을 내국인과 똑같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로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최흥종의 환대 영성을 본받아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환대를 실천하는 일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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